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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선택권

언제나 플랜 B

by Loche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1차 의료기관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엑스선 촬영을 하고 촉진을 하니 무릎에 물이 많이 고여서 주사기로 빼보니 60cc의 피가 나왔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뼈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피가 많이 나왔다는 것은 무릎 십자인대나 연골판 쪽에 심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니 같은 도시의 2차 의료기관을 소개해주면서 MRI 사진을 찍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소개받은 그 2차 기관의 이름은 몇 해 전 작은 딸이 스키 타다가 쇄골 골절 사고가 났을 때 방문해서 진찰받았던 기억이고 불필요한 수술을 권유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에 강원도 2차 병원과 현재 사는 지역 3차 병원에서는 아이 나이가 어리니 수술하지 않고도 그냥 놔두는 게 제일 나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 소견대로 놔둔 결과 잘 치유가 되었다. 그 2차 병원의 코디네이터와 의사의 표정과 대화가 떠오른다. 아이 나이를 고려하면 가만 놔두는 게 최선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타 병원 의사들의 소견과는 달리 수술을 권유했던 그들. 과연 그들이 몰랐을까 싶다.


나는 의사를 믿지 않는다. 나의 경험과 내 부모님의 의료 경험을 통해 의사는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적으로 의뢰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한 의사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의심하고 다른 의사들을 찾아가서 크로스 체크를 하지 않고 한 의사의 말만 믿고 따랐다면 지금의 내 몸은 없다.


불신 = 믿지 않기


ㅋㅌㄹ의대병원. 한창 갑상선 결절 제거술이 유행이던 때 그곳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었고 그 결과는 이도 저도 아닌 불명확이었는데 의사는 의심이 가는 한쪽만 아니라 양쪽 결절을 다 제거하자고 하였다. 아직도 또렷하게 그 의사의 말투가 기억난다. 나를 존중해 주고 걱정하는 말투가 아님은 잘 느낄 수 있었다. 어서 실적 하나 올리고 끝내고 싶어 하는게 너무 잘 드러났다. 그 의사 소견을 들은 후, 현대 아산병원의 유명한 갑상선 전문의를 찾아가서 소견을 들으니 당장 떼어내기보다는 당분간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지금까지 제거 안 하고 있는데 크기도 그 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고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작년에 방문했던 국내 최고 권위의 S대 치과병원. 크라운을 씌운 어금니의 잇몸 염증이 생겨서 방문했는데 사진을 찍어보더니 잇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면서 이 경우에는 치아를 살릴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한다. 그러면서 잇몸 이식과 임플란트 수술을 권하였다. 하지만 나는 몇 달 밖에 사용 못 해도 좋으니 일단 살리고 싶다고 했고, 신경 치료 후 새롭게 크라운을 씌워서 지금까지 2년 가까이 문제없이 잘 쓰고 있다. 당시 신경 치료를 담당한 젊은 여자 의사가 아주 귀찮다는 듯이 나에게 재차 삼차 물어보면서 마지못해 환자의 요청으로 치료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언제 기회가 되면 그 의사를 다시 만나서 멀쩡하게 잘 쓰고 있는 내 이빨을 보여주고 싶다.


다시 딸 무릎 부상 이야기로 돌아와서


1차 기관 의사에게 그 병원 말고 대학 병원에 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어디를 가도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같은 도시에 있는 3차 의료기관인 Z 대학 병원 진료협력센터를 찾아갔더니 토요일은 진료를 안 해서 월요일에 다시 갔는데 당일 접수는 다 찾고 다음날 예약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1,2차 기관에서 촬영한 엑스선 사진이나 MRI 자료등이 있으면 다 가져오라고 한다. 그래서 1차 기관에서 찍은 엑스선 사진을 받기 위해 그 의원으로 바로 갔다. 그리고 주말 사이에 변화가 있을지 모를 딸아이의 상태를 다시 체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MRI를 찍으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좋을지 물어보니 처음에 소개했던 2차 기관이 아닌 모 의원의 MRI가 좋다고 소개해준다.


그 병원은 내가 매년 직장 종합 건강검진을 받는 곳인데 진단으로 특화된 곳이기도 하고 3T MRI가 있는 곳이다. 바로 그곳에 전화해 보니 오후에 빈자리가 있어서 촬영이 가능하다고 해서 방문을 하고 찍고 영상 담당의와 영상 자료를 보는데 이미지 분해능이 매우 좋고 무릎 부위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의사 소견으로는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거의 파열되었기에 수술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그 영상을 옆에서 같이 보며 의사 소견을 듣는 딸아이가 눈물을 흘린다.


한 편, Z 대학병원 예약을 할 당시에 서울 S 대학 정형외과에도 또한 예약을 문의하였었고, 이틀 후인 목요일에 마침 예약 취소건이 있어서 그 시간에 진료가 가능하다고 하여 예약을 잡아놨다. 플랜 B인 셈이다.


MRI 사진을 찍자마자 바로 1차 의원에 다시 방문해서 MRI 결과를 보여주고 소견을 구하였다. 어차피 자기가 수술할 것이 아니기에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였다. 자료를 보더니 이 분도 수술해야 한다고 말하였고 딸은 또 눈물을 흘린다. 어느 분을 찾아가는 게 좋을지 물어보니 이 수술은 그리 어려운 수술이 아니어서 굳이 서울까지 안 가도 현 지역 병원에서 수술해도 괜찮을 거라고 실눈을 뜨고 말한다. 마치 내가 너무 유난하고 강박적이라는 듯이.(정말 그럴까?)


딸아이를 위로하면서 야구선수 박찬호도 류현진도 알지 않느냐 그들도 인대 수술을 두 번 세 번도 해서 잘 지낸다. 할아버지도 스키 타다 십자인대 끊어져서 수술했고 다른 운동하는 데에도 문제없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화요일 오전에 Z 대학병원으로 향하는데 아이 엄마의 지인의 지인 간호사로부터 딸에게 톡이 왔다. Z 대학병원보다는 K대학 병원 정형외과가 더 잘한다고. 그 이야기 듣자마자 딸에게 K대학 병원도 예약해 보라고 말했고 바로 오후에 예약이 잡혔다. 딸에게 그 지인 간호사님께 각 대학병원 의사 실명을 주고 평판 조회해 달라고 했더니 15분쯤 지나서 Z 대학병원 의사는 전방십자인대 논문도 여러 편 쓰고 나이도 있어서 수술 집도 경력도 많다고 한다. 반면에 K대학 병원 의사와 S 대학병원 의사는 나이도 젊고 관련 논문도 없으니 Z대학병원 의사를 추천한다는 톡이 왔다. 훌륭한 정보다. 고맙구나.


Z대학병원으로 갔다. 관절염센터가 따로 있었고 그곳으로 가서 피검사와 엑스선 사진을 다시 촬영하고 두어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났다.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으로 보인다. 너무 나이가 들어도 최신 기술을 모를 수 있어서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적절한 나이로 보인다. 공부 안 하는 노년 의사들은 과거의 학습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의사가 MRI 영상을 보면서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내 질문에 답변도 명쾌하게 해 주고. 예전에는 무릎전방십자인대 수술은 시간을 재면서 30분 내에 끝냈다고 한다. 그만큼 간단한 수술이었다고. 하지만 그때와 달리 최근에는 "자신이 하는 수술" 시간이 기본 2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예전 방법은 간단한 반면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서, 새로 하는 인대의 두께는 8mm가 되어야 결과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 딸의 반대쪽 무릎의 인대를 만져보게 하고 그쪽 부위를 일부 떼어내고 또 미국인이 기증한 인대도 거기에 더할 거라고 한다. 자가 인대가 제일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8mm가 안 나오고 타가 인대까지 더해봤는데 문제가 없이 결과가 더 좋았다는 것이 연구결과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연골판도 일부 찢어졌으니 그것도 꿰매야 하고 이런저런 설명도 덧붙여주는데 신뢰감이 간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다른 의사들은 기존 수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말도 해준다. (역시 1차 의료기관 의사의 말과는 다르구나, 의사 한 명의 이야기만 들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된다)


문제는 언제 수술이 가능한가인데 수술예약 장부를 가져오라고 해서 보더니 7월까지 다 예약이 차서 그것대로 하면 8월이나 수술이 가능한데 그건 딸아이에게 그렇게 늦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어떻게든 빈 공간이 나오기를 기다려서 한 달 안애 수술이 가능하게끔 알아보고 하루 이틀 전에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기는 장담할 수 없다고. 그러면서 원래 이렇게 수술 일정이 미뤄지지는 않는데 윤석열 정부 때문에 마취과 의사들이 파업하면서 마취가 안되니 수술도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수술에 필요한 안내를 받고 추가적인 피검사와 심전도 검사, 엑스선 촬영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딸은 수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다가도 윤석열 생각을 하면 열이 받는지 표정이 비장해진다.


S대병원 예약을 어떻게 할까 딸과 이야기하다가 일단 하루 더 생각해 보고 취소 여부를 결정하자고 하였다.

몇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은 그 지인 간호사님께 S대 정형외과 어느 의사가 좋을지 평판 조회해 달라고 해서 예약을 새로 해서 플랜 B를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마냥 Z대만 바라보고 있는 것보다는 그게 마음이 보다 편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설사 젊은 의사라고 해도 S대 교수가 될 정도면 나름 최신 기술도 보유하고 있고 실력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일단 목요일 예약이 살아 있으니 찾아가서 의사 소견을 들어보고 어떤 수술 방식을 취할 것인지도 물어보고 수술 일자가 언제 잡힐지도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뭐라도 계속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늦은 점심식사를 사주고 집에 데려다주면서 나의 헌신과 노력에 딸은 나를 더욱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것이 보인다.

마지막 보루이자 안전기지로써의 아빠 역할을 최대한 잘하고 싶다. 필요하다면 내 인대를 떼어서 딸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이다.


남은 인생, 내 모든 사랑은 아이들에게 준다.

가족 외에 타인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는다.

이미 충분히 경험했고 그것으로 족하다.


감각의 유희보다는 지혜와 지혜의 나눔을 추구하며 살겠다.


눈 녹기 전에 안 다친 애들과 국내 스키장에 몇 번 더 스키 타러 가고 싶은데 이런 분위기에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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