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려면
일요일 점심 무렵이 되어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빠랑 점심 먹으러 가자, 선택지 한 곳은 논산 반월소바이고 또 한 곳은 조치원 전통시장 안에 있는 중국집인데 탕수육이 무척 싸고 맛있어." 막내딸은 친구랑 약속이 있다고 하며 안 가려는 눈치이고, 큰 딸에게 물어보니 좋다면서 반월소바에 가자고 한다. 반면에 작은 아들은 소바보다는 중국집이 나을 것 같다고 해서 결국 조치원으로 가기로 했고, 언니가 가면 동생도 같이 가는 편이라 약속도 취소하고 막내딸도 같이 가게 되었다. 큰 아들에게도 물어봤으나 중국음식은 어제 먹어서 생각 없다면서 집에 있겠다고 해서 셋만 데리고 가게 되었다. 넷을 다 데리고 어딘가를 가는 것은 쉽지가 않다.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네 명이 다 좋아할 만한 '것'이나 '곳'이어야 한다.
아이들과 세종시 방향으로 나들이를 간 적이 오래전에 한 번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그 길로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한 때 자주 다니던 길인데 참 오랜만이었다. 세종시 아파트가 보이는 다리를 지나면서 아이들에게 대통령 제2 집무실이 현 정부 임기 말에 지어질 거라는 말을 해주었더니 "아 그래?"라고 조수석에 앉은 큰 딸이 70km/h 구간단속으로 정속 주행 중인 차 안에서 전방 우측 방향의 도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 2로 바쁜 와중에도 독서량이 어마어마한 아이이다. 틈만 나면 책을 보고 다독을 해서 그런지 교양의 폭과 깊이가 남다르다. 밀리의 서재 연구독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이유는 큰 딸이 그만큼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도착한 그곳은 조치원이라는 지명이 사라지고 세종시에 편입된 것 같았다. 시장 이름도 '세종전통시장'이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전통시장 입구로 걸어가는 주변 상점의 이름에는 아직 조치원이라는 이름이 남아있었다.
예전에 봄철에 두 번 와보고 오늘이 세 번째 방문이었는데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예전 방문 때와는 공기가 많이 달랐다. 시장 안쪽 넓은 길로 걷다가 중국집이 있는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아주 기괴한 냄새가 났다.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이상한 냄새. 예전에 왔을 때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줄 서있어서 번호표를 뽑아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식당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도 안보였다. "왠 일이야, 좋네." 하고 안쪽을 보니 테이블은 다 차있기에 잠시 기다렸는데 문득 막내딸을 보니 아이의 표정이 몹시 안 좋고 울상이다. 냄새가 너무 역하다면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하였다. 식당 아주머니가 자리 났다고 불러서 들어갔고 탕수육 큰 거(13,000) 하나와 짬뽕(5,000)과 짜장(3,000) 등을 시켰다. 주로 가던 쾌적하고 고급지고 맛이 훌륭한 중국식당에 비해서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 식당 시설하며 서비스 등 여러 면에서 크게 다를 수밖에 없지만 막내의 표정이 너무 안 좋다. 다음에 다시 아이들과는 오기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탕수육이 먼저 나와서 맛을 보는데 막내가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리더니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휴지에 뱉어낸다. 비계가 많이 씹히는지 못 먹겠다고 하고, 곧이어 나온 짜장면을 앞접시에 덜어줬는데 조금밖에 먹지 않는다. 그나마 큰 딸과 작은 아들은 가성비 좋다면서 그럭저럭 잘 나눠먹었다. 탕수육 양은 정말 엄청 많아서 나도 꽤나 먹었는데 충분하였다. 하지만 예전보다 탕수육의 고기가 줄어들고 맛도 덜한 느낌이었다. 가격은 예전과 동일한데 식재료비는 많이 올랐을 테니 품질이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
네 명이서 26000원에 푸짐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지 아들이 식당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싸게 팔아서 어떻게 남기시냐고 물어보니 카드결제가 아닌 현금결제로 근근이 번다고 말씀하셨다.
식당을 나오니 바로 옆에 호떡집이 보인다. 여기도 호떡 참 맛있게 하고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곳인데 이날은 대기줄이 하나도 없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 건가. 배가 많이 부르기도 하고 느끼한 중국식을 먹어서 기름진 호떡을 또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고 아이들도 생각이 없다고 한다. 참... 예전에는 중국집에서 오늘 못지않게 많이 먹고도 호떡을 추가로 사 먹었었는데 뭔가 예전의 그 좋았던 기분이 하나도 안 들었다.
컵으로 파는 식혜(1500원)를 맛보고 싶다는 막내에게 한 컵 사주고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옛날 치킨을 한 마리 7000원에 파는 곳 앞에 왔다. 아들이 사서 가져가고 싶다길래 두 마리 사려고 물어보니 초벌로 튀긴 치킨을 익을 정도로 튀기는 데 15분 걸린다고 하고 아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고 해서 사지 않기로 하였다. 여기 치킨 가격도 예전과 변함이 없네. 식혜를 반쯤 먹다가 딸이 나에게 준다. 맛을 보니 딱히 맛있지가 않다.
다이소 쿠폰 만기일이 된 것이 하나 있었는데 전통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다가 마침 다이소가 보이길래 거기서 한참을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볼까 물어봤는데 막내는 가고 싶다고 하고 다른 두 명은 안 가고 싶다고 한다. "그럼 아빠랑 둘이 갈까?" 물어보니 그건 아니란다. 오빠 방학하면 그때 가는 걸로 하기로 하였다. 전통시장 중국집은 다음에 다시 오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고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나도 또한 같은 생각이고. 한 때 추억이 서린 장소였는데 이제 여긴 다시 올 일이 없겠구나. 안녕..
집으로 오는 길에 예전에 종종 가던 방방 놀이공간이 보여서 방방하러 가겠냐고 물어보니 막내는 좋다고 하지만 위의 둘은 안 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성인의 몸이 되어서 가도 보호자 입장만 할 수 있을 뿐 방방을 뛸 수 없으니. 그렇다고 막내 혼자서 방방을 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또 가다가 이번에는 어렸을 때 종종 가던 왕놀이터(미끄럼틀이 아주 길고 여러 개가 있는 놀이터이다.)가 우측 안쪽에 있다. 막내에게 "왕놀이터 갈까?" 물어보니 "아니 이젠 그다지~"라고 쿨하게 답한다. 막내도 이제 놀이터는 졸업할 나이가 된 거다. 그러면서 "아 스키 타고 싶다~~언제 겨울이 되지?"라고 말한다. 스키 타고 싶다는 말은 나를 볼 때마다 하는 넋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키는 아이들이 다 좋아한다. 하얀 눈 덮인 겨울 산에 리프트나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서 감상하는 풍경과, 설원을 미끄러지며 쿨한 공기를 가르며 질주하는 쾌감은 아이들이 다 좋아한다. 그래서 새벽 네 시 반에 깨워서 다섯 시에 출발해도 애들을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불만 없이 다 따라온다. 차에서 자면 되니까.
자식을 낳아서 어렵게 키웠으면 아이들이 성인이 되더라도 같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게 좋다. 인생 친구 굳이 없어도 자식을 좋은 친구로 만들면 그게 더 좋은거다. 평생을 볼 자식인데 친구같은 사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지못해 명절 때 인사치레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것이 아닌, 모두가 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자주 한 자리에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건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우리처럼 스키장을 같이 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공통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가족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에게 스키를 가르친 건 참 잘한 일이다. 해외여행 가는 것도 아이들이 다 좋아하고.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머지않은 시기에 근로소득자 생활을 마치고 지중해 연안국으로 가서 요트 스쿨을 다니고 요트를 사서 아이들과 3년 정도 세계 구석구석을 느긋하게 여행을 다닐 계획이다. 몸은 힘들어도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실행할만한 가치가 있고 아이들에게도 평생토록 간직할 멋진 경험과 추억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구매할 배를 알아보고 요트 스쿨을 등록하는 시점부터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생각이니 내 얼굴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보게 되겠지.
그때를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준비하며 꿈을 키워본다. 모노 헐을 살지, 카타마란을 살지 행복한 상상을 지금부터 해본다.
반드시 실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