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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Jul 14. 2020

클라이밍을 하다가 울었다.

유리 손목과 유리 멘탈

사실 클라이밍을 하다가 운 게 처음도 아니다. 

아마도 재작년의 늦여름인지, 가을인지.. 저녁을 먹고 클리프에서 운동을 하는데 이도 저도 되지 않아 우울한 마음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던 날이 있었다. 그때 내가 풀던 문제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탑로프 연습 벽 바로 옆 직벽에 있는, 크림프가 많은 초록색 v4. 할만하다 생각해서 붙어보았는데 별것도 아닌 무브가 너무 안 되었다. 북적이는 암장에서 나 말고는 다들 몸이 가벼워 보였고 클라이밍이 즐겁기만 한 듯 보였다. 그런데 그 날 나의 클라이밍은 즐거움이나 성취가 아니라 좌절이었고, 패배감이었다. 


오늘은 쏘일의 연두색, 질뻐기와 대나무 모양 홀드로 이루어진 v5를 풀다가 떨어져서는 울었다. 우울해서는 아니고 서러워서 울었던 것 같다. 그리 작은 키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내 손은 힘을 받기 애매한 위치만 짚어댔고 그 상태로 몸을 끌어올리려 낑낑대다 보니 손목이 아팠다. 손목이 아플 것 같으면 내려오면 되는데, 어떻게 조금 더 애를 써서 몸을 올릴 수 있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억지로 버티느라 양쪽 손목이 평소보다 더 많이 시큰거렸다. 


결국 손을 떼고 내려와 (라기보다는 털썩, 하고 떨어져) 손목을 붙잡고 있는데 너무 속이 상했다. 왜 운동을 세 달이나 쉬었는데도 손목은 덜 아프긴커녕, 안 아프던 왼쪽 손목까지 아프게 되었는지. 아니, 왜 나는 남들보다 쉽게 손목이 아픈지. 운동은커녕, 설거지해서 말려둔 그릇 정리를 할 때나 보리구름이의 화장실을 치울 때도 손목 보호대를 해야 하는지. 심지어 자다 베개를 고쳐 베느라 베갯잇을 잡아당길 때에도 손목이 아파서 잠에서 깨는 일 같은 것들이 지긋지긋하고 억울했다. 지금 이 손목이 사라지고 새로운 손목이 자라나면 참 좋겠다는 생각까지 문득 들었다가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엄마도 늘 손목이 아프다고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엄마도 손가락이 아팠다. 나도 그런데. 나랑 똑같이 중지랑 약지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끝까지 접을 수 없었고, 나중엔 손가락에 힘을 줘서 펴도 다 펴지지가 않았다. 나도 곧 그러려나. 어쨌든 간에 난 엄마의 딸이니까, 아마 지금 아픈 손목이 사라지고 새 손목이 자라난다고 해도 그 손목도 어차피 아프게 될 것 같다. 역시 난 어쩔 수 없이 허미숙의 딸이고, 그러니까 다 엄마 때문이다....... 하고 생각하며 세상에 없는 엄마 탓을 했다. 눈물이 자꾸 뚝뚝 흘렀는데 그나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인원 제한으로 암장이 한적해서 다행이었다. 


운동이나 집안일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젊은 지금부터 이러면 나중에 어떻게 더 큰 살림을 하고 집을 가꿀지. 아이를 낳고 나면 관절은 더 쉽게 아프다는데, 그때는 또 어떻게 하나... 운동을 하지 않는 하루에도 열댓 번은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속상한 마음을 눌러보지만 운동을 좀 열심히 하게 되는 날에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다. 운동을 할 때에는 몸이 따뜻하고 엔도르핀이 돌아서 괜찮다가도 운동 후 긴장이 풀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역시나 유난히 시큰거리는 손목.


클라이밍을 하며 자주 생각한다. 손목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아까 그 크림프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슬로퍼를 더 단단히 누를 수 있지 않았을까, 아까 포기했던 그 맨틀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니 클라이밍을 전혀 안 했더라면 어땠을까. 한 10년 정도는 늦게 손목이 아팠으려나.


클라이밍을 시작한 게 벌써 4년 전이다. 3년쯤 되었을 때부터 내가 클라이밍을 2년 전에 시작했나, 아니면 3년 전인가... 헷갈리곤 했는데, 벌써 만 4년이 넘은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 '클라이밍 얼마나 하셨어요?' 하면 '한 3년 정도요..?' 하고 말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2년'이라고 했다가 경력을 반 씩이나 줄이는 것도 좀 그래서 3년으로 올렸다. 5년 차 클라이머라고 하기엔 좀 부끄러운 실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꼬꼬마 클라이머였을 무렵엔 클라이밍을 5년 하면 진짜 '짱 센 클라이머'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이었고, 내가 운동을 시작한 암장이 생긴 지 8개월 정도밖에 안 된 아기 암장이라 상급 여자 클라이머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당시 레벨 체계에서 '빨강' 정도를 풀면 이미 강한 클라이머 축에 꼈기도 하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정말 5년 차 클라이머가 된 지금, '짱 센 클라이머'는커녕, 여전히 암장에서 중급 문제를 풀다 질질 짜고 있을 뿐이다. 몸을 움직이는 기쁨과 내가 원하는 무브를 해낼 때의 쾌감을 알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내 몸에 대해 바라는 것만 많고, 그것을 위한 실천은 미뤄둔다. 그리고 가끔은 내 몸을 미워한다. 큰 키, 튼튼한 관절, 유연한 몸을 바라고 그중 두 가지는 글러먹은 것 같으니 스트레칭이라도 열심히 해 본다. 운동을 하며 내 몸에 대해 잘 알고 좋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내 몸은 알쏭달쏭하고 못 미덥다. 

 

재작년 즈음까지만 해도 주위 사람들에게 클라이밍 열심히 전도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굳이 권하진 않는다. 오히려 즐기고 있는 다른 운동이 있다면 굳이 클라이밍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특히 재주는 없고 욕심만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클라이밍은 그리 좋은 운동이 아니다. 머릿속에서는 완벽한 자세로, 탄탄한 근육을 한껏 수축시켜 몸을 당기지만 현실에서는 온갖 나쁜 자세, 관절과 인대에 부담이 큰 자세로 간신히 다음 홀드를 잡는 일이 빈번하다. 탑 아웃을 하다 '어 뭔가 어깨에서 잘못된 느낌이 나는데....' 하면서도 다시 힘을 풀 때 날 수 있는 사고가 더 무서워서 우선 몸을 올려 보낸 적도 여러 번이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클라이밍은 정말 있는 오기 없는 오기를 다 끌어내기 딱 좋은, 중독성이 너무 강한 운동이다. 

돌아보면 첫 부상은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3-4개월 만에 겪은 팔꿈치 부상이었다. 그때는 자다가도 팔꿈치가 아파서 울곤 했지만 한 달을 꼬박 쉬니 거의 나았고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손가락과 손목, 어깨에 자잘한 만성 통증을 그냥 달고 산다. 완전히 나을 거란 기대는 않고 조심조심 운동하고, 잘 관리하면서 같이 가겠다 생각하는 편이 여러 모로 이로운데 오늘 같은 날에는 그런 결심도 무너지고 만다. 


크고 작은 부상을 겪을 때마다 '이놈의 클라이밍 진짜 그만두던가 해야지' 생각하지만 결국 5년째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클라이밍을, 앞으로 얼마나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운동을 하는 동안은 나의 이 유리 손목+유리 멘탈이 클라이밍과, 그리고 부상과 슬기롭게 공존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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