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졸업
사진: 후쿠오카시 미술관
첫 외로움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부모님과 동생들이 모두 미국으로 가고 나만 홀로 한국에 남았던 시절. 남게 된 이유는 명문대학 재학 중이니 굳이 외국 안 가고 그 대학에서 졸업하는 게 좋겠다는 아버지의 의견 때문이었다. 동생들은 여러 사정상 한국에 있는 것보다는 미국에서 학교 다니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그리하여 약 1년 반 정도 한국에 혼자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생의 중학교 선생님 가족분들이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면서 살림도 도와주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점차 커졌고 6개월 정도 후에 내보내고 본격적으로 혼자 살게 되었다.
늘 북적이던 삶에서 갑자기 혼자가 되니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졌다. 처음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과동기를 집에 불러서 같이 공부도 하고 그랬으나 계속 그럴 수는 없었다. 한편 부모님이 두고 간 차도 맘대로 쓸 수 있었고 생활비로 쓰라고 신용카드도 주고 가셨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정서적으로는 고독함에 적응을 못하였고 담배도 이때 시작하였다. 끝까지 뻐끔담배이긴 하였지만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나서는 하루에 세 갑씩 피워대서 방 안이 허옇게 담배연기로 자욱하였다. 차도 스포츠카 몰듯이 곡예 운전을 일삼았고 어느 날 산 길에서 가속해서 내려오다가 90도 커브에서 차가 밀리면서 도로 경계석을 들이받아 차가 반파가 되었다. 당시 두 명을 태우고 있었는데 안전벨트 덕분에 다행히 전부 무사하였고 차는 결국 폐차하였다. 이로부터 얼마 안 있어서 아버지가 홀로 귀국하셨고 아버지가 같이 담배를 끊자고 제안하셔서 아버지도 나도 담배를 끊게 되었고 외로움도 사라졌다.
두 번째 외로웠던 때는 코로나 막 시작하고 나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을 때였다. 3주 예정으로 탱고 여행 왔지만 열흘 정도 후에 공항이 락다운 되면서 강제로 아파트에 갇혀 혼자 살던 시기. 이 때는 외롭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엉엉 울면서 통곡을 하기도 하였다. 다음날 수업에서 여자 선생의 품에 안겨서 탱고 한딴다를 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 풀어지는 신기함을 경험했다. 탱고 개인 레슨과 연습이 전부였던 시간들이었다.
세 번째 고독함은 22년 10월경부터 1년간이다.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시기. 나의 내면의 성숙과 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온종일 책을 보고 재테크부터 시작해서 창업 공부를 하고 여러 강연에 참석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찢어지는 마음의 아픔을 긍정적인 성장동력으로 대전환시킨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네 번째로 외로웠던 때는 작년 9월의 인도여행 때였다. 3주간 북인도 여행을 하다가 뭄바이에 갔을 때 불현듯 외로움을 느껴서 다음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갔다. 사람의 체온이 그리웠다. 안고 싶었고. 그래서 안을 수 있는 탱고 밀롱가가 있는 안 가본 나라 중에서 리스본을 선택하였다.
올해부터는 계속 혼자서 지내고 있지만 네 번째 외로움 이후로는 더 이상의 외로움은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됨을 즐기고 있다.
이렇게 글로 적다 보니 나의 외로움의 역사를 정리할 수 있게 되는구나. 내 인생에서 전부 네 번이었군.
지금은 혼자 있는 게 좋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좋다. 정년이 되기 전까지 달성하고 싶은 큰 목표가 생겼고 그를 위해서는 내 옆에 이성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낫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외로움에서 졸업했다고. 나는 이제 혼자서 행복하다. 나는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굳이 바라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언젠가 내 앞에 새로운 인연이 다가온다면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나처럼 홀로 잘 서있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