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던 사람들을 안 만나니
습관처럼 다니던 길도 안 가게 된다.
차를 몰고 도시를 가로질러 외곽 목적지로 향한다. 가다가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작년에 자주 가던 곳. 그냥 직진해서 지나간다. 반갑게 가던 곳인데 마음이 달라지니 발걸음이 안 내키는구나.
또 가다가 몇 해 전에 종종 가던 곳을 지나간다.
그때 저기서 사람들을 만났었지. 한여름에 종종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박스에 담아 사가지고 갔었지. 그 근처에서 모임도 갖고 밥도 먹고 술자리도 가졌지 (나는 거의 안 마셨지만)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그 당시 사람들의 윤곽이 떠오른다. 신호등에 정차했던 차가 초록불을 받아 점점 가속되어 지나가면서 생각도 곧이어 사라진다.
목적지에 점점 다가가는데 낯익은 도로가 나온다. 일 년에 몇 번은 다니던 길. 이쪽으로 좀 더 가면 그곳이 나오지. 온화한 느낌이고 아직도 따스하다.
내가 다니던 길. 하지만 지금은 안 가는 길. 나의 삶의 패턴이 바뀌니, 생생했던 실재가 후- 하고 바람 불면 속절 없이 날아가 사라지는 재로 변하였다
다시 가볼까, 가면 좋겠지. 오랜만에 느끼는 그 감각에 빠져서 황홀해지겠지. 하지만 그렇게 예전으로 되돌아가면 내 삶은 달라지지 않을 거야.
목적지에서 볼 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서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또 다른 기억의 장소가 멀지 않다. 전에 그 길을 갈 때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차가 앞서감에 따라 그곳도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 마음에서 멀어진다.
삶의 방향이 바뀌니 스스로 고독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
나의 선택으로 알게 된 사람들, 장소들, 기억들.
내 선택이 바뀌어 그들도, 그곳도, 그 기억도 페이드 아웃된다.
이제 새로이 길을 낸다. 없던 길을.
내가 주도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