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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Dec 08. 2023

백제의 수도 : 공주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다

여는 말

‘수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도시가 있다. 경주이다. 경주는 신라의 수도로 그 정체성을 확립하고,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반면, 백제의 수도를 생각해 보면 머뭇거리게 된다. 공주는 왜 백제의 수도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공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공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던, 조상님이 인정한 살기 좋은 도시다. 이 덕분에 공주에는 석장리 유적, 송산리 고분군, 공산성, 무령왕릉, 마곡사 등 의미 깊은 사적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공주라고 했을 때 공주의 역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공주시는 백제의 임시수도로 수도였던 기간이 60년 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남한 땅에 남아 있는 백제의 고도만 해도 한성(서울), 웅진(공주), 사비(부여)로 세 곳이다. 천도를 자주 한 백제의 특성상 공주가 ‘백제의 수도’라는 이미지를 내세우기에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주만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떤 시도가 필요한가? 공주는 ‘백제’라는 이미지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이미지로 나아갈 것인가?


공주, 백제의 역사를 담다

공주에서 백제를 보여주기에는 백제 자체의 이미지도 약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백제란 어떤 곳일까? 한성, 부여와 달리 공주만이 가지고 있는 백제의 아름다움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주의 백제를 보기 위해, 로컬키트는 공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산성은 웅진백제 시절 곰나루의 곰산에 지어진 대표적인 산성이다. 산성을 올라가면 북쪽에는 금강, 남쪽에는 공주시가 보인다. 공산성은 공주의 중심에서 굳건히 그 역사를 지켜내고 있다.

공산성

로컬키트가 방문한 공산성은 대백제전 축제가 한창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퍼레이드가 공산성 앞 도로와 금강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백제의 옛 의복을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웅진 시절 한 나라의 수도로써 북적이던 모습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대백제전 축제 모습

산성을 오르는 동안에는 조용하고 한적한 공주의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서 공주시의 전경을 감상하던 중, 우연히 공산성 해설사님을 만나 이야기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공산성 해설 자원봉사자님

"공주의 관광산업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우리 공주는 큰 공장이나 회사가 없어요. 호남선도 천안에서 공주, 논산, 전주로 연결하면 일직선이 되는데 지금은 대전을 거쳐서 돌아가게 되어있어. 왜냐하면 옛날 상투를 한 유림들이 산을 끊으면 인재가 안 난다고 그래서 돌려버렸어. 그래서 산업이 없고, 그 대신 이런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지. 공기도 좋고. 그래서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이런 축제도 하고 있어요."


"그럼 공주가 단순히 관광지라는 역할을 떠나 더 발전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관광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외국 스페인 보면 너무 관광객이 많이 와서 지역 주민들이 반대를 하기도 했잖아요. 관광이 실속 있게 해야지 많이 오기만 하면 역효과가 나죠. 시끌버끌해지고, 쓰레기 때문에 오염되고. 그래서 주민이나 정부들이 각각의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들 보면 제민천에 미나리라든지, 정화할 수 있는 풀이나 숯을 망에 넣고 정화시키는 그런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에 한 30년 전에는 이런 게 잘 안 됐어요. 그런데 내가 일본 가서 일본의 도시계획 조사 이런 걸 배워서 왔죠. 지금은 많이 수준이 올라갔어요. 그런데 요즘 또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게 있죠. 요즘 농촌 인구가 고령화되어서, 젊은 사람이 없잖아. 요즘에는 복지행정이 잘 되어있어서 노인분들 위해 복지관도 하고 노래랑 춤이랑 그런 게 잘 되어있어 좋지만, 노동력이 없다는 게 문제지. 농촌에 아기 울음소리를 들어볼 수가 없어. 그래서 이제 외국 사람들 근로자들이 농사를 하는데 아무래도 어렵죠."


"아까 전 공주의 교육이 발전했다고 했는데, 교대나 공주대학교의 젊은 세대들이 공주에 있지는 않나요?"

“이게 또 문제죠. 좋은 정책들, 청년들에게 수당을 주고 취직도 알선해 주고 그러는데 이쪽으로 안 가려고 하지. 또 지금 대학들은 언젠가부터 우후죽순 많이 나왔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요즘은 대학 나온다고 해서 취직이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공부는 많이 하는데 결국 산업이 없고 기업이 없으니 다 떠나죠. 인프라도 부족해요. 특히 농촌에서는 의사가 부족해요. 공주에서도 병원 가려면 서울로 대학병원을 많이 가죠."


인터뷰를 진행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백제'라는 역사가 마치 그림자처럼 현재의 공주에 자리 잡고 있다. 역사라는 오래된 이미지는 공주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렸고, 현재 공주는 산업의 부재와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제의 오랜 역사와 유산은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말고, 현재에도 유용한 자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백제의 유산과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만큼, 이 잠재력을 활용해 현명한 방향으로 새로 공주만의 문화를 피워내야 한다.


공주, 새로운 역사를 쓰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로컬키트는 공주의 새로운 문화 산업을 찾아 신관동에 방문했다. 방문한 신관동은 공산성 앞 거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거리는 다른 도시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대학가의 청춘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이 젊음을 중심으로 ‘웰컴 투 신관동’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주시를 리브랜딩 하려는 이 시도를 탐구하고자, 로컬키트는 신관동 페스티벌의 김상훈 팀장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년에는 욕 엄청 먹었죠. 제 별명이 뭐였냐면 너 되게 싸가지 없다. 대신 뚝심 있다."

김상훈 팀장님

“공주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제가 서울에서 살다가 23년 전에 부여로 갔어요. 제가 도시 브랜딩 전공이거든요. 부여에 이제 공무원으로 갔다가, 2년 하다가 공주에서 문화도시 한다고 해서 이쪽으로 넘어오게 됐죠. 그래서 지역 생활한 지는 3년 정도 된 것 같아. 나름 재밌게 살고 있어요. 하나하나 내가 만들어 가는 게 재밌어요. 이 신관동 축제도 작년에 제가 처음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반대가 무지하게 심했어요. 처음에는 이걸 왜 만들어, 차를 왜 막아, 이거 만들어서 뭐 할 거야 막 욕을 엄청 먹었죠. 근데 저는 목표가 있었어요. 저는 문화도시 사업을 하거든요. 문화도시라는 게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사업이에요. 옛날 새마을 운동이 하드웨어를 바꿨다면 문화도시는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계몽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바꾸고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만드는 사업이거든요."


“신관동 페스티벌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저는 신관동이란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축제 명칭도 웰컴 투 신관동이야. 우리가 빅데이터 조사를 해보니 공주하면 백제, 공산성, 무령왕릉 이런 늙고 재미없는 얘기밖에 안 나와요. 그러면 또 다른 뭔가를 만들어 줘야겠죠. 신관동은 대학교 앞에 있어서 젊은 거리가 돼야 하거든요. 그래서 신촌 대학로 같이, 홍대거리 같이 하고 싶었어요. 젊은 거리 축제를 만들겠다. 근데 처음에는 막 안 된다는 거야. 그런데 그냥 했어요. 반응이 좋았어. 올해 또 한 거지 그래서. 반응 좋은 거예요. 분명히 내년에도 또 할 거야. 근데 내년에는 이제 제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한테 좀 넘겨줄 거예요. 나는 플랫폼을 깔 테니 채우는 건 너네가 해라. 이게 몇 번 반복되면 내가 없어도 스스로들 뭔가 만들어내겠죠. 저는 그런 걸 만들고 싶었어요.”


“공주에서 백제라는 색채를 빼고 새로운 대학 문화를 살린다는 아이디어가 대단한 것 같아요. 그런데 왜 공주는 백제의 이미지를 확립하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명확해요. 공주가 백제 관광도시로 개발하기 전에 유적들이 유네스코 등재가 됐어요. 경주는 유네스코가 되기 전에 보문단지도 만들어주고 복원도 많이 해 놓았는데 공주나 부여는 유네스코가 먼저 들어버렸지. 그리고 신라는 그나마 복원할 수 있는 그런 서적들이나 고증 자료들이 많아요. 유네스코 물론 들어도 복원할 수 있어요. 근데 100% 고증이 돼야 해요. 근데 백제는 책이 없어. 지금 문헌들은 다 일본에 있죠. 그냥 백제는 땅 속에서 못 꺼내고 죽어가는 거야.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경주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계속 수도였어. 근데 백제는 한성백제, 웅진백제, 사비백제로 나눠져 있어서 분산돼 있어요.”


“그렇다면 백제를 제외하고, 앞으로 공주에서 보여줄 만한 이미지에는 무엇이 있나요?”

“이 지역이 좋은 점은 굉장히 여유스러워요. 제가 부여에서는 부여와 너라는 컨셉으로 부여 와요 놀러 와요 이런 의미를 담아서 슬로건을 만들었는데 공주는 여유스럽다 해서 공주 여유라고 지었어요. 충청도 사투리 담아서. 그래서 번잡한 거 싫어하시는 분들은 여기 너무 좋죠. 답답한 게 없고. 조용하고 편안한 도시. 걸어 다니기 너무 좋죠. 저는 고현학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봐요. 그래서 걸으면서 도시를 봐요. 서울을 보면 종로랑 강남을 걷다 보면 강남은 걷기가 싫어. 길이 똑바르고 교통은 편하긴 하지만 재미가 없어요. 길은 꼬부랑해야 돼요. 사람의 본능 중에 관음적 본능이 작용해서 그래. 그래서 골목길이 인기가 있는 거야. 이런 엿보기 때문에. 근데 이게 직선이면 저 앞에 뭐가 있는지 너무 잘 보여서 재미가 없어요. 근데 이런 골목에서는 뭐가 나올까 호기심이 자극돼서 보물찾기처럼 재밌어지거든요."

웰컴 투 신관동 축제 모습

“그리고 지금 하는 영화제가 변사 영화제예요. 여러분 변사라는 거 본 적 없죠? 저도 본 적이 없어요. 더 할머니가 봤을 거야. 근데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서 과거도 챙기겠다는 걸 보여줬어요. 레트로 느낌이 신선해진 것처럼 과거도 재미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거 끝나고 뮤지컬도 새로 만들었어요. 공주가 하숙 문화가 되게 발달했던 곳이에요. 여기 좁은 동네에 고등학교가 5개 있었고 대학교가 3개 있었어요. 그래서 하숙문화가 되게 발달했던 곳이었는데 그 문화를 가지고 뮤지컬도 주크박스 형식으로 귀에 익은 대중가요를 가지고 만들었어요. 재밌을 거야. 같이 한 번 보러 갑시다."


마무리

인터뷰를 진행하며, 앞으로 로컬키트가, 공주가, 더 나아가 지방 도시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로컬키트는 늘 지역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왜 사람들이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늘 답을 찾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역 자아가 찾아야 할 고유한 가치는 바로 독보성이다. 특성과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다른 도시의 성공사례를 복사하려는 시도는 대도시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될 수 밖에 없다. 공주에서만 할 수 있는, 그 도시만의 독특한 매력을 찾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과 문화를 창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공주 사람들은 세종이 있는 게 인구가 빠져나간다고, 위험 요인이라고 하지만 저는 기회라고 봐요. 작은 도시에 30만 명 되는 인구의 도시가 붙어 있다는 건 너무 좋은 기회 요인이거든요. 쇼핑하고 아파트 살고 싶은 사람은 세종 가서 살면 돼. 그리고 여기로 역사랑 맛집 찾으러 오면 돼. 세종은 그런 재미는 없거든.”

- 김상훈 팀장님 인터뷰 中


그렇다면 공주만의 매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역설적이게도, 공주의 발전을 늦추게 했던 역사이다. 공주의 역사적 유산들은 단순히 오래되고 재미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가 가진 무형의 가치이다. 석장리의 단순한 돌조각이 구석기시대 뗀석기라는 이름이 붙여진 순간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것처럼, 우리는 주어진 유산에 어떤 아이디어와 경험, 추억을 붙일지 고민해야 한다.


웰컴 투 신관동에서 볼 수 있듯, 공주의 오랜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흔적에서 머물고 있지 않고 오늘날까지 흐르며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만일 신관동이 서울의 핫플 거리를 무작정 따라 했다면 지금처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전에도 신관동은 대학가로 프랜차이즈 상권들이 서울의 대학가와 비슷하게 입점해 있었다. 여기에 지역적 특색을 살린 기획이 더해지자 비로소 현재의 개성을 가진 신관동이 된 것이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낡을 뿐이다. 현재의 우리가 돌아볼 때, 역사가 되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물려준다. 비록 지금은 공주의 과거가 낡고 힘없어 보일지 몰라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공주만의 경쟁력이 되어 신선함이라는 결실을 맺을 것이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공주시 전경

마무리하며, 로컬키트가 느낀 공주를 적어본다. 공주는 명절의 화목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는 할머니집과 같다. 공주는, 바쁘고 시끄러운 현대 사회에 지친 우리에게 백제 시대의 역사와 함께 현대적인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맛있는 밥을 든든하게 먹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어른들이 얘기해 주시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쉬어가는 마음속 고향. 한 번쯤 제민천에서 시작해 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산성을 오르고, 신관동에 가서 김피탕을 먹으며 공주만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local.kit in 충청> 행정팀 오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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