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
일을 대충 한 적은 없었다.
작은 프로젝트도, 누구 눈에 띄지 않는 과정도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을 해왔다.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밤새 PPT 디자인을 수십 번 고쳤고,
누군가 기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몇 시간씩 문장 하나를 고민했다.
시간도, 감정도, 신경도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번아웃’이라는 말이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무너짐’에 가까웠다.
이상했다.
나는 게으르지 않았고,
무책임하지도 않았고,
도망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서 한숨만 쉬고 있는 걸까.
‘나는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힘들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지치게 만들었을까?’
질문은 계속되는데,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중에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번아웃은 단지 ‘과로’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그건 내가 나를 지나치게 몰아세운 결과였다.
인정받기 위해, 나답지 않게 애쓴 시간들의 무게였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
항상 준비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감정이 올라와도 참고,
몸이 힘들어도 밀어붙이고,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했다.
‘조금만 더 하면 괜찮아질 거야.’
‘지금 포기하면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다들 다 이렇게 사는 거겠지.’
그 말들이 나를 잠깐 살게 했지만,
결국은 나를 무너뜨리는 말이기도 했다.
나 자신을 쉬게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열심히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준을 채우기 위한 것’이 될 때
그건 고통이 된다.
나도 그랬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게 없으니까
나는 더 열심히 했고,
결국 나를 잃어버렸다.
이제는 안다.
열심히 해도 번아웃이 오는 이유는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공보다 중요한 건
지속 가능한 감정의 리듬이라는 것을.
‘쉬는 것도 노력이다’라는 말이
예전엔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진실이란 걸 안다.
나는 지금도 뭔가를 하다 보면
금세 몰입하고, 과하게 에너지를 쏟는다.
성실한 건 여전하다.
다만, 예전과 다른 건
그 에너지의 방향이 조금씩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번아웃은 무능해서 오는 게 아니다.
게을러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건 오히려
너무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주는 신호다.
“이제는 좀 너를 챙겨도 된다고.”
“그만 좀 괜찮은 사람 그만두자고.”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나는 요즘,
조금 느슨하게 살아보려 한다.
완벽한 말보단 진심이 담긴 말.
눈치 보는 시간보단 나를 살피는 시간.
그리고 이런 말도 해본다.
“나는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지만
이제는 나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
오늘도 뭔가를 하다가
잠깐 멈췄다.
몸이 말해준다.
지금은 쉬는 게 더 중요한 시간이라고.
이제는 그 말을 믿어보려 한다.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엉성하게,
조금은 나답게.
그게 내가 지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