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녀미 Apr 09. 2020

내 남편의 푸드 에세이

남편은 우리의 집밥을 기록한다

 먹는 걸 너무, 너무나도 많이 좋아하는 나는 먹기 위해 요리하는 것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냉장고에 이미 요리된 음식들이 많으면 그 사실이 기쁘기보다는 그걸 먹기 전까지는 새로운 요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살짝 시무룩해 지곤 할 정도.... 물론 먹는 일 자체도 좋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일이 정말 좋다.


 거기에다 그것에 대한 집념이랄까 근성이랄까 하는 것 또한 대단해서, 무엇인가를 먹고 싶어 하게 되면 그 음식이 내 입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 시기가 지나가질 않는다. 사 먹던 해 먹던 먹어야만 그 음식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드는데 그 음식들이라는 게 단순한 '메뉴'에 그치질 않아서 내 머릿속에 있는 그 이미지(모양, 형태, 색감 등)와 맛을 잘 충족시켜야만 그 음식에 대한 집착의 시기가 지나간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니 거의 곧바로 새로운 메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자연이 진공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식탐도 공복을 허용하지 않는 법..)


 여하튼 그런 과정을 통해 메뉴가 선정되고, 레시피가 정해지고, 마트에서 장을 본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나면,


 나는 요리를 하고, 남편은 사진을 찍는다. 

나는 테이블을 세팅하고 남편은 수저를 놓고, 맥주를 따르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호들갑을 떨며 음식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그걸로 나의 요리는 끝난다. 


 그 뒤로도 남편의 일은 이어진다. 사진을 편집하고, 잘 나온 사진을 나에게 보내주고, 인스타에 올린다.

 

https://www.instagram.com/yomis_kitchen/


 그리고 그 메뉴가 조금 특별한 것이었을 경우엔 한 가지 일이 더 남아있는데, 그건 바로 남편이 그 음식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나의 경우 "이 음식이 먹고 싶다, 만들어야겠다!"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과정에 내가 가진 그 음식에 대한 기억이나 서사가 크게 작용하는 편이다. 그것을 남편에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의 것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또는 그중의 많은 부분이 내 안에 남겨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기억이나 서사들은 내 입을 통해 밖으로 전해지지는 않지만 내 요리를 통해 발현된다. 


 내가 가진 기억과 느낌에 의지해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백/수천 개의 레시피 중에 하나 또는 여러 개를 고르고, 그중에서도 내가 기억하는 대로 재료나 계량을 조금씩 달리해 요리한다. 재료를 장보고 준비할 때, 손질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많은 김치 레시피에는 당근이 없지만 내가 맛있게 먹던 학교 급식 김치에는 당근이 들어갔던 기억이 있어 꼭 당근을 채 썰어 넣는다던가, 고등학교 시절 사회쌤과 영광 읍내에서 먹었던 피자가 엄청나게 맛있었던 기억 때문에 고구마 무스가 둘러진 피자에는 꼭 아몬드 슬라이스를 뿌려야 하고, 급식이나 친구 집에서 오이냉국을 먹으면 맹맹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 집 오이냉국이나 무침은 시큼했던 기억이 있어 늘 식초를 넉넉히 넣는다던가 하는 것들. 일반적인 레시피와는 다르지만 내 기억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것들. 특별했던 순간, 맛있었던 기억들. 그런 것들이 내 요리를 완성한다. 


 어쨌거나 나는 요리를 계획하고 구상하며, 또는 요리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그 기억들을 찬찬히 정리해보게 되는 일이 많은데 남편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러다 남편이 브런치에 입성(!) 하게 되고, 여기서 그의 사진들이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남편이 음식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https://brunch.co.kr/magazine/yomis-kitchen


 사진을 찍는 게 편하지, 글을 쓰는 건 너무 어렵다고 말했던 남편이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가입하고도 한동안 글을 못쓰겠어서 작가 신청을 못했던 남편. (심지어 남편은 첫 작가 신청 때 '무엇을 써야 하는가'라는 약간은 반항적인 글을 써서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그의 말을 듣고 살짝 갸우뚱했던 게, 남편은 내가 만나 본 남자들 중 가장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7년간 한국-미국 장거리 연애를 하며 주고받았던 수천 개의, 어마어마하게 긴 글들, 손편지들, 며칠간 학회를 갈 때면 노트에 써 오는 일기 같은 글들, 가끔씩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에 놓여있는 카드들.. 내가 아는 그는 긴 글을 무척이나 잘 쓴다. 손글씨는 알아보기 어렵긴 하지만.....


 그러던 그가 어찌어찌 마음을 먹었는지 마라탕에 대한 글을 써내더니 갑자기 그게 브런치 메인에 실리고야 말았다. 마라탕은 한국에 한참 마라 열풍이 불던 때, 내가 한국에서 먹어보고 와서 그에게 전파한 음식이었고, 그러니까 그가 먹어본 마라탕은 다 내가 해준 것들 뿐이었다. 마라탕에 대한 기억이나 느낌도 모두 나와 함께 한 것들. 그래도 내가 한 요리에 대해 그가 쓴 글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 뒤로도 그는 콩, 타코, 파스타 등 여러 음식에 대한 글을 써냈다. 음식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는 평소에도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의 글에는 그 이상이 담겨 있었다.


 내가 요리한 음식에 대해 그가 가진 기억들. 때로는 그 음식에 대한 유년시절의 첫 기억이나 오래된 느낌일 수도 있고, 나와 함께 그 요리를 처음 경험했던 순간일 수도 있다. 또는 그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하는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가 쓴다. 그의 글에 담겨있는 것은 음식에 대한 평가가 아닌 그 음식에 대한 기억, 추억, 생각들이다. 그가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읽으면 마치 내가 쓴 책에 대해 쓰인 독후감을 읽는 것만 같다. 내가 요리하는 것을 지켜보고, 음식을 먹고,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어떻게 느꼈는지,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으며 잊혀져 가던 기억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생생히 보고 듣는다. 

 내가 한바탕 요리하고 난 뒤, 그가 오랜 시간 자판을 두드릴 때 약간 마음이 두근거리는 이유다. 


 나는 어쩌다 불러일으켜진 기억이나 감각에 따라 요리하고, 그 요리는 그에게서 또 다른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글을 쓰게 한다. 나의 창작에 대해 그가 창작하고,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의 창작에 대해 또 창작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무려! 


지금 거의 '창작의 온상' 이 되어가는 우리 집. 코로나의 영향이 없지 않다. 

내일은 또 무엇을 만들 것인가. 또 무엇을 먹고 그것이 어떤 창작을 불러올 것인가. 


 몇 년이 지나면 지금의, 이런 독특한 봄날도 추억이 될지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간신히 온 요가수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