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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모임 로칸디나 May 28.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독전>

뚫을 수 있었지만 미처 뚫지 못 한 <독전>, 표국청

<독전>, 이해영, 2018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글에서는 <독전>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훌륭한 배우들이 보여주는 훌륭한 연기에 대한 찬사는 이미 많은 곳들에서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럼에도 필자가 영화를 보는 내내 배우들의 연기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필자는 <독전>이 가지는 한계보다 영화가 가지는 흥미로운 지점을 주로 글을 작성할 생각이다. 여러모로 한계를 깨는 영화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한계에 힘껏 부딪힌 영화는 될 수 있다는 필자의 독단적인 판단이 그 이유이다.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뚫을 수 있었지만 미처 뚫지 못 한 <독전>_표국청

     

   독전을 보기 전 필자의 기대치는 솔직히 말해 높지 않았다. 이는 <독전>의 마케팅이 한국영화 시장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범죄영화의 탈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는 순간 어딘가 진한 아쉬움과 함께 묘한 만족감이 다가왔다. 이 글은 ‘<독전>이 나에게 준 만족감이 과연 낮은 기대감에서 기인하는가?’라는 의문에 답하고자 하는 글이 될 것 같다.     

     

감각을 갈취하려는 영화, 동시에 흥미로운 공간들. 

    

   영화의 시작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앞으로 계속 달려갈 것이라는 것을 말 그대로 볼 수 있다. 거대한 자연에 놓인 한 줄기의 길을 따라 직진하는 원호(조진웅)의 차는 영화가 앞만 보고 달려갈 것임을 선언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빠른 커팅 포인트와 음악의 사용, 카메라 워크, 미쟝센에 의해 화려함을 더해간다. 말 그대로 스타일리시하게 찍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123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가 쉴틈 없이 달려갈 수 있는 일종의 장치가 되어준다. 빠른 이미지의 전환과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 서사의 전개가 이어지는데 이는 마치 사이사이에 있는 비어있는 설명들을 빠른 전환으로 메우려는 듯하다.

     

   더불어 음악의 사용이 거의 매 순간순간을 채우고 있어 감각을 오롯이 빼앗기는 느낌을 준다. 다만 이때의 경험은 내가 감각을 주고자 하는 경험이 아닌 내 감각을 억지로 갈취하려는 영화의 노력으로 느껴지며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쫓고 있는 인물들의 달음박질을 강제로 시각에 때려 박는 느낌을 주기에 이러한 연출적 선택들은 분명 과잉으로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감각을 갈취하는 이미지들 가운데 순간적으로 관객을 놓아주는 지점들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영화가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이런 흥미로움이 도드라진다. 영화가 다루는 공간과 공간이 이어지는 순간, 예를 들어 중국 마약시장의 우두머리 격인 진하림(김주혁)과 일전을 벌이고 빼앗겼던 마약을 탈환하여 진하림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순간 원호와 일행들이 서있는 공간은 거대한 화물선의 위에 놓인 컨테이너 더미의 정상이다.

      

   문이 열려있는 컨테이너에서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면 의식적으로 컨테이너 더미 안에 진하림의 소왕국이 있었다는 인식이 생기지만 다음 컷으로 빠르게 이어지기에 충분한 공간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하며 상식적으로 컨테이너 안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또 하나, 용산역의 주차장에 마련된 통로를 통해 인물들이 들어가게 되는 용산역의 지하공간에 마련된 거대한 크기의 실험실과 마약조직의 아지트. 경부선이 보이는 창문이 달린 공간은 브라이언(차승원)과 원호의 최후의 대결을 보여주는 장소이지만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거대하고 비어있다.

     

   이렇듯 영화는 공간을 관객의 앞에 그냥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그 공간이 속해있는 다른 공간을 제시함에 있어서 개연성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다. 마약을 제조하는 공장들이 위치한 공간을 제시하는 방식 또한 특정한 지역성에 기대지 않고 그냥 어딘가에 놓고 난 뒤 제시한다. 이로 인해 영화는 공간을 넘나들 때마다 이전 씬에서 이루어지던 감각적 갈취에 대한 브레이크를 거는 순간들이 발생한다.

     

   이러한 공간적 설정으로 인해 영화는 지역성을 잃게 되지만 동시에 <독전>은 지역성을 잃는 순간 이야기를 가두고 있던 일종의 편견들을 부수어나간다. 일종의 판타지처럼 인식되는 것,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떠한 공간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이게끔 하는 선택으로 보인다.


   이러한 감각의 갈취와 놓아줌을 반복하며 쌓아가는 영화의 논리, 관객의 감각을 사로잡아 그것을 조작하는 점은 <독전>이 가지는 분명한 강점이다. 

     

김주혁, 김주혁, 김주혁.


믿음이라는 것, 의심이라는 것.     


   영화를 보는 내내 인물들은 믿음과 의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언뜻 장르적 성격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믿음과 의심이라는 주제는 영화의 장르를 부각하기 위한 역할보다도 주제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종교’라고 하는 개념이 머리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쫓는 인물들의 향연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종교인들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든 종교인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결론적으로 종교라는 것이 무언가(구원 또는 삶의 진리 등)를 찾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 안에는 분명히 종교적 무언가가 내포되어 있다. 다만, 각자가 추구하는 것이 다를 뿐.

    

   영화는 영화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정밀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의 인물들은 다들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독특한 접근이기도 하다. 범죄영화에 있어서 악당이 추구하는 것과 악을 쫓는 자가 추구하는 것은 명확히 제시되는 법이다. <독전>은 영화의 초반 악의 세력을 쫓는 원호와 원호가 악을 쫓아야만 하는 동기부여를 제시하지만 후반으로 달려갈수록 그 동기부여는 옅어지고 인물이 쫓는 대상만 남는다.

     

   영화의 종반, 원호가 찾는 것은 이제 이선생이라는 이름의 악의 세력이 아닌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관객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락(류준열)의 대사에서 언급되듯 ‘왜?’가 사라지는 순간을 영화는 포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인물들이 무언가를 쫓는 것에 대하여 원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를 쫓고 있는 그 현상만을 주목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독전>은 달려가는 영화다. 

    

   여담으로 락이 얘기하는 ‘대체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해보게 된다. ‘왜?’가 없이 무작정 자신을 쫓아 달려온 인물은 자신과 같은 것을 추구할 수 없다는 뜻이었을까?


   더불어 자신의 기원을 찾을 수 없는 락과 타인을 쫓다 자신의 기원을 잃어버린 원호는 마지막에 다다라서 서로를 향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독전>을 보고 꽤나 오랫동안 시야에 밟혔던 이미지.



뚫을 수 있었지만 미처 뚫지 못 한,    

 

   이렇듯 <독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지점과 좋은 만듦새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독전>이 가지는 아쉬움이 있다.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의 작품인 만큼 여성 캐릭터들이 ‘비교적’ 많이 등장하지만 그 활용 폭은 여전히 남성 캐릭터들에 묶여 있는 모양새다. 다수의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도 그렇고 필자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보령(진서연)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힘에 감탄했지만 이 인물이 영화에서 퇴장하는 방식을 보면 단순히 특이함을 가진 캐릭터 그 이상을 향하지 못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러한 여성 인물의 활용법을 영화의 장르적 특성이라는 것만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독전>은 한국영화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른바 ‘남성연대’의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또한 서사의 전개에 있어서 풍기는 아쉬움이 있다. 앞서 말했듯 서사에서 비어져 있는 많은 부분을 영화가 가지는 (과잉으로 느껴질 수 있는) 스타일로 채워나가지만 때문에 필수적인 서사의 정보 값을 인물들의 대화에 녹여내려는 시도가 많아진다. 


   이는 자칫 일종의 허세로 느껴지거나 이야기를 때로는 쉽게 때로는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 달려가던 영화가 멈춰서 인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영화가 기껏 포착해놓은 순간에 대한 너무 직접적인 설명이 되거나 또는 난해한 설명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지점은 결국 스타일이 서사를 잡아먹는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척’하는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에게 있어서 <독전>은 우리가 피로를 느끼고 있는 그 영화시장을 ‘이용’하면서 날카롭게 뚫고 나오려 노력했지만 아쉽게 끝까지 뚫어내지 못 한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기존의 영화들에 비해 더 나은 영화적 포착의 순간을 가지고 있지만 그 포착의 순간이 시장이 만들어낸 틀에 잡아먹히는 영화. 


   <독전>을 본 뒤 만족감이 높았던 것은 잡아먹히는 와중에도 열심히 그 틀을 깨려는 노력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인물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에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추구하기 위한 과정을 목격했던 것처럼 말이다.


여러모로 감탄하기도 하고 동시에 아쉬웠던 보령이라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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