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감정을 피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울고 싶어도 참았고,
화를 내고 싶어도 눌렀고,
상처받았다는 말조차
“괜찮아”라는 말로 덮어버렸다.
감정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아프고,
너무 무력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걸 느끼면 무너질지도 몰라.’
‘지금 말하면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어.’
‘지금은 감정보다 현실이 중요해.’
그렇게 나는 감정을 미뤘다.
계속, 계속, 끝도 없이.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은 기다린다.
느껴질 때까지,
표현될 때까지,
인정받을 때까지.
그리고 결국엔
몸으로, 표정으로, 습관으로
조용하지만 강하게 신호를 보내온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졌다.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던 일이었는데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이 감정은,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구나.
오랜 시간 쌓이고 묻혀 있다가
지금에서야 터져 나온 거구나.”
그제야 감정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었다.
감정을 마주한다는 건
용기를 내는 일이다.
덮어두었던 마음을 다시 꺼내고,
아무도 몰랐던 상처에 이름을 붙이는 일.
“그때 정말 서러웠어.”
“나 사실, 그 말에 깊이 상처받았어.”
“그 일이 너무 무서웠어.”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야.”
이 말들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에게 해주는 순간,
감정은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감정을 마주한다는 건
결코 약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두려워도 그 앞에 서는 사람.
흔들려도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
그게 감정을 직면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나는 이제 알게 됐다.
감정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진짜 내가 보인다는 걸.
나는 생각보다 무던한 사람이 아니었고,
생각보다 많이 참아왔고,
생각보다 더 많은 말을 삼켜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감정들을 인정하고 나니
나는 나를 다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을 마주한다고 해서
삶이 갑자기 쉬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가벼워진다.
이유 없이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고,
혼자 끙끙 앓지 않아도 되니까.
감정을 느낀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감정을 이해한다는 건
나를 돌본다는 증거다.
이제 나는 감정을 피하지 않는다.
그 감정이 아무리 불편하고 낯설어도
이제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괜찮아.
지금 느끼는 이 감정도
너의 일부야.”
“네가 울어도 괜찮고,
화를 내도 괜찮고,
서운해도 괜찮아.”
“감정을 느끼는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