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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Oct 07. 2020

엄마 김밥

어떻게 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그 맛. 

'세상에서 우리 엄마 밥이 제일 맛있어!' 하는 식의 생각을 하면서 자란 사람은 아니지만 이 음식은 우리 집 게 제일 맛있다, 하는 음식이 두어 가지 있는데 하나는 아빠의 소고기 뭇국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의 김밥이다. 


김밥은 어디서나 흔하게 팔고, 어느 집에서나 소풍날에는 김밥을 말고, 요즘은 무려 돈가스를 튀겨 넣은 김밥이나 회 같은 걸 넣은 일본식 후토마끼도 흔히 보는 세상이니 그냥 '엄마'가 싸준 김밥이라 맛있는 거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엄마의 김밥은 내 친구들, 친척들, 남자 친구(현 남편) 등 주변 사람들이 '너네 집 김밥은 진짜 대박이다'라고 인정해서 내가 자부심을 가질 정도인데, 그 비결이 뭘까 생각해보니 우선 밥과 각 재료 하나하나의 간이 기가 막히다. 김밥은 들어가는 재료가 워낙 많기에 하나가 좀 짜면 다른걸 싱겁게 한다던가, 재료가 많으면 밥에 간을 덜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밸런스를 맞추기가 쉬운데 엄마가 김밥 재료 준비해놓은걸 집어먹으면 하나하나가 간이 진짜 딱 좋다. 물론 밥에 하는 간도 나한테 간을 보라고 여러 번 확인하면서 공을 들인다. 물론 밥도 엄청나게 얇게 펴서 속재료를 꽉꽉 채운다. 


그리고 아마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당근이나 어묵을 정말 손이 많이 가서 귀찮게도, 엄청 가늘게 채를 쳐서 인 것 같다. 김밥을 내가 말아서 먹다 보니 이건 채를 치는 것도 귀찮지만 김밥을 말 때에도 진짜 귀찮은 일이다. 재료를 꽉꽉 넣어 말려고 하면 이 재료들이 흐트러지는 경우도 많아서 재료를 쌓을 때에도, 말 때에도 시간이 더 걸린다. 햄 한 줄, 지단 한 줄, 얇은 당근 몇 줄, 어묵 한 줄.. 이런 식으로 넣으면 간단하고 편한데 엄마의 김밥은 얇게 채쳐서 볶은 당근을 수북이 밥 위에 올리고 그걸 길게 줄 세워야 하니 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아주 얇게 채쳐서 기름에 달달 볶고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른 당근은 정말 달고 맛있고 식감도 좋다. 그런 이유로 엄마 김밥은 예쁘기도 엄청 예쁘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 김밥의 가장 핵심은 좋은 부위를 얇게 썰어 볶은 소불고기이다. 동생이 어려서 엄마가 많이 바쁠 때는 햄이나 소시지를 넣어서 김밥을 싸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솔직히 평소처럼 '엄청나게' 맛있는 김밥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가 기름이 적당히 있는 쇠고기를 얇게 썰어 배나 양파를 갈고 다진 마늘, 설탕, 간장과 매실액, 참기름을 넣어 양념을 해서 프라이팬에 오래도록 볶으면 꽤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하고 윤기가 흘러서 흰 밥에 올려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 것 역시 김밥을 말 때에는 자꾸 흩어지고 양 조절도 어렵지만 왠지 엄마는 김밥엔 꼭 쇠고기를 넣었다. 어릴 때 보통 분식집에 파는 '쇠고기 김밥'이 엄마 김밥과 비슷한 것인 줄 알고 주문했더니 쇠고기 다짐육을 양념해서 건조하게 볶아서 넣은 퍽퍽한 김밥이라 당황했다. 엄마 김밥의 쇠고기는 흔히 말하는 달짝지근한 석쇠불고기의 촉촉하고 윤기 흐르는 버전에 가까웠다. 


요즘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김밥을 싸고 있다. 다른 요리는 좋아하지 않는데 비해 '김밥 싸는 게 제일 쉬워' 하면서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을 말았던 엄마와는 달리, 난 김밥이 좀 어려웠다. 준비할 것도 많고, 장 봐야 할 것도 많고, 일일이 재료 손질하고 볶고 김밥을 마는 것도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엉을 한가득 채쳐 볶아두고 꼬들 단무지를 만드는 김에 김밥용 단무지도 좀 만들어 두니 도시락으로 이만큼 간단한 게 없는 것 같다. 당근 휘릭 볶고, 소꿉 장난하듯 지단 만들어 썰어두고, 상추나 벨페퍼나 아보카도나 야채칸에 있는 아무 야채 썰어 넣으면 된다. 고기는 정 귀찮으면 소시지 하나 썰어 당근 볶을 때 함께 볶고, 여유가 되면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썰어 볶는다. 남편과 딱 한 끼 먹을 양인 두세 줄만 싸면 되니 재미 삼아, 엄마가 쓰던 김발을 가져와 엄마 김밥의 맛을 목표로 연습 삼아한다. 


쟁반 한가득 재료를 준비해두고, 다른 쟁반 수북이 김밥 산이 쌓이도록 김밥을 말고 써는 엄마 옆에서 '엄마, 재료 중에 먹어도 되는 거 뭐 있어?' 하며 넉넉한 재료를 주워 먹던 날들이 아주 많이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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