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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Oct 03. 2020

남편이 주는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함께라서, 그가 내 뒤에 있어서 어떤 순간들을 견딘다

 고속도로 갓길에 트렁크가 열린 채 서 있는 우리 차, 그 뒤에 쌓여있는 캠핑 짐과 크래시패드. 트렁크 아래 공간을 열어 이것저것을 찾는 남편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우리 옆을 차들이 쌩쌩 달려 지나칠 때마다 부는 바람과, 차에서 느껴지는 진동 때문에 으슬으슬 팔에 소름이 돋았다. 더운 날이었고 그 더위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었다. 예쁘게 물들던 초저녁의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고 초승달이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도로에는 여전히 차들이 쌩쌩 달리고, (나중에는 우리 때문에 교통체증이 유발되어 덜 해지기는 했지만) 나와 남편은 땀과 도로의 먼지로 새카맣게 뒤덮였다. 


 우리 차 포포의 오른쪽 뒷바퀴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건 일요일 아침. 그러니까 토요일 이른 아침에 출발해 캠프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잡고, 잘 놀고 쉬고 먹고, 자고 일어나 산책도 하고 아침도 차려먹고 클라이밍을 위해 5분 정도 차를 타고 나갔을 때의 일이다. '딩, 딩,' 소리가 나며 무슨 경고등이 들어왔고, 남편은 '아 망했다' 하고 내뱉었다. 타이어 압력에 문제가 생겼을 때 들어오는 경고등이라 했고 우리는 내려서 포포의 네 바퀴를 확인했다. 아직 눈에 띄는 문제나 바퀴를 눌러보았을 때 다른 점도 보이지 않았지만 일행이었던 친구가 포포의 오른쪽 뒷바퀴에 박힌 못을 발견했다. 바람이 많이 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못이 박힌 자리에 물을 부어 보았는데 못이 단단히 박혀있어서 바람이 많이 새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우리보다 아웃도어 경험이 좀 더 많았던 친구는 아마 집에 도착할 때까지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으니 클라이밍을 하고 내려가거나, 아니면 아무래도 걱정이 되니 지금 바로 다시 캠프 사이트로 돌아가 얼른 짐을 정리하고 엘에이로 떠나거나 어떤 선택을 해도 자신은 상관없다고 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이미 클라이밍을 하기 위해 나온 상태이니 우선은 클라이밍을 좀 해보기로 결정하고 짐을 챙겨 걷기 시작했지만 남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복잡해 보였다. 


 햇빛은 뜨거웠고,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곳인 탓에 조금 헤매기도 하면서 클라이밍 할 장소에 도착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꽤 운동에 집중하고 어느 정도 잘하는 듯 보였고 나도 그 모습을 보고 왠지 신이 났다. 다른 친구와 빵을 먹고 떠드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암벽화에 발을 넣는데 이틀간 많이 걸은 탓인지, 발톱 정리를 게을리하고 와서인지 새끼발톱이 욱신거리고 헐거웠다. 이런 상태로는 무도 간신히 썰어야 할 판이라 클라임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것들만 몇 개 올랐지만 모처럼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에 살짝 압도당했다. 나와서 뭘 했건 간에 나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너무나 소박하게 즐거워하는 동안 소피아라는 이름의 클라이머는 어째서인지 지치지도 않고 이런저런 문제들에 붙어보고 있었다. 


 오늘 이 장소에 와서 처음에 눈에 띄었던 문제. 스타트는 좋지만 무브가 크고, 아래 지형이 경사지고 그 아래로 큰 틈이 있는 탓에 조금 방심해서 떨어지면 (조금 과장해서) 아래로 굴러가 바위들 사이에 난 큰 틈으로 빠져 끝없이 굴러 계곡으로 빠질 것 같은..... 그런 문제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랜딩만 좋으면 해 볼 텐데', '저 틈만 없었어도 해볼 텐데...' 하며 핑계를 댔던 그 문제였다. 하도 거침없이 여러 문제에 붙어서 꽤 고수인가 싶었지만 내 실력과 고만고만했던 (하지만 체력과 근성이 나에 비에 월등한) 소피아는 역시 그 문제에도 호기심을 보이며 홀드를 잡아본다. 나는 스타트 홀드에서 손만 뻗어 보았지 제대로 몸을 위로 보내려 해 보지도 않고 내려왔는데 그녀는 꽤 과감히 몸을 끌어올려본다. 그러다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데굴데굴 구르지는 않는 것 같다. 

더 안쪽으로 남편을 비롯한 상급 클라이머들이 여전히 클라이밍을 하고 있고, 나는 아픈 발톱과 아직 남아있는 힘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몇 번 더 그 문제에 붙어본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 마지막에 몸이 움츠러든다. 내가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도록 케빈이 스팟을 봐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쑥스럽고 미안하다. 나의 담력을 이렇게 시험하다니, 클라이밍 정말 싫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몸이 안 펴지는 거야..... 


 역시 난 소박한 인간. '이 정도로 트라이를 한 것도 정말 대단해, 지금까진 수빈이가 찍어주는 문제만 했는데 내가 문제를 골라서 도전했어!' 하고 만족하려는데 남편이 본인 운동을 대충 마쳤는지 내 쪽으로 왔다. 어쩌면, 어쩌면 남편이 스팟을 봐주면 좀 더 과감히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 이거 한 번만 더 해볼게, 스팟 좀 봐줘' 하고 부탁하고는 암벽화 안에 발을 밀어 넣었다. 엄청나게 좋은 첫 홀드를 두 손으로 꽉 잡고, 오른발을 높이 올리고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다음 홀드를 잡고, 손을 모으고 초크로 마킹해 놓은 곳에 왼 발을 꾹 눌러 디딘 뒤 오른손을 뻗으며 몸을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렇게 멀어 보이던 저그를 쾅, 하고(?) 잡았다. 쾅 소리가 났을 리가 만무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정말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 뒤에 두 무브 정도가 더 있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을 넘겨 신이 난 데다가,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게 더 무서우니 어떻게든 탑 아웃을 했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처음에 '이건 내 수준이 아니네' 하며 시도하지도 않으려 했던 문제에 붙어보고, 포기하려다가 결국 해낸 후에 바위 위에서 보는 풍경은 정말 특별했다. 그리고 대체 남편의 스파팅엔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왜 남편이 브러싱을 해 주고 스폿을 봐주면 더 잘하게 되는 걸까 궁금했다. 이마에 '뿌듯'이라고 써 붙은 느낌, 광대가 한껏 올라간 느낌으로 가방과 크래시패드를 챙겨 내려왔다. 다행히도 포포의 오른쪽 뒷바퀴의 상태는 몇 시간 전과 비슷했다. 조심히 캠프 사이트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아마 남편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운전했겠지만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아직 괜찮네.. 뭐... 괜찮겠네...' 하며 안일하게 집에 도착한 뒤의 할 일들이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불규칙한 진동이 느껴지고 그것이 덜컹거림으로 바뀌었다. 남편이 속도를 줄이더니 갓길에 차를 세웠다. 핸드폰 내비게이션 앱에 '11 min'이라고 떠 있었다. 집에서 고작 11분 거리인데 남편과 나는 포포와, 많은 짐들과 함께 고속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남편은 나에게 차에 있으라고 하고는 나를 넘어 조수석 문을 겨우 열고 내린 뒤 (운전석 문으로 나가지 못할 만큼이나 갓길이 좁았다.) 트렁크를 열고 덜그럭거리며 뭔가를 하느라 바빴다. 나는 핸드폰으로 '고속도로 타이어 펑크' 같은 것들을 검색해보았는데 별다른 대책을 찾지는 못했고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 우선 내려보았다. 큰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차와, 남편과 내가 흔들리고 하필 고가도로라 시멘트 난간 아래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는 것도 아찔하다.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저녁이라 아스팔트 바닥과 차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땀이 나는데 묘하게도 으슬으슬 몸이 춥다. 양 팔을 쓸어내리는데 산에서 가져온 먼지와 고속도로의 타이어 먼지로 덮인 채 땀을 흘려서인지 먼지 때 비슷한 것이 나온다. 어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2010년 2월, 남편과 나는 갓 스무 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서로를 처음 만났다. 앳된 얼굴과 동글동글한 몸, 이마를 덮은 덥수룩한 앞머리, 언제나 단정한 긴 청바지/면바지에 셔츠+카디건을 입고 스니커즈를 신던 스무 살의 그 남자는 지금 이마를 깐 짧은 투블럭에 민소매+반바지+쪼리 차림에 닭가슴살을 하나씩 얹어놓은 듯한 뽈록한 어깨를 가지고 있다. 가끔 남편이 자신의 책상에서 일하는 뒷/옆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알던 그 어린 소년은 어디 가고 이런 낯선 남자와 살고 있나 싶을 때가 있지만 여전히 그가 환하게 웃을 때,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눌 때, 함께 말 같지도 않은 드립을 치며 밤을 새울 때, 이 새까맣고 다 큰 서른 살의 유부남에게서 스무 살 그 소년을 본다. 


 어쨌거나, 그렇게 어리고 여리던.. 나보다 2개월 연하여서 장난으로 나에게 '누나 누나' 하던 남자애가 이젠 우리 집 가장이 되어서 나에게 '위험하니 차에 있으라'고 하고는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타이어를 가느라 혼자 먼지를 뒤집어쓰며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새삼 10년도 긴 세월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도 10년 전의 스무 살, 갓 사귄 그의 연인이 아니다. 그의 11년 차 파트너이자 그의 4년 차 아내, 서른 살 유부녀이므로 나도 우리 집 가장을 지켜야만 했다. 


 갓길이 너무나 좁았던 데다 하필 고가도로라 한쪽이 벽으로 막혀있던 덕분에 우리는 차를 들어 올리는 작업조차도 쉽게 할 수 없었다. 남편 혼자서 하기보다는 나와 함께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둘이 힘을 합쳐 차를 들어 올렸는데 (설명이 너무 어려워서, 남편이 같은 사건에 대해 쓴 글 '포포 이야기' 링크를 걸어둔다.) 물론 그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사방이 어둑어둑 해 질 때까지 온몸에 땀이 흐르도록 레버를 돌렸을 때 너무 방심을 했거나, 서둘렀거나. 또는 그 둘 다이거나 한 이유로 나사 산이 어긋난 채로 끼어 타이어를 빼는 것도, 다시 제대로 끼우는 것도 어렵게 되었고 '아 정말 완전 망했다' 싶을 때 즈음,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실제로는 견인 트럭을 타고 등장) 은인이 나타나 너무나도 멋지고 쿨하게, 우리를 도와주고는 사라졌다... 는 게 이 사건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겠다. 적어놓고 나니 별 것 아닌 것처럼 쓰였지만 나와 남편에겐 정말 엄청난 공포와 패닉에 빠질 뻔 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우린 세상엔 아직 따뜻한 일이 많다는 것, 이런 온전한 '선의'가 사람을 얼마나 눈물 나게 감동시키는지에 대해 느꼈다. 나 혼자라면 질질 짜며 바로 견인차를 부르고 집에 온 뒤에 엄청난 청구서를 받고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이런 상황에서, 남편과 함께라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가. 신경이 엄청나게 곤두선 그 상황에서 우린 다투지 않고, 서로를 탓하지 않고, 다치지 않고 집에 살아 돌아와서 보리와 구름이 밥을 주었다. 결과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타인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전까지 나와 남편 둘이 그 상황을 감당하고 함께 해결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조금 어른, 진짜 부부가 된 느낌도 들었다. 


 더운 열기 속에서 함께 낑낑대며 레버를 돌리는 일을 한참이나 반복하던 와중에 그 어마어마한 소음과 진동 속에서 가끔 어떤 고요함과 약간의 행복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도 같다. 그 날, 하늘에 기울어져 걸린 초승달과 유난히 붉던 석양 아래 기울어진 채로 멈춰 선 포포와 남편, 나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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