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ll Barber는 캐나다 출신의 재즈 뮤지션입니다. 저도 캐나다에서 2년간 지낸 경험이 있어서, 그녀가 캐나다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묘한 내적 친밀감이 들었습니다. 이 앨범은 Jill Barber의 첫 번째 프랑스어 전용 앨범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캐나다는 퀘벡이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이니까 프랑스어를 할 수도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Jill Barber는 토론토 출신이었습니다. 물론 캐나다의 넓은 땅덩이에서 직선거리로 800km 정도면 가까운 편이긴 하지만, 퀘벡은 워낙 독특한 지역이라 다른 지역 출신은 일부러 공부하지 않는 한 프랑스어를 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2009년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당시, Jill Barber는 자신의 곡 하나를 프랑스어로 번역해 공연했는데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이 순간이 "계시적인 순간"이었다고 언급했으며, 이를 계기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프랑스로 유학도 다녀왔다고 합니다.
앨범 첫번째 수록곡인 Petite Fleur는 우리말로 ‘작은 꽃’이라는 뜻이며, ‘Petite’는 흔히 알고 있는 ‘쁘띠’와 같은 단어입니다. 저는 보통 앨범을 구매하기 전 전곡을 미리 들어보는 편이지만, 이 앨범은 단 한 곡 ‘Petite Fleur’만 듣고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껴 뒷 곡들은 들어보지도 않고 바로 구매했습니다.
이 곡에 무엇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는지 다시 곱씹어보면, 잔잔한 베이스 위에 색소폰과 트럼펫이 서로 어긋남 없이 빈틈을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럼펫은 제 평소 취향과 다소 거리가 있는 악기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곡의 풍부함을 살리는 중요한 요소로 느껴집니다. 이 곡에서 피아노 역시 빠질 수 없는데, 섬세하고 촉촉한 건반 소리가 전체 분위기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줍니다.
작은 꽃이 피어나는 장면처럼, 곡 전체를 관통하는 조화로움은 Jill Barber의 목소리로 인해 더욱 강렬해집니다. 각 악기 고유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하나의 화음을 이루도록 편곡된 덕분에, 음악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구조를 띱니다. 그래서인지 곡의 여운이 더욱 오래 남으며, 계속해서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네. 멜랑꼴리 입니다. 단어 뜻은 '우울' 인데, 10~2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멜랑꼴리 하다' 는 약간 꿉꿉하다,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느낌 자체가 서로 다르진 않지만, 그 미묘한 뉘앙스가 이 곡과도 잘 어울립니다.
처음부터 낮게 깔리는 베이스 라인은 곡 제목처럼 우울한 분위기로 이어지도록 길을 열어줍니다. 전반적으로 트롬본과 클라리넷이 주도하며, 두 악기의 낮은 음역대가 이 우울감을 더욱 풍부하게 채워줍니다. 평소에는 놓치기 쉬운 두 악기의 결이 이 곡에서는 유독 선명하게 느껴져, 우울하다는 감정이 왜 이렇게도 끌리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Jill Barber 의 느낌도 감정을 계속 억누른 채 차분한 톤으로 곡이 가진 애틋함을 꾸준히 펼쳐냅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중간중간 미묘한 화성이 들어가서, 마치 흩어지지 않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을 줍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짙은 슬픔과,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곡입니다.
‘파리의 하늘 아래’는 1950년대 프랑스 영화 『파리의 하늘 아래 센 강은 흐른다 』의 OST로, 제목 그대로 파리의 하늘 아래 펼쳐지는 풍경과 감성을 담아냅니다. 곡의 왈츠 리듬은 파리의 낭만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보컬은 낮은 톤에서 시작해 점차 음역대를 넓혀가며, 듣는 이로 하여금 파리의 다채로운 풍경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여기에 클라리넷(으로 추정되는 관악기)의 선율이 간간이 등장해, 파리 특유의 거리 분위기를 생생하게 살려주는 느낌을 더합니다.
살짝 현대적인 편곡 덕분에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세련된 인상을 줍니다. 빠르지는 않지만 이국적이면서도 경쾌한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져, 듣다 보면 파리의 하늘 아래 거리를 거니는 기분에 잠길 수 있습니다.
뒷면의 첫 번째 트랙인 ‘남자 찾아요’는, 앞면에서 이어졌던 우울하고, 비오고 하는 정서를 깨끗하게 뒤집는 시도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밝고 경쾌한 스윙 리듬이 주도권을 쥐고 진행되어, 자연스럽게 박자에 맞춰 어깨가 들썩여집니다.
이 곡에서 Jill Barber의 보컬은 유난히 활기찬 색채를 띠며, 살짝 장난기 어린 뉘앙스로 사랑을 찾는 설렘을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드럼 브러시와 트럼펫 사운드가 합쳐지면서, 재즈 클럽 특유의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해줍니다. 앞면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경쾌함이 곡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앨범에 다채로운 감정의 변화를 부여합니다.
마지막 트랙으로, 뒷면 내내 계속 됐던 사랑에 관련된 스토리 라인을 이별을 상징 하는 곳으로 차분히 마무리 합니다. 곡 내내 깔리는 기타 선율은 청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주고, 작별인사를 전하는 보컬의 음색은 차분함을 이끌어냅니다.
지나친 슬픔을 표출하기보다는 회고에 가까운 뉘앙스가 느껴지며, 감사와 아쉬움이 함께 묻어나는 곡입니다. 이 앨범을 닫는 데 걸맞은 감동적인 엔딩이며, 듣고 나면 애틋한 여운이 오랫동안 남네요.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퀘백을 비롯한 프랑스 출신 아티스트들의 곡을 선별해서 Jill Barber가 재해석해 제작된 앨범입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재즈 감성은 전통 샹송의 원형을 잃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현대적인 색채를 녹여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각 트랙마다 수놓아진 악기 편곡과 은은한 목소리는 경쾌함과 애잔함을 오가며, 듣는 이에게 다양한 감정을 선사합니다. 신중하게 고른 곡 목록에 특유의 따뜻한 해석이 더해져, 한편으로는 익숙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앨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파리의 골목과 가을비, 밤공기 같은 이미지가 음악을 타고 전해지며, 결국 여운 짙은 마무리로 감상자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