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너무 낯설다.
내가 왜 이런 말투를 쓰는지,
왜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지,
왜 혼자 있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나를 잘 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했던 시간이 있었다.
취향도 분명했고, 좋아하는 것도 뚜렷했고,
가고 싶은 방향도 그럴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달라질수록
사람이 바뀔수록
나는 나를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어떤 날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울컥하고,
어떤 날은
모욕처럼 느껴졌던 말도 웃어넘길 수 있을까?
겉으로는 잘 지내는데
집에 오면 괜히 마음이 상하는 그런 관계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막상 하다 보면 지치고 도망치고 싶은 일들
내 마음인데
내 감정인데
내가 느끼는 건데
왜 나는 내가 이렇게 느끼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할까?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보이고 싶은 나’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착한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
무너지지 않는 사람
불평하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 보니
진짜 나의 감정은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나는 왜 이럴까?”
이 질문은 혼란스럽고 피곤하지만
결국 나를 알아가는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탓했다.
왜 이렇게 예민하지?
왜 이렇게 피곤하게 굴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그런데 조금씩
내 안에서 작게 대답이 들려왔다.
“예민해서가 아니라, 상처받은 적이 있어서야.”
“피곤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참아왔던 거야.”
“복잡해서가 아니라,
네가 느끼는 감정들이 섬세했기 때문이야.”
나는 지금도 나를 잘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그게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내가 나를 더 알고 싶어 졌고,
그래서 질문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가 느낀 화난 감정은 뭐였을까?
그 감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나는 지금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이 질문들이
나를 다시 만나는 열쇠가 되어주고 있다.
나는 이제 ‘나를 안다’는 말보다
‘나를 알고 싶다’는 말이
더 솔직하고
더 용기 있는 말이라는 걸 안다.
정해진 나로 살기보다
계속 알아가야 할 나로 살아가는 것.
그게 진짜 어른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바라본다.
때로는 마음이 복잡하고
감정이 엉켜 있고
답이 없는 것 같아도
그래도 나는
이 삶의 한가운데에서
조금씩 나를 이해하려 애쓰는 중이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