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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간, 순천 기적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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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과거 대한민국에 독서 열풍을 일으켰던 MBC <!느낌표>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2001년 방영된 이 프로그램의 첫 포문을 열었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는 국민 MC 유재석과 김용만이 주축이 되어 매달 1권의 책을 소개하고, 책을 매개로 시민들을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MBC 느낌표 제작팀과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 운동 본부(책사회)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도서관 건립을 추진했다. 순천시는 순천시민과 아이들이 꿈과 상상력을 키우고, 책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 해당 사업에 참여했다. 그 결과 순천에 기적의 도서관이 탄생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

<!느낌표> 방송을 통해 전 국민적 관심 속에서 설립된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대한민국 제1호 기적의 도서관이자 최초의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유아는 물론이고 취학 전, 후 모든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이용 가능한 도서관이다. 도서관 내부에는 영유아 수면실인 <코~하는 방>부터 미취학 아동들이 부모님과 함께 책을 보는 <아그들방>, 고학년 어린이들의 도서 열람실 <지혜의 다락방> 등 아이들이 책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다양한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순천의 모든 어린이들이 어떤 차별도 불평등도 없이 마음껏 책을 읽고 꿈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어린이들의 꿈과 재능이 발현되는 창의적인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도서관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며 성장해 온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현재 어떤 기적을 꿈꾸고 있을까?



꿈의 공간, 순천 기적의 도서관

3월 29일 오후 4시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순천 기적의 도서관 허재원 관장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관장님과 함께 도서관 곳곳을 돌아본 뒤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 허재원 관장님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설립된 배경과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아이들한테 그냥 “너희들 잘 자라야 돼” 하는 것보다 그런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아이들이 평등하게 책을 볼 수 있고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기존에 도서관은 조용히 책만 읽는 공간이었어요. 보통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도서관에 오면 “도서관이야. 조용히 해야 돼. 뛰면 안 돼.”라고 하는 것이 도서관 문화였는데, 저희가 바꿨죠. 기적의 도서관은 아이들이 “책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도서관이 아이들이 불편함 없이, 거부감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의 일일 평균 이용자 수는 얼마나 되나요?

평일 기준 200~300명 정도, 주말엔 500~600명 정도 방문하시는 것 같아요. 평일 오전엔 유치원에서 단체로 견학을 오기도 하고, 할머니랑 손주와 함께 오는 경우도 있어요. 평일 오후엔 초등학생 친구들이 하교 후에 친구들과 함께 와요. 그리고 주말엔 가족 단위로 많이 와요. 저희가 인당 30권씩 빌려 드리는데, 4인 가족이 30권씩 총 120권을 빌려 가는 경우도 있어요. 놀라면서도 뿌듯한 순간이죠.


순천 주민들 외에 타 지역 주민들도 많이 오시나요?

네. 여수, 광양 주민들도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가 하나의 생활권이잖아요.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순천에 놀러 왔다가 방문하시는 분들도 계시기도 하고요. 실제로 저희가 여수, 광양 주민분들께도 인당 5권씩 책을 대여해 드리고 있어요.

책바다 서비스

그리고 ‘책바다 서비스’라고 저희 도서관에 원하는 자료가 없을 경우, 협약을 맺은 다른 도서관에 신청해서 소장 자료를 서로 이용할 수 있어요. 서울에서도 저희 도서관 책을 빌릴 수 있는 거죠. 책을 매개로 전국 단위로 교류하게 되는 이점이 있어요.


지역 사회와 연계해서 진행되고 있는 활동이 있나요?

<기적의 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프로그램이에요. 도서관에서 하룻밤 잔다는 게 큰 의미가 있거든요. 첫째 날은 도서관에서 작가들을 만나기도 하고, 공연을 즐기기도 해요. 둘째 날은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를 여행하며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어요. 책과 순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이죠. 가족들에게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에요.


기적의 스테이 외에도 운영하고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나요?

네, 그럼요. <북스타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순천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라는 의미로 그림책을 선물하고 있어요. 아이가 생애 초기부터 책을 가까이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그림책을 통해 아이와 부모가 유대관계를 형성하길 바라는 취지에서 운영되고 있어요.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되잖아요.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순천시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북스타트 선물 꾸러미

도서관 내부에 공간이 정말 많더라고요. 가장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공간은 무엇이며, 그 공간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별나라인 것 같아요.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공간이기도 한데요. 별나라는 원통형 열람실로 아이들이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방이에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책이잖아요. 별나라도 마찬가지예요. 그 공간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상상을 하고 편안함을 느끼죠. 아까 보셨다시피 공간 자체가 둥근 원형으로 되어 있어서 굉장히 편안한 느낌을 줘요. 그래서 간혹 그곳에서 멍 때리는 아이들도 볼 수 있는데, 무슨 상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별나라에서 만난 순천의 아이들

실제로 관장님과 함께 도서관 곳곳을 구경하던 중, ‘별나라’ 공간에서 순천 동명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8명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별나라에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슬쩍 다가가 말을 걸어보았다.


여긴 언제 왔어요?

오늘 학교 끝나고 왔어요. 한 3시 30분쯤!?

기적의 도서관에 자주 오나요?

네, 매일 와요. 학교랑 가까워서 친구들이랑 다 같이 와요.

도서관에 오는 이유가 뭐예요?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까지 시간이 비는데, 그때 시간을 보내기 좋아요. 또, 시설이 너무 좋아요! 엄청 크잖아요. 책 읽는 공간도 있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매일 오게 되는 거 같아요.

도서관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별나라요! 보통 도서관에선 조용히 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들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편하니까!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기적의 도서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7시까지 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6시까지 하거든요. 친구들이랑 조금 더 놀고 싶은데 도서관 아니면 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1시간이라도 여기에 더 있고 싶어요.



순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이곳 기적의 도서관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이곳 기적의 도서관을 방문할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기적의 도서관이 얼마나 소중한 장소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기적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여하는 도서관의 의미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운영하시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으신가요?

아이들은 소중하잖아요. 소중한 아이들을 지켜야 될 의무를 가진 것은 어른들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 것인지 결정은 못 해주지만, 인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책과 공간을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어떤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지금 너무 디지털로 달려가고 있잖아요. 한쪽 공간 정도는 핸드폰도 버리고 진짜 책만 볼 수 있는 그런 공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쉽게 말하면 전자매체가 없는 공간을 조성해서 2시간 3시간 이렇게 책만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그만큼 아이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되겠죠. 뭐가 되었든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이날 순천 기적의 도서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엄마와 함께 동화책을 읽는 어린이들부터, 새 학기를 맞아 친구들과 함께 찾아온 초등학생들, 그리고 손자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방문한 어르신까지.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책’과 ‘공간’을 매개로 지역 주민들과 밀접하게 소통하고 있었다. 특히나 어린이들이 편안하게 머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서, 지역 커뮤니티 역할을 확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기적의 도서관은 지역 사회의 소중한 자원이자, 소중한 인연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하나의 ‘장’이다. 우리 역시 기적의 도서관에서 동명초등학교 8명의 아이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환하게 반겨주던 아이들의 미소가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현재 순천을 비롯한 전남은 저출산 심화 현상에 따라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폐교하는 학교가 5곳에 달하고, 46개 학교가 신입생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곳. 그런 아이들을 두 팔 벌려 맞아주는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이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선 이러한 노력들이 지속되어야 한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시작으로 전국에 18개의 기적의 도서관이 건립되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추억을 안겨주었던 것처럼 기적의 도서관이 더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글·사진: <local.kit in 전남> 예술팀 김솔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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