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도성의 과거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교통 요충지이자 하늘길의 관문, 여수공항에서 동쪽으로 차를 타고 약 5분 정도 가다 보면,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은둔되고 단절되어있던 한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오랜기간 외부에게서 잊혀져 있었고 근래에 들어서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1925년 여수에 선교사 윌슨이 세운 병원을 전신으로 하는 애양원(愛養院)이 설립되었다. 애양원은 여수 최초의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시설로써, 기독교 박애 정신을 바탕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사랑으로 치료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초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한센병 환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점차 이곳 애양원의 근처에 주거지를 잡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도성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곳 도성마을은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비유되었다. 오랜 기간 외부에게서 차별받았고 지역 주민들은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한센병은 피부가 손상되는 질병인데 의료 지식이 없는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한센병이 “피부가 썩고 문드러지는 병”, 일명 문둥병이라고 불렸다. 자연스레 문둥병자라는 차별과 핍박 속에서 주민들의 마음 속에도 서서히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이곳 주민들은 외부와의 단절로 인해 스스로 자생하기 위해서 축산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많은 수의 닭과 돼지들이 이곳에서 길러졌고, 축산업은 도성의 주요 산업이자 경제 그 자체가 되었다.
세월의 흐름은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이곳 도성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는 더이상 마을에 한센병이 존재하지 않고, 교통 인프라도 개선되어 하루에 여러번 여수와 순천으로 가는 버스가 마을 내부까지 들어온다. 또한, 포털 사이트에 도성마을을 검색하면 굉장히 흥미로운 검색 결과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환경오염, 매연, 그리고 축사로 인한 악취 등등 굉장히 부정적인 뉘앙스의 키워드들이 자주 등장하는 반면, 근래에는 도시재생사업, 문화공간 등등 달라진 결과들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센병이 종식돼서? 발전된 사회 인프라와 경제 선진화? 혹은 지역 사회의 변화? 로컬키트는 현재 일어나는 이 변화와 미래에 집중하기 위해 직접 도성마을을 방문하여 취재해보았다.
Chapter 2. 도성의 현재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필자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귀여운 팻말과 벽에 그려진 벽화들이었다. 이곳이 아픈 상처와 깊은 역사를 가진 공간이라고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마을의 분위기는 굉장히 정겹고 평화로웠다. 필자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도성마을의 편견을 입구에서부터 직접 마주치니, 스스로에게 쓴소리가 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서풍이 얼굴을 때리자 그제서야 조금씩 공기 속에서 가축의 분뇨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오감중 가장 강렬한 것은 후각. 도성마을의 냄새를 맡고 필자는 이곳에 더 강한 끌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곳 도성마을에서 현재와 미래의 가교, 한센인들과 외부인들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에그갤러리라는 문화센터이자 예술공간. “에그갤러리”의 박성태 관장님과 인터뷰를 통해 이곳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 수 있었다.
Q: 먼저 자기소개와 어떤 일을 하시는지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 언론사에서 20년 이상 기자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2013년도에 이 마을에 대해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게 됐어요. 그때 이 마을과 인연을 맺어서 2021년 9월에 이 공간을 이제 오픈하게 됐습니다. 운영한지는 약 2년 5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Q: 대한민국에 여러 마을들이 많은데 특별하게 이곳 도성마을을 선택해서 아트 갤러리를 설립하신 계기가 특별히 있으실까요?
A: 매우 우연한 계기인데 제가 주일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다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손양원 목사님이 여수의 요양병원에 재직하실 때 한센인들, 중증 나환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짜서 치료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자기 입으로 이렇게 피고름을 짜서 치료를 해줄 수 있을까, 이게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손양원 목사 기념관을 직접 찾아가봤는데 주말이라 문이 닫혀있었어요. 그래서 주변이라도 들리자 싶어서 온 곳이 바로 이곳, 한센인들이 사는 마을이었죠. 그때 제가 처음 봤던 한센인이 닭을 기르는 농장 장로님이셨어요. 그분은 빨간 눈을 가지고 계셨는데, 저희 나이 또래는 한센인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람을 잡아먹는 그런 사람으로 인식이 돼 있었어서 저 역시 한센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공포가 완전히 몸에 체화돼 있을때라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고민을 하다 제가 지금까지 이 사람들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한센인들의 세상에 이 존재를 알리고 편견과 경계를 해소시켜야 되겠다는 사명감이 생겨서 2013년 11월 정도에 이 마을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한센인들은 카메라로 찍으면 기관총을 얼굴에 대는 걸로 생각할정도로 사진 찍는 거에 대해서 경계심이 커요. 그런데 어떤 이방인이 막 와서 설치니까 오랫동안 외부하고 단절된 생활을 한 사람들이 어떻게 대해야 될지를 모르면서 이제 마을이 이제 웅성웅성했죠.
그 당시 마을 전도사님께서 마을이 너무 열악하니까 사진만 찍지 말고 10년간 우리 마을을 위해서 노력해 준다는 약속을 해주면 사진전을 하게 해주겠다고 말씀해주셔서 저는 약속을 했고, 작년이 그 약속의 10년차가 되었네요.
Q: 이곳 도성마을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장소인가요?
A: 이 마을의 주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극단적인 소외 사태를 경험하고 자신들의 고향에서 뿌리채 뽑혀서 여기에 이식 당한 사람들이에요. 다시 고향으로 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 돼버린거죠. 그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근원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매우 좋은 장소고 이 마을 앞에 우리나라 가장 최첨단 화학 단지, 여수 국가산업단지와 포스코 광양제철이 있어요. 가장 자본주의적인 산업과 대비되는 장소에 이 마을이 있는 거죠. 오늘날 현대사회의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어떤 모순들 이것까지 들춰낼 수가 있고 환경, 생태, 인권에 관련된 문제까지 다 예술로 접근해 볼 수가 있어요.
Q: 아트갤러리가 도성마을에서 가지고 있는 역할은 어떤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A: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할 일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 마을 사람들은 외부에 나갈 수가 없었던 사람들이니까요. 이 사람들의 빗장을 무엇으로 열지 긴 고민을 했어요. 제 생각에 아트갤러리는 일반인들과 한센인들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저희같은 예술가들은 우편 배달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우체국에서 우편 배달부가 편지나 뭘 가져오면 기다려지고 그걸 열어보려고 기쁘잖아요. 예술가들이 그 역할을 하는 거에요.
Q: 아트갤러리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언제인가요?
A: 2022년도에 이곳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 하나 생겼어요. 이곳 주민들은 자기들이 먹을 농산물을 직접 재배해가지고 먹는데 제가 그 농산물들을 팔러 나오시라고 말했어요. 그때 주민분들께서 하신 말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우리 같은 문둥이들이 만든 걸 누가 사 먹어”
“우리가 한 것을 사기는 사도 밖에 나가서 가다가 버려버릴 거야”
제가 그래도 “지금은 이제 여건이 달라졌으니까 한번 해보세요” 해서 반신반의 끝에 두세분이 나오셨어요. 그래서 대파, 양파, 감자, 고구마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나오셨는데 난리가 났죠. 외부인들이 서로 사주고 자기가 생각했던 경계심 없이 그 자리에서 맛도 보고 더 살 수 있냐고 물어도 보고 그러면서 지역주민들의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과 갈등이 사라졌어요. 이런 예술 공간이 있으니 전시 오프닝을 계기로 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모이게 되는 거죠.
Chapter 3. 도성의 미래
Q: 도성의 과거를 직접 바라보셨고, 현재를 저희와 같이 보고 계시고, 그렇다면 도성의 미래는 어떻게 보시는지?
A: 우리가 흔히 사회에서 공존 그다음에 공생을 얘기하잖아요. 근데 그걸 잘 들여다봐야 돼요. 거기에는 우리 사회의 지배 권력자들이 전체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위해 은밀한 차별과 억압을 숨기는 논리예요. 사실은 우리가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의를 주장하고 윤리를 주장하더라도 이런 극단적인 소외를 받은 공동체를 놔두고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작은 공동체가 어떤 새로운 미래적인 가치를 제공할까 고민을 해보세요. 저는 이곳 도성마을이 우리 사회나 인류 사회가 가지는 여러 가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봐요. 그 방법은 바로 “애양(愛養)"이에요. 사랑으로 기른다. 우리 사회나 인류가 사랑으로 서로 이웃을 대하고 사회를 그렇게 접근해서 고민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인간의 문제와 더불어서 우리 사회와 인류의 미래적 가치를 이곳에서 고민하고 그런 과정들을 밟아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소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해요.
Q: 마지막으로 젊은 청년, 미래 세대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A: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 유대 나라의 가장 변두리 갈릴리 땅에서 먼저 시작을 하셨거든요. 그런 것처럼 가장 낮은 곳을 돌아볼 때 건강한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청년 학생들도 이런 극단적인 소외를 받은 집단과 공동체에서 같이 사는 사회에 대한 가치를 기른다면 정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질 것 같아요. 요즘 청년 학생들은 인생이 마치 짜여진 통과 의례 처럼 되어 있잖아요. 그런 점들에서 조금이라도 한 발 벗어나서 관심을 가진다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Epilogue: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를 마치고 감사 인사를 드리며, 글을 예쁘게 잘 써보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때 대표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저희를 예쁘게 쓰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 와서 느끼고 가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곳 도성마을이 저에게는 사진가로, 여러분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영감을 주고 인식의 확장을 계속 심어줄 수 있는 동력이 되었으면 합니다.”
도성의 과거를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길. 편견을 버리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가교. 단순히 외부인들을 초청하여 도성의 역사를 알리는것을 넘어 이곳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한센인들이 가장 경계 하던 사진을 통해 마음의 빗장을 푸는 열쇠를 만든 것처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경계심과 상호간의 갈등 역시 그 본질에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가들은 같은 물건을 찍더라도 개개인의 개성에 맞추어 다른 각도와 조명으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한다. 이와 비슷하게 도성마을을 해석하는 방법도 필자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역시 다를 것이다. 도성마을이 지닌 가치와 영감, 그리고 이곳의 독자적인 라이프스타일 등등 어떤 부분에 집중할지 역시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달려있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이기에 필자는 오히려 더이상의 글을 지양해보고자 한다. 도성마을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있으며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하는지 스스로의 답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그 시각으로 현대 사회의 반목과 다툼을 바라본다면 어떤 솔루션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글·사진: <local.kit in 전남> 생활팀 최성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