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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Jun 04. 2020

보리가 사실은 엄마일까

엄마 꿈을 꾸고도 울지 않는 날이 올까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는 울고 있지 않았는데 다시 자야지, 얼른 자야지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굴리는 동안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꿈에서 만진 엄마 종아리의 촉감이 생생했다. 푸석한 살결, 힘없이 말랑거리는 마른 엄마의 다리. 그런데 왜 꿈속에서 난 엄마를 보리라고 불렀을까? 


더 누워있어 봐야 잠은 못 자고 눈물만 날 것 같아서 방에서 나와 화장실에 갔다. 어둠 속에서도 쪼르르 달려와 발치에서 맴도는 몽이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하여간 아기 고양이들이 집에 있을 땐 외로우려고 해도 외로울 새가 없다. 


쉬를 하고, 여전히 작고 가벼운 몽이를 들어 올려 안고 거실로 갔다. 보리는 리클라이너 위에서 자다 깨서 나를 보았다. 의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 보리를 만졌다. 왠지 보리가 사실은 엄마인 거 아닐까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지. 보리는 2015년 12월 생이고, 엄마는 그다음 해 초여름에 하늘나라로 갔으니까. 아니 어쩌면, 동물이라면 절대 집에서 키울 수 없다고 단언했던 엄마가 먼저 고양이 이야기를 꺼낸 건, 엄마가 떠나고 우리 가족을 지켜줄 존재로 보리를 선택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아빠 핑계를 댔지만, 보리는 엄마가 삶에서 가장 예뻐한 동물이었다. 


보리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하늘나라로 가겠지. 차라리 지금 다 같이 가서 엄마를 만나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요즘 사는 건 재미도 보람도 의미도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쭉 사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얼른 엄마나 봤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무릎 꿇고 앉은 채로 보리를 계속 쓰다듬는데 어느샌가 무릎에 따뜻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꼬맹이 둘이 내 다리 위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내가 외롭게 울도록 둘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했다.


수빈이가 방에서 나와 물과 티슈를 가져다주고 담요를 덮어주었다. 보리가 있고, 비록 캣타워 위에 등을 돌리고 있지만 여튼 구름이가 있고, 아기 고양이들이 있고, 수빈이가 있어서 깊은 새벽 오랫동안 울어도 외롭지 않았다. 창 밖 어둠 속에서 내 풀들이 보였고 집 구석구석도 어렴풋이 보였다. 그래, 여기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 내 집이지, 그래서 난 여기서 외롭지 않게 오래오래 울 수가 있는 건지 싶어서 울음을 그쳤다가,

그럼 우리 엄마는 이런 엄마의 공간, 가족, 자식, 삶. 이런 것들을 어떻게 두고 갈 수가 있었을까. 아니면 너무 아파서 그런 건 별 상관도 없었을까 궁금했다. 꿈속에서 엄마는 너무너무 아프다고 했는데. 


어리광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부리지 않았을 뿐, 자긴 어리광도 애교도 많다고 했던 엄마였다. 응, 씩씩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귀엽고 여린 구석이 있던. 그래도 아프단 소리는 정말 잘 안 했던 우리 엄마. 병원의 하루는 거의 새벽이다 싶은 아침에 시작되는데 잠 많은 내가 깰까 봐 조심조심 침대에서 내려와 조심조심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을 가고, 씻고, 나를 아침 열 시까지 재우던 엄마. 아프면서도 어쩜 그렇게 상냥하고, 그러면서도 듬직했는지.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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