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청년마을, '가자미마을' 김종률 청년 이야기
‘웃는 얼굴’과 처음 만들어본 포토폴리오만을 가지고 가자미마을에 온 한 청년. 그 이후로 오히려 지역에 남아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재미있는 경험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며 하는 일에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 청년은 도시로 간 친구들과 만날 때면 당당하게 자신이 하는 가치 있는 일들을 이야기하며 디자이너로 자신만의 사업을 일구고자 하는 꿈으로 타지 청년들에게 지역에서도 기회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합니다. 김종률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Q 가자미마을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경주 같은 지역에서는 학생들이 일자리를 빨리 갖거나 색깔 없이 고정 체계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서 바로 일자리나 혹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그림을 많이 그려요. 저는 군대를 다녀오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광고 대행 쪽 디자이너를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일러스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죠. 저는 사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는데 꿈을 펼치지 못하고 실업계 쪽으로 갔었고 군대 다녀오고 나서 이 한이 풀어졌던 것 같아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요.
‘마카모디’ 채용공고를 친구가 먼저 접해서 저에게 알려주었고 바로 지원했어요. 그때의 전 디자인이라고 하나도 뽑아보지 못한 새내기였고 면접에 준비한 포토폴리오가 제 첫 작품이었어요. 면접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당당함과 웃음밖에 없었는데 다음 날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와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Q ‘가자미마을’에서 업무 생활은 어떤가요?
가자미마을의 공식적인 프로그램이나 청년 일상연구소의 ‘에코캠프’, ‘그린 액션’ 같은 홍보가 필요한 내용은 빠른 시간 안에 그릴 수 있어요. ‘가자미식탁’ 때는 홍보부 팀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카드 뉴스로 만들거나 ‘하삼’이 웹툰 같은 개별적인 기획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금은 프로그램이 끝난 기간으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업로드하고 있어요.
제가 이 회사와 함께 하면서 실력의 성장보단 한 사람으로서의 성장이 더 가치 있다고 느꼈어요. 저희가 많은 프로젝트를 하는데 초반에 자주 오타나 오류가 생겨서 혼자 우울해하며 ‘내가 또 실수했어, 나는 이걸 하지 말아야 하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음 날 출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대해 주셨어요. 저에게 첫 회사이고 아무런 실력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런 순간들을 통해 인간관계와 책임감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고 책임감 안에서 실력이 어느 정도 성장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배움의 과정이 제가 재미있게 디자인하며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목표도 생긴 것 같아요. 제 목표는 가자미마을 구성원 한 분 한 분의 캐릭터를 잡아서 하삼이랑 소통하는 일상을 그려보고 싶어요.
Q 하삼이의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가자미식탁’ 당시 홍보부 크루원들과 함께 청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녹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하삼’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했어요. 가자미마을 홍보영상에 제가 출연했는데 그중 가상인물 이름이 춘삼이예요. 하지만 춘삼이의 ‘춘(春)’자는 여름과 어울리지 않으니 계절에 따른 여름 ‘하(夏)’자를 사용해 하삼이가 되었어요. 사실 어떤 새로운 인물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하삼이를 만들기보다는 제 내면의 속마음을 표현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하삼이는 직접적으로 울고 기뻐하는 장면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데 그건 제 속에 있는 감정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기술과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많이 부족하고 큰 세계관이 작업된 것이 아니기에 시간대가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캐릭터를 통해서 가자미마을에 일어나는 일들을 표현하면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신이 있었고 하나의 고정 캐릭터가 있다는 게 디자인 작업할 때 기둥 같은 든든함을 느낄 수 있어요.
Q 경주출신이라고 들었어요. 가자미마을을 통해 이 지역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가 경주 시내에서 지낼 때 감포라는 동네는 진짜 조용하고 관심이 떨어진 동네였어요. 근데 ‘마카모디’와 가자미마을이 생기고 감포 읍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을 ‘1925감포’ 카페로 새 단장하여 오픈한 것이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지금 매 수요일마다 문화동에 이벤트나 행사를 할 정도로 시끌시끌해요. 곳곳에 강연과 미술을 하고 음악 소리가 퍼지는 그런 외부적인 변화들을 보면 마을이 살아나고 있는 것 같고 마을분들이 구경 가실 때 마을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요. 이런 변화는 참 좋은 것 같아요.
Q 마을 주민분들은 어떤 인식이나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1925감포’를 기획할 때 저희가 혼자 했다면 어려웠을 텐데 마을 주민분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내주시고 힘을 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이 지역을 살리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계신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어요. 이런 굵직굵직한 인연들을 통해 계속 다리를 놓고 나무가 뻗쳐가듯이 확산되어 지금은 저희들이 ‘청년마을에서 왔어요’ 하면 좋아해 주시는 경우가 많아지고 긍정적인 효과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Q 종률님은 청년마을을 경험하시면서 내면의 변화가 있었을까요?
저는 계속 경주에서 지내다 보니 타지에 있는 사람들이나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적었어요. 근데 가자미마을 프로그램을 위해 마카모디 회사를 다니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제 생각과 시야가 넓어졌어요.
저는 처음에 막연히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융통성이 부족하고 한계가 드러나더라고요. 근데 다양한 경험과 다른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됨으로써 그냥 ‘할 수 있다’가 아닌 ‘나도 이 사람처럼 시나리오를 작업해 볼 수 있겠다’, ‘나도 저 사람처럼 서류 작업해볼까?’이런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방향으로 작용했어요. 예로, 저와는 관련 없는 ‘판화(나무, 금속, 돌 등에 잉크나 물감을 칠하여 종이나 천 등에 찍어내는 그림)’ 하시는 분을 한번 뵌 적이 있는데 그분의 판화 얘기를 들으며 너무 신기하고 새롭고 외국에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순간 평소에 자주 했던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보고 싶다’ 이런 말들이 나왔어요. 전에는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아 가볍게 말해보는 말이었다면 지금은 내 인생에서 다음 행보를 볼 수 있는 시야로 바뀌었어요.
시야가 넓어지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 수 있었고 또 다른 일을 한다면 그 일이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특히 팀으로 일할 때 느꼈어요. ‘가자미식탁’ 홍보팀을 운영할 때 저는 기술적인 일을 했고, 한 분은 문과적인 시나리오와 스토리 작업, 또 다른 한 분은 기획, 활동보고서 등 서류 작업을 잘하셨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겠지만 왜 다들 팀으로 일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얼마 전에 거제 ‘아웃도어아일랜드’ 청년마을에 방문해서 거제 대표님과 디자인과 홍보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분은 저희보다 먼저 이런 일들을 하셨으니 홍보가 참 힘들고 그때그때 받게 되는 압박에 대해서 공감을 많이 해 주셨어요. 옆에 디자이너 한 분이 계셨는데 디자인 이외에 기획 또는 다른 일들을 하시는 걸 보고 제가 너무 한 우물만 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정리되어서 지금은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Q 영향을 주었던 참가자분이 있을까요?
앵이와 히죽님들이에요! 앵죽님들은 정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새로운 사람들이라고 느꼈어요. 같이 이동할 때 제가 운전하고 있으면 뒤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시다가 갑자기 “나무님 귀에서 피나겠다~” 이렇게 장난을 치세요. 그런 분들이 경주에 정착하시면서 자기 인생을 계획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계속 경주에만 있던 제 입장에서는 저렇게 과감하게 결정과 책임을 질 수 있는 모습을 통해 많이 본받았어요. 그리고 저에게는 없는 텐션을 가지고 계셔서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Q 앞으로 나만의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멘토로 생각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조조(조인혁)’이에요. 처음 알게 된 디자이너인데 저와 색깔이 너무 맞아서 매력에 풍덩 빠졌어요. 그분은 로고 작업을 주로 하시는데 여러 일러스트 작업도 하셔요. 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에서 그치는 게 아닌 사무실, 카페, 브랜딩 등 사업적으로도 넓혀 가시는 분이에요. 그분처럼 작품에 제 색깔을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타 지역 청년들이 지역에서 이렇게 일하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 지역에서 뭐든 해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Q 도시로 간 지역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대기업이 있는 도시 울산, 수원, 전주 등 생산적인 분야, 꿈을 펼쳐보기 위해 인프라가 좋은 서울로 가는 청년들도 많아요. 제 친구들 입장에서는 제가 계속 여기 머물며 일하고 있는 것을 경험적인 측면이 아니라 시도하는 측면에서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재미있게 일하는 이야기들을 당당하게 하니 친구들이 저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있다고 말해요. 사실 경험 쌓으려면 서울로 가는 게 맞다고 볼 수 있어서 저도 가끔은 여기에만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일하다 보면 에너지를 받으며 성장해 가는 제 모습을 보고 경주에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고 오히려 서울살이로 서울을 한 번쯤 가보는 건 괜찮을 것 같아요.
Q 지금 경주에서의 일상은 어떠세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시기여서 낮에는 일에 집중, 저녁에는 빨리 쉼을 갖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도 적어요. 서울살이도 그중 하나이고 서울의 전시회를 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감포의 자연은 깊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송대말 해국길을 자주 걸어요.
Q 다른 하고 싶으신 것들이 있으실까요?
저는 손재주가 있고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다음에는 집을 짓고 싶어요. 이번에 ‘아웃도어아일랜드’ 청년마을 공간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인상 깊었어요. 예쁜 공간 속 힘듦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꿈에 대해 알려주세요.
마카모디 면접 볼 때 경주에 나만의 디자인물을 다 붙여서 꾸미고 자신을 알리고 싶다는 목표를 얘기했는데 지금 그 목표를 이룬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잘 마무리하고 싶고 찬찬히 다음 목표를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긍정적인 에너지가 막 솟아나서 목표를 잘 세울 수 있는 기간인 것 같아요.
Q 가자미마을은 종률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가자미마을은 거창한 단어일 수 있지만 ‘인생’인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시간들을 여기에 쓰고 에너지로 뭔가를 하고 있기에 지울 수 없고 돌이킬 수 없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전에는 많이 잡힌 가자미가 한 가정에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감포를 돌게 하는 에너지 역할을 했는데 그런 의미로 생각했을 때 가자미마을은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