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느린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뭐든 빨리 느끼고, 빨리 생각하고, 빨리 움직이려는 사람이다.
분위기 눈치, 사람 눈치, 나 자신에게조차 눈치가 빠르다.
누가 말끝을 흐리면 마음이 먼저 불안해지고,
누가 한숨 쉬면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진다.
‘그냥 넘겨도 되는 일’을
나는 혼자 마음에 오래 남긴다.
그렇게 감정을 빨리 캐치하고,
그걸 곱씹고,
그걸 어떻게든 해결하려다가
결국은 지쳐버린다.
서두르다 실수하고,
조급해하다 감정이 앞서고,
그게 또 마음에 걸려서
스스로를 향해 화내고,
후회하고,
조용히 주저앉는다.
그럴 때면 내 안에서
어떤 말이 자꾸 떠오른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사실 나는 이 말을 정말 싫어했다.
왜냐하면 나는 ‘천천히 가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느리게 가는 건 나랑 어울리지 않았다.
그 말은 나에게 게으름처럼 들렸고,
실패한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말이 말하는 ‘천천히’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방식’이라는 것을.
ㅡ
내가 만든 캐릭터, 또무야는 그런 내 마음을 대변한다.
또무야는 작은 토끼다.
감정을 빨리 느끼는 토끼.
눈치를 금방 채고,
사람들의 말에서 의미를 쏙쏙 뽑아내고,
자신의 기분을 혼자 먼저 눈치채는 토끼.
그런데도 말은 늦다.
느껴도 참는다.
눈치가 빨라서 말 못하고,
상처받기 싫어서 꾹 참고,
그러다 밤에 혼자 일기장에 쓰는 말.
“나 오늘 사실, 좀 서러웠어.”
그게 나였고,
내 안의 감정이었다.
나는 감정이 빠른 사람이다.
예민하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근데 이제는 안다.
그건 단점이 아니다.
누군가가 놓친 마음을 내가 더 빨리 알아채는 능력이고,
공기 중의 불편함을 감지해서 다정하게 정리할 수 있는 감각이다.
문제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나답게 다루지 못했던 나의 방식이었다.
빨리 느끼는 만큼
빨리 욱했고,
빨리 후회했고,
빨리 자책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의 속도를
천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무야를 만들고 나서
감정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또무야의 표정을 그리며
내가 오늘 하루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정리했다.
또무야는 말한다.
“지금 이 감정도 괜찮아.”
“천천히 가도 괜찮아.”
이제는 그 말의 진짜 뜻을 안다.
그건
“너는 지금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뜻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돼.
조금 돌아가도, 너는 결국 너의 자리로 갈 수 있어.”
나는 지금도 급하다.
마음이 앞서고,
일이 느리면 답답하고,
계획대로 안 되면 속이 타들어간다.
하지만 예전처럼 나에게 화내진 않는다.
감정이 올라오면 잠깐 멈추고,
‘지금 이 감정은 왜 올라왔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고,
또무야가 내게 가르쳐준 루틴이다.
내가 이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그 말은,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따뜻한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