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써 총 12회의 디자인역량 강화 교육이 막을 내렸다. 100여 명에 가까운 신청자 중에서 6회 이상 참석해서 수료증을 받은 사람은 절반이 조금 못되고, 전부 참석한 사람은 단 두 명인데 그중에 한 명이 나였다. 다 참석하고 싶어도 주중에 피치 못할 업무 때문에 참석 못한 사람들도 많았을 테다. 나는 휴가도 사용해 가면서 다 참석하였다. 유연근무제 덕도 보았고 혼자서 일하는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매우 유익했던 수업이었다. 전부터 가끔 관심을 가지곤 했던 브랜딩의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고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AI 리터러시도 잘 배웠다. 참 감사하다. 주어진 교육 일정 내에서 가르쳐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알려주신 수준 높은 선생님들이 고맙다.
7월초부터 시작했던 12주간의 미학수업도 다음 주에 종강을 앞두고 있다. 미학 공부를 기점으로 해서 전쟁과 권력사, 화폐와 금융사, 미술사, 음악사까지 가지를 뻗고 연결이 되고 있다.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관점만으로 보는 것보다 여러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니 편견의 편협성이 줄어든다.
"모두가 편견이다. 편견은 다양한 편견을 섭렵함으로써 그 편협한 주관성의 문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 - <위반하는 글쓰기, 강창래 저>
이번 주 미학 수업에서는 하이데거의 예술감상 방식을 배우면서 체리필터의 노래 <Happy day>를 개사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봤고 나는 다음과 같이 개사하였다.
1. 가장 좋았던 시절이 언제였던가요? 그때 삶이 어떻게 생각했나요? 가사로 표현해 보세요.
난 내가 말이야 (사십 세) 쯤엔 (신도 천 명의 교주) 일 줄만 알고 , 어릴 땐 말야 모든 게 다 (가능하다고) 믿었지.
2. 최근에 힘든 일들이 있으셨나요? 그때 어떻게 해결하고 싶어셨어요? 이를 노랫말로 표현해 보세요.
이제 나는 (무언의 명상)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바쁘게 입력되는) 일상에 (버퍼를 달아놓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3. 과거 여러분의 모습은 어땠나요? 어떤 일에 설레었던가요? 이를 노랫말로 표현해 보세요.
(꿈땅 같은) 내 모습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
(찰나의 눈마추침)에도 날 설레게 했던 내 안의 그 무언가는 어느 별에 묻혔나
4. 전화벨소리가 울렸는데, 어떤 메시지 전화를 받아보셨나요? 여러분의 현실은 현재 어떠세요? 이를 노랫말로 표현해 보세요.
가끔 울리는 전화벨소리 두근거리며 열어보면, 역시 (오빠 보고 싶어--) 메시지일 뿐야
이제 여기 현실은 (자아성찰) 속 너무 (조용한) 일들의 연속이야
(하루하루 나아가는) 일상은 멈춰 세우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5. 여러분은 과거의 그 시절(1번 나이) 모습을 어떻게 추억하세요? 그때로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찾고 싶으신가요? 노랫말로 표현해 보세요.
(느낌에 취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느 틈에 (한걸음)에도 늘 (기쁨을 주곤) 했었던 예전 그대로의 모습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어.
1번과 4번을 말할 때 다들 크게 웃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할까 기다리다가 상상을 초월한 개사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각각의 스토리가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로부터 끌어왔음을 소상히 설명해 주니 매우 재밌어하였다. 같은 수업을 대학교에서 여러 해에 걸쳐서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개사를 봐오셨던 미학 선생님조차 나의 개사를 역대 최고로 재밌게 보신 것 같았다. 앞으로도 나와 계속 알고 지내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공개적으로 다른 수강생분들께 천명하실 정도였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으신 처음 뵙는 분도 나에게 명함을 주시며 나중에 내 명함도 꼭 달라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 전국의 인문학지원사업의 수업들을 돌아다니면서 평가 하시는 분이었다. 나라에서 돈 주는 수업이기에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이분은 언젠가 내게 연락하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업 평가나 심사위원 위촉이 될 것 같은.
나도 또한 재밌었다. 20대에 가졌던 교주에 대한 생각을 미학 수업에서 풀어놓게 될 줄이야 ㅋㅋ.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끄집어낼 수 있게 해 준 선생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다음 주 수업이 종강이지만 10월에 새롭게 시작되는 또 다른 인문학 수업에서 코디네이터로 참여하신다고 하고 나도 그 수업에 신청하였다.
배우면 배울수록 봐야 될, 보고 싶은 책은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강창래 작가님의 북토크를 감명 깊게 본 후 그분의 책들을 도서관에서 하나씩 빌려보는데 지금 보는 책은 <위반하는 글쓰기>이다. 부드럽고 편안한 그분의 강연과는 또 다르게 책 내용은 통찰력과 깊이가 상당해서 천천히 정독해 가면서 읽고 있다. 이 책을 다 보면 <책의 정신>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작가님들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강연을 들을 때마다 어김없이 추천 도서가 언급되고 그 책들은 먼저 '밀리의 서재'에서 이북이 있는지 검색해 보고 없으면 도서관에서 대출하거나 교보문고에서 산다. 그리고 대출을 하러 도서관에 가면 그 추천 도서 외에도 서가에서 눈길이 가는 책이 보이면 그 책들도 대출해 오게 돼서 집에는 늘 읽어야 할 책들이 어서 내가 자기들을 만져주고 책장을 넘겨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디자인 수업 막강에서 다시금 언급 및 추천되었던 <UX 라이팅의 글쓰기 수업> 책도 다음번에 도서관에 갈 때 대출할 책이다. '카피 라이팅', '테크니컬 라이팅', 'UX 라이팅'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오늘 배웠고 UX 라이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으니 그 책 또한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오늘 수업도 너무 좋았다. 참 훌륭한 강사님이다.
오후에 참석했던 김지원 EBS PD님의 북토크 "관계와 연결을 만드는 문해력"도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유익한 강연이었다. <문해력 격차>의 저자이시기도 하다. 문해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 책을 읽는 이유는 이해보다는 저자와 대화하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지식을 얻는 게 우선이 아니라 책을 도구로 저자와 소통하는 것, 말놀이를 하는 것. 이 책도 어서 보고 싶다.
도서관에서 초빙한 작가님들의 강연을 보고 있노라면 다들 General이건 Specific이건 각자 인식과 통찰의 물방울이 크신 분들임을 인정하게 된다. 나도 이 분들처럼 강연 활동을 하기 위해 내 시간과 관심을 집중해야겠다.
글 하나 안 쓰고 한 주를 넘기게 될까 봐 '그냥' 뭐라도 끄적여보자고 시작하였다.
강창래 작가의 책 <위반하는 글쓰기>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책상 위 노트에 필사한 것을 적어본다.
"인간 언어의 특징은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있는 것을 묘사하거나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언어는 질서를 내면화하기 위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언어란 원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이면(또는 내면)을 드러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순수한 문화 같은 건 없다. 뒤섞이면서 풍부해지는 것이다. 한국어의 강점은 순수해서가 아니라 소리글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문화의 언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 있다. 문화와 언어는 흐르고 뒤섞여서 바다를 이루는 것이다. 언어는 더욱더 그렇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이유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잘 알기 때문에 쓴다는 것이다. 꼭 그렇지 않다. 글을 다 쓰기 전에는 자기 생각이라는 것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글로 쓰지 않는 생각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글을 쓴 생각만 남는다. 그러니 생각을 축적하고 싶다면 글로 써두어야 한다. 깊고 싶은 생각은 글이 끝날 때에야 분명해진다. 그러니까 생각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생각을 쓰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의식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꼭 좋은 게 아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열심'은 글에도 묻어난다. 부담스러울 뿐이다. 작위적인 느낌 때문에 공감을 끌어내기 어렵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열심히'하지 말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삶의 연장선에 있다. 많이 쓰기보다 많이 사랑하기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언제라도 꺼낼 수 있는 절실한 이야기로 가슴속을 채워두어야 한다. 기술적인 문제가 고민이라면 많이 쓰기보다 좋은 연습 방법부터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언어학적인 지식을 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는 살아있음의 기쁨을 드러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인지과학의 연구결과를 보면 인간의 기억력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다지 관심이 없다. 지금 이 순간 말하는 사람의 명분과 미래 계획을 위해 봉사하는 방향으로 편집된다. 논픽션은 없다. 픽션만 있을 뿐.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말하는 당사자들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진실된 픽션'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픽션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있다. 불가능하지만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목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객관성은 있을 수 없지만 객관적이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느껴보는 것은 어떤 사안을 잘 판단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 느낌이 없다면 판단도, 선택도 없다. 어떤 주제를 다룰 때 그것에 대해 잘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에 대한 분명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편견이다. 편견은 다양한 편견을 섭렵함으로써 그 편협한 주관성의 문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
글은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몰라서 알기 위해' 쓰는 것이다.
직관은 진실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하면서도 고정관념에 휘둘려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직관은 중요하지만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 떠올린 대로 썼다면 지나치게 주관적인 스토리일 가능성이 높다.
글을 쓰기 전에는 자기도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글쓰기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알고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스티븐 킹은 '소설은 쓰는 게 아니라 기록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대를 만들고 갈등 관계에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그러고는 그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보면서 '기록'한다는 것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글도 그런 방식으로 쓰는 게 좋다.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그냥 떠오르는 대로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글은 쓰는 것이다. 쓰면 무엇인가 나온다. 쓰기 시작하라. 다 쓴 글을 편집할 때 재구성하면서 멋진 첫 문장을 찾은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첫 문장은 전체 그림의 핵심을 드러내는 질문 같은 것이고, 그런 다음 차분히 풀어 나가면 된다."
마침 내일 일요일 낮에는 '소설을 쓰고 읽으면 일어나는 변화'라는 주제로 작가의 강연이 있다. 언젠가는 나도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아서 강연이 기대가 된다.
강연과 교육을 찾아다니면서 알게 되는 여러 분야의 실력자들은 나의 잠재적인 인맥이다. 강연과 수업에 열정으로 집중하고 인상적인 질문과 답변을 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디자인 수업도, 미학 수업에서도 강사님은 다른 사람의 이름은 몰라도 나를 부를 때는 수강생 명부도 안 보고 나를 보며 이름으로 부른다. 십 년이 지나서 톡이나 메일을 보내더라도 바로 내가 누군지 기억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언젠가 그 분야의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도움이 되어주실 분들이다. 나도 그분들을 도울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