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트빌리시(3.20 - 3.21)
20일 밤
밤 10시가 다 돼 트빌리시 공항에 내렸다. 국제공항이란 이름이 무색한 초라한 규모였다. 마치 군소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우선 계획대로 환전부터 하러 갔다. 조지아의 '라리' 같은 제3세계 화폐는 한국에서 환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국에서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고, 현지에서 조지아 라리로 환전해야 하므로 계산이 복잡하다. 1 라리(GEL) = 400원쯤 된다. 환전 후 유심칩을 구매하러 갔는데 아직 환율이 손과 머리에 익지 않은 탓에 거스름돈을 잘못 받는 실수가 있었다. 뒤늦게 깨닫고 직원에게 돌아가 항의를 했는데, 그녀는 의심하는 눈초리였지만 내 말을 믿고 거스름돈을 더 내주었다. 이게 조지아의 두 번째 인상이었다. 웃지 않고 무뚝뚝하지만 불친절하지 않은 느낌.
늦은 밤에도 공항에서 시내 중심부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조사해왔기 때문에 공항 밖을 나가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대충 공항 밖을 나가면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는 곳이 버스 타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공항 밖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컴컴한 공항 앞을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니 버스정류장을 나타내는 푯말이 보였고, 오래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다. 트빌리시의 버스는 한국 버스보다 좀 더 길고 출입구가 앞, 중간, 뒤 세 곳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지하철과 겸용인 버스카드를 태그 하던지 현금을 낼 수 있는데, 카드를 찍거나 현금을 낼 수 있는 단말기가 가운데 문 쪽에 있기 때문에 주로 가운데 문으로 탑승한다. 가운데 문 버스요금 단말기 근처에는 사람들이 버스를 제대로 타고, 돈을 잘 내는지 감시하는 버스회사 직원이 서있었다. 이 현금을 넣는 버스요금 단말기는 동전만 가능했는데, 자판기처럼 버스 요금을 넣으면 영수증과 거스름돈이 밑구멍으로 댕겅 떨어지는 구조였다. 시내버스 요금은 한화로 약 250원 정도.
버스에 올라 알아온 대로 버스요금 투입구에 동전을 집어넣으려고 하자 곁에 서 있던 버스회사 직원이 나를 제지했다. 아마 조지아 말로 '교통 카드는 없느냐?' 정도의 질문을 한 것 같은데 동전뿐이라고 하자, 요금을 내지 말고 그냥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며 관찰한 결과, 현금을 받는 버스요금 단말기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손님들은 카드로 계산하던가, 카드가 없는 경우 나처럼 그냥 태워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얻은 250원의 행운에 기분이 좋았다.
트빌리시의 가장 번화한 곳은 '자유광장(Liberty Square)'이다. 번화가라 밤에도 덜 위험해 숙소가 많이 몰려 있고 주요 관광지와의 접근성이 좋아서 트빌리시 여행자들은 이곳 인근에서 많이 묵는 편이다. 나도 이 근방에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자유광장' 인근에서 내렸다. 주황색 조명이 빛나는 도시는 참 예뻤다. 드디어 1박 2일 만에 트빌리시 한가운데 도착한 것이다. 트빌리시의 랜드마크 자유 기념비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재촉해야 했다.
숙소 찾는 일은 참 어려웠다. 숙소 예약 사이트의 후기에서 본 '숙소 찾기가 좀 어려워요'를 너무 가볍게 넘겼나 보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꼼꼼히 뒤져봐도 'hostel' 또는 'guest house' 어떤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길 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청해보았는데, 그는 열심히 찾아주려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이라 마음이 조급했다.
심기일전 후 다시 건물들 번지수를 하나하나 체크해 가던 중 한 건물 6층 테라스에서 꽝꽝 울려 퍼지는 despacito 노랫소리가 들렸다. 조명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사람들 몇몇이 춤추는 듯 부산해 보였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어떤 건물의 6층이었는데, 그 6층이라는 연관성으로 저 요란 법석한 집이 내가 찾는 집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건물엔 정말 말도 안 되게 좁은, 바닥이 삼각형인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무서워 탈 엄두가 나지 않아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6층 입구에도 아무 간판이 없어서 긴장된 마음으로 벨을 눌렀더니 화려한 파티 의상을 입은 남녀 네 명이 왁자지껄 문을 열어준다. 혹시.. 여기가 호스텔이 맞나요?
얼렁뚱땅 숙소를 제대로 찾은 것이다. 숙소 예약 어플을 보여주고 재차 확인했는데 맞다고 얼른 들어오라는 손짓 했다. 그들은 이란 사람이고, 친구 사이라고 했다. 아마도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판을 벌인 것 같았다. 나는 8인실 혼성 도미토리의 침대 하나를 예약했었는데, 오늘 숙소 예약자는 나 하나뿐이라며 화장실까지 딸린 더블룸을 제공해주겠다고 했다.(나이스!) 그들의 안내로 화장실과 베란다까지 딸린 더블룸에 천근만근 같은 배낭을 내려놓았다. 드디어 오늘 임무를 무사히 다 수행했다. 베란다에서는 나리 칼라 포트리스가 훤히 보였다. 짐 풀기에 앞서 베란다로 나가 이 이색적인 풍광을 한참 구경했다. 3월의 밤바람이 찼다. 이제야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