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t pas grave, ça ira.
중간고사를 마친 고2 딸을 데리러 갔다. 시험 준비로 그동안 미뤄둔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같이 주민센터로 향하는데 딸의 눈시울이 벌겋게 되면서 울상이 되더니 곧이어 눈물을 흘리며 크게 운다. 시험을 너무 못봤다면서 수시로는 원하는 대학을 못 갈 것 같다고 말한다. 특히 수학 II 시험을 보는데 다른 아이들은 계속 풀고 있는데 자기는 어떻게 풀어야 될지 몰라서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며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나름 공부했는데도 그렇게 문제를 못 푸는 것은 자기 머리가 나쁜 것 같다며 자책을 하였다.
그런 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 괜찮아, 이제 시작이야. 아직도 안 늦었어. 이번 시험을 못 봤다고 해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결코 아니야. 집에 가서 문제를 왜 못 풀었는지 찬찬히 복기를 해봐. 특히나 수학은 이전 단계 학습이 이해가 안 되면 다음 단계는 아예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어디서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잘 살펴봐. 필요하다면 중1수학과정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수도 있어.
아직 안 늦었어. 아빠도 계속 놀다가 고1겨울방학 때부터 공부시작했거든. 그리고 일 년 재수도 했고. 너도 필요하다면 검정고시도 생각해 보고 재수해도 돼. 중요한 것은 매일 나아지는 거야. 남이랑 비교할 거 없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면 돼.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거지. 다행인 것은 지금 네가 이렇게 크게 각성하면서 너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야. 이제 시작이야. 인생 길게 보면 지금 시기에 공부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에 돌아보면 정말 아주 작은 거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모든 걸 게임이라고 생각해. 시험이건 인간관계건 뭐든 간에. 과하게 감정 소모할 필요도 없어.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얼마나 이득을 보면서 손해를 최소화할 것인지가 중요해. 프로들도 승률 50%는 쉽지 않아. 열 번 중에 세 번은 이기고 일곱 번은 지더라도, 질 때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길 때 이득을 극대화하면 다 합해서 결국은 손실보다 이득이 많아지거든.
네가 공부할 뜻이 있고 목표가 분명해졌으면 이제 그 목표를 향해서 꾸준하게 나아가고 그 과정에 도움 안 되는 것들을 멀리하는 게 중요해. 아빠 봐봐, 아빠 요즘 완전 정신 차렸거든. 대학교 입학 이후로 아빠는 뚜렷한 목표 없이 수십 년을 살다가 얼마 전에야 대오각성했어. 그러니 지금 네 나이가 늦은 게 결코 아니야. 지금부터 네가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있어. 오늘 네가 크게 울면서 위기의식과 절박함을 느껴봤다는 것이 아주 좋은 거야. 잘했어~ 이제 지금부터 올라가면 돼. 괜찮아~ 토닥토닥~ "
그렇게 딸에게 긍정 가득한 경험적 조언을 해주니 딸이 점점 얼굴이 환해지면서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끄덕이면서 미소 지었다.
대학 타이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것, 내가 어디까지 인내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성취의 경험을 대학 입학 이후에도 수없이 마주치게 될 기상천외한 시험들에서 계속해서 활용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지는 것. 이게 복리의 마법이다.
대박 한 번 친 후 계속 박스권에 머물러 있는 자와, 느리더라도 매일 아주 조금씩 우상향 하는 사람의 십 년 후, 이십 년 후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빨리 정신 차릴수록 인생의 복리 효과는 크다. 딸이 크게 정신 차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잘될 거야. 아빠가 도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