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화가 나도 꾹 참았고, 억울해도 웃었다.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사려 깊다’, ‘배려심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아서 더 참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진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사회에 나가고 나서는 더했다.
일하다 울컥하는 마음을 삼키는 건 기본이었고,
감정적으로 보이면 미성숙하다고 평가받았다.
울면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사람’이 됐고,
힘들다고 말하면 ‘예민한 사람’이 됐다.
나는 점점 말하지 않게 됐고,
말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출근 준비를 하다 화장대 앞에서 그대로 주저앉았고,
심장이 두드리는 듯했고,
내가 나를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번아웃이 왔다.
처방은 쉬는 것
하지만 ‘쉰다’는 개념이 낯설었다.
쉬는 방법도 몰랐고 쉰다고 좋아지거란 생각도 못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과 감정들이 동시에 무너지는 느낌.
“이게 다 내 탓인 것 같아.”
나는 그렇게 한동안 세상과 멀어졌다.
누구도 만나고싶지 않았고 어떤 좋은 말을 들어도 공감이 안됐다
이 시기에 나는 감정을 해소하는 법을 처음으로 고민하게 됐다.
먹는 것, 자는 것, 운동…
어느 것도 나를 제대로 회복시켜주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나를 모르는구나
나답게 제대로 감정을 해소하는 법을 몰랐다는 걸.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조용히 감정을 회복할 수 있는 곳.”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상상은
이후 내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나는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속도가 느린 곳,
내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곳.
그렇게 도착한 곳이 지금의 경북 영덕 영해면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공간.
감정이 회복되는 데는
고요함과 낯섦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누군가는 방치된 공간이라 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나를 보았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안은 텅 비어 있고
수리하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고 나무가 상하면서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태.
그래, 이곳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내 감정을 고쳐가듯 이 공간도 고쳐보자.
나는 이곳에 이름을 붙였다.
‘해소공간’.
감정을 해소하는 공간.
누구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도 괜찮은 곳.
이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말없이 앉아 있기도 하고,
작은 오브제를 손으로 만들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나는 감정을 해장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들을 만들었다.
감정 워크북, 스트레스 해소 레시피북, 명상 굿즈.
손에 쥐는 사과 모양의 스트레스볼,
감정을 흡수하는 부적 트레이,
감정별 색깔로 칠하는 컬러링북.
이런 사소한 도구들이
의외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준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여기서 울어도 돼서 좋았어요.”
“아무 말 안 해도 괜찮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걸.
그리고 그걸 풀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나는 감정을 위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회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오늘 하루는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곳.
해소공간은 누군가에겐
작은 가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감정을 되찾은 첫 번째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곳이다.
감정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늦게야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를 글로 나누려 한다.
감정을 잃고 사는 누군가가,
이 글을 통해
자신을 해소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