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눈을 감아야만
내가 서 있는 풍경이 보일 때가 있다.
사람들과 마주 앉아 있을 땐
웃고, 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과 반응으로 바쁘게 살아가지만,
혼자 방 안에 앉아
불도 켜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으면
그제야 서서히
내 안의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늘 똑같지 않다.
어느 날은 안개 낀 바다 같고,
어느 날은 쓸쓸한 골목 같다.
어느 날은 아주 환한 들판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건 내가 감추고 있던 감정들의 얼굴이라는 것.
말하지 못했던 마음,
제때 표현하지 못한 감정,
남에게 보여주기엔 부끄러웠던 상처들이
이 풍경 속에 고요히 스며 있다.
가장 자주 마주하는 풍경은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인 방’이다.
그 방은 좁고 어둡다.
창문이 없고,
가끔은 벽에 금이 가 있다.
그 안에는
과거의 말실수,
누군가에게 미처 못한 사과,
차마 꺼내지 못했던 서운함들이
먼지 쌓인 책장처럼 줄지어 놓여 있다.
나는 그 방의 존재를 알고 있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그 문을 닫아두었을 뿐이다.
그 방을 열게 되는 날은
대부분 별 것 아닌 일에서 시작된다.
“그 말이 조금 서운했어.”
“지금 내 기분은 이런데, 말하지 못하겠어.”
“나는 지금도 그때의 나를 용서하지 못했어.”
이런 말들이
내면의 문을 노크한다.
나는 처음엔 무시한다.
“지금 그걸 왜 생각해.”
“벌써 지난 일이잖아.”
“괜히 예민하게 굴지 말자.”
하지만 그 감정은
돌아오고, 다시 문을 두드린다.
점점 더 깊은 곳에서.
내가 애써 외면한 그 지점에서.
그래서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 방에 들어가서
말없이, 그대로 바라본다.
그 감정들을 다 꺼내지도 않는다.
그저 ‘여기 있었다’는 걸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풍경이 조금 달라진다.
내 안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가벼워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런 감정, 그냥 잊어버려.
과거는 흘려보내야 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흘려보내려면,
먼저 알아차림이 필요하다는 걸.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한 내면은
언제나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나를 괴롭히기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잃지 않게 하려는 마음의 방식이었다.
침묵의 들판이 있을 수도 있고,
쏟아지는 눈물 같은 비의 언덕이 있을 수도 있고,
의외로 따뜻하게 피어나는 꽃밭도 있다.
그 모든 풍경은
내가 살아온 기록이고,
지금도 살아 있는 증거다.
요즘 나는
그 풍경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간다.
감정이 올라오면
조용히 내면의 풍경을 꺼내본다.
그 감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무슨 색인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그리고 그 풍경에
햇빛 한 줌을 건넨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판단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보이지 않는 풍경으로 살아간다.
그 풍경이 흐릿해지지 않게,
내 감정이 무너지지 않게,
나는 내 안을 바라보는 시간을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