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 차이코프스키 : 사계

Yunchan Lim - Tchaikovsky : The Seasons

by L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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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의 앨범 중 두 번째로 구매하게 된, 따끈따끈한 신작 차이콥스키의 《사계》입니다. 저는 나름 피아노를 공부했던 사람이지만, 솔직히 말해 차이콥스키의 이 작품 자체를 제대로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흔히 ‘사계’라고 하면 비발디의 작품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 음반을 통해서야 차이콥스키의 ‘열두 달’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단순한 명곡의 재현을 넘어, 임윤찬이라는 예술가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의지를 고스란히 담아낸 기록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려고 하는 젊은 연주자가 바라본 러시아 낭만주의의 깊이를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원제는 《The Seasons》인데, 일본에서 이를 《Four Seasons》로 번역해 소개한 것을 한국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계’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단순히 네 계절을 그린 음악이 아니라, 1월부터 12월까지 한 해의 흐름을 다 담아낸 곡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열두 달’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계' 하면 대번에 떠오르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강렬함 때문일까요. 피아노 독주곡으로 구성된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12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이올린의 4계절과는 또 다른, 러시아 특유의 서정성과 낭만적 깊이를 품고 있습니다.


3월의 〈종달새의 노래〉에서는 아직 낯선 듯한 선율 속에서 러시아의 이른 봄 정취가 묘하게 전해졌습니다. 참고로, 러시아에서 종달새는 봄의 전령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6월의 〈뱃노래〉가 흘러나올 때, 비로소 “아, 이 곡이 사계 중에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친숙한 멜로디가 가슴을 울렸고, 이 작품이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이유를 실감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와 또 다른 느낌으로,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열두 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훨씬 더 세밀하고 풍부하게 삶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 음반을 통해 무엇보다 느낀 것은 임윤찬만의 해석이었습니다. 《초절기교》에서 보여준 치열한 집중력과 음악적 집념이 이번 사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음악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하리라 다짐했다”라는 자신의 말을 실제 연주로 증명하듯, 매 곡마다 섬세하면서도 단호한 터치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복잡다단한 감정의 스펙트럼은 차이콥스키의 원곡이 가진 서정성을 극대화시키면서도, 결코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 절제된 힘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깊이와 성숙함은 가히 전설적인 거장들에 비견될 만합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문득 한국 피아노계의 큰 별인 백건우 선생님의 강렬하면서도 철학적인 터치를 떠올리는 것이, 단순히 한 리스너로서의 오만함일까요? 저는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임윤찬의 연주는 시대를 초월하여 대가들이 추구해왔던 음악적 진실에 근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윤찬의 연주로 만난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한 해의 흐름을 따라가는 긴 여정처럼 다가왔습니다.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듯, 그의 연주는 차이콥스키의 멜로디를 빌려 자신의 영혼의 깊이를 증명합니다. 그가 건반을 누르는 순간, 1876년 러시아의 율리우스력이 잠시 현대로 소환되고, 차이콥스키의 낭만적인 고독과 임윤찬의 숭고한 예술적 헌신이 하나의 시간축에서 만납니다. 이는 단순한 계절의 노래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변치 않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향한 고백이며, 리스너의 내면에 깊이 박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사계입니다.


앨범을 다 듣고 난 후에 남은 감정은 조용한 울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선율이 마음속에 서서히 스며드는 듯했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잔향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음반은 단지 한 장의 신보가 아니라, 곁에 두고 여러 번 꺼내어 들을수록 새로운 색채로 다가올 작품이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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