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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모임 로칸디나 Jun 07.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케이크 메이커>

뒤섞이는 과정에 대한 시선 <케이크 메이커>, 표국청

<케이크 메이커>, 오피르 라울 그라이저, 2017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뒤섞이는 과정에 대한 시선 <케이크 메이커>, 표국청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영화의 첫 샷, 그러니까 반죽을 치대는 과정에 대한 응시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 하고 싶다. 아주 천천히 반죽을 치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샷은 반죽과 반죽이 엉겨 붙었다가 떨어지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섞여들었다가 잠시 떨어지는 모습과 같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영화는 가시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때문에 필자는 이번 글에서 영화가 음식이라는 것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형성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관계형성을 위한 시간을 다루는 영화.     


   요리 관련 방송을 보면 때때로 요리사는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다가 물리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한 과정에 한하여 미리 준비한 재료를 꺼내어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예를 들어 반죽을 한 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어두어야 할 경우 반죽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 후 냉장고에서 이미 한 시간 정도 숙성시킨 반죽을 꺼내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케이크 메이커>에서도 때때로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인물과 인물이 만나는 순간부터 가까워지기까지 최소의 정보량만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영화의 초반부, 그러니까 토마스와 오렌이 만나는 순간부터 오렌의 죽음을 토마스가 알게되는 순간까지 영화의 전개 방식이 그렇다. 카메라는 두 사람이 일종의 관계를 쌓아가는 모습을 따라가지 않는다. 다만 특정한 관계가 이미 형성되고 난 뒤 그곳에 존재한다. 

    

   이러한 선택은 관계를 쌓아가는 토마스와 오렌의 시간을 압축시킴으로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특별한지에 대한 무언의 언급으로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하는가 부터 어떻게 끝을 맺는지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런 방식은 토마스가 오렌의 흔적을 쫓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까지 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런가하면 토마스가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오렌의 아내인 아나트를 만난 이후부터는 요리를 해나가는 모든 과정을 보여주듯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쌓아나가는지에 대해 충분히 시간을 들여 보여준다. 이 시간의 차이는 오렌과 토마스, 아나트와 토마스가 쌓아가는 관계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토마스와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대하여 영화는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기도 하고 때때로 필요에 의해 생략하기도 한다. 

     

   때문에 영화는 토마스라는 인물이 자신의 공간에 찾아온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자신을 배제하는 공간에 찾아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까지. 다시 말해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지속하고 어떤 형태로든 끝을 맺는 모습을 무리 없이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오렌의 이 시선과 몇 번의 대화로 오렌과 토마스의 관계 형성을 모두 설명한다.


먹는다는 행위, 먹는 것을 만드는 행위.   

  

   먹는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삶을 이어나가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먹을 것을 만드는 행위는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오렌이라는 존재의 부재로부터 영화 속 인물들은 삶에 있어서 큰 부분을 잃은 상태가 된다. 삶의 지속을 위한 의지가 약해진 인물들에게 먹는 것은 하나의 의지가 되어준다. 

    

   또한 먹는다는 행위는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먹는 것을 만드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짐을 갈망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토마스라는 인물은 누군가를 위하여 음식을 만드는 인물이다. 오렌을 위하여 케이크와 쿠키를 만들고 오렌의 아들을 위해 쿠키를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자신이 받아들여지기를 갈망하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위한 행동처럼 보이기도 한다.     


   먹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인물 별로 구분하여 조금 더 해보자.   

   

   영화에서 아나트가 처음 등장하여 사별과 관련한 서류를 작성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하는 행위는 만들어둔 음식을 버리는 행위다.  

   

   이는 단순히 오렌의 죽음 이후 오랫동안 돌보지 못 한 카페를 정리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지만 아나트에게 있어서 이미 만들어둔 음식은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 아나트는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같은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만을 만든다. 

    

   아나트에게 있어서 먹을 것을 만드는 행위는 의미를 잃은 것이며 아나트 스스로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기를 갈망하는 욕구가 약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토마스를 만난 이후 아나트는 토마스의 음식을 먹음으로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지지대를 만들게 된다. 토마스가 만든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접시를 핥아가며) 먹는 아나트의 모습은 새로운 삶을 이어나갈 의지를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토마스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끊임없이 먹을 것을 만들지만 누군가의 것을 먹는 모습은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를 통틀어 토마스가 무언가를 먹는 순간은 아나트의 카페에 처음 방문하여 한 입 베어문 샌드위치와 아나트의 남매인 모티가 가져다 준 샤밧 음식을 먹는 순간뿐이다. 두 순간의 사이에는 긴 시간이 존재한다.

     

   토마스가 샌드위치를 한 입 먹고 내려놓는 것을 보면 누군가를 다시금 받아들임에 있어서 두려워하는 상태이지만 샤밧 음식을 먹을 때의 토마스는 아나트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 되어있는 상황에서 아나트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이처럼 영화는 먹는다는 행위와 먹는 것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그 감정의 변화에 대해 섬세하게 다루어 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먹는 것을 배제하는 행위(이스라엘의 식문화)에 의해 잠시 갈라지지만 한 번 받아들인 것은 안에 남아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삶의 의지를 주고받은 사람들이기에 그 끝이 절망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본다. 

    

끊임없이 케이크와 쿠키를 만드는 토마스,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읽힌다.


뒤섞이는 과정을 그려나가는 공간들과 정착이라는 것에 대하여.  

   

   영화의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다름 아닌 공간들이다. 영화에서 보이는 주된 공간은 카페와 집이지만 이 카페와 집이 위치하고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 토마스가 독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공간은 베를린이라는 공간이고 이스라엘에 도착한 이후에는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두 공간 모두 분리와 배제라는 상징성을 가진다는 것이 의미 깊다. 사람과 사람이 뒤섞이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면서도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영화가 제시하는 공간은 말하고 있다.

     

   또한 토마스는 스스로를 베를린 사람이 아니라고 표현한다. 베를린에서 카페를 운영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 토마스는 정착이라는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었을 것이고 이것은 다시 말해 토마스가 어느 공간이던 외부인으로 존재해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때문에 앞서 말했듯 토마스는 계속해서 받아들여짐을 갈망하는 존재로서 살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토마스는 다시 한 번 받아들여짐을 거부당하지만 영화의 끝에 베를린에 도달한 아나트, 자신의 삶의 의지가 되어준 사람을 찾아온 아나트를 통해 무언가 변하지 않을까 기대해보고 싶어진다.


삶을 이어나갈 의지가 되어준 토마스를 찾아온 아나트. 선택은 두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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