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니세코에서의 부상

장애를 직면하다

by Loche


삿포로에서의 두 번째 스키를 타는 날이었다. 아침 8시 반 땡스키를 타기 위해 깜깜한 어둠 속에 일어나서 일찍 출발하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동이 트는 눈부신 햇살의 방향에 맞춰서 운전석과 조수석의 바이저를 정면으로 또 측면으로 전환해 가면서 경쾌하게 달려가는 기분이 상큼하였다. 전날 저녁에 슈퍼에서 미리 사놓은 먹거리도 충분히 준비하였다.

주차요원의 안내 하에 곤돌라 스테이션 바로 앞 주차장 좋은 위치에 주차를 완료하고 스키를 꺼내고 부츠를 신는 나와 아이들의 행동이 가벼웠다.

주차장은 이내 금방 다 찼다. 점심때 차로 와서 피크닉을 하기에도 매우 가까운 위치였다. 전날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해서 받은 큐알 코드를 IC 카드 자판기에 갖다 대니 하나씩 종일 리프트권 카드가 튀어나왔다.

다 같이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는 니세코의 산세가 멋지다. 매우 쾌청한 날씨이다. 다만 삿포로에 도착해서 계속 좋았던 날씨 덕에 슬로프는 딱딱한 압설이었고 비정설면의 눈도 파우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이는 빨래판 설면을 밟으며 미끄러져내려 가는 기분은 늘 그랬듯이 좋았다.

넷 중에 제일 실력이 낮은 작은 딸은 딱딱한 설면이 두려운지 며칠 전 루스츠에서는 하지 않던 A자 자세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초급자 슬로프보다는 경사도가 좀 있는 중급자 슬로프가 많다 보니 딸의 하강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고 다른 아이들도 답답해한다. 지난번 루스츠에서는 오전 내내 내가 붙어 다니고 다른 아이들은 따로 떨어져서 탔는데 이날은 나 대신 큰 아들이 자기가 가르치면서 같이 다니겠다고 해서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따로 타게 되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고성능 산악 무전기를 가져왔는데 구매한 지 십여 년 가까이 되다 보니 송수신이 잘 안 될 때도 있었다.


8시 반부터 시작해서 세 시간 정도 타고나니 배가 고파져서 배낭에 잔뜩 넣어가지고 온 먹거리와 귤과 음료수를 어디서 먹을까 하다가 결국 불편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차로 가서 먹는 게 좋겠다는 아이들의 의견에 차로 갔다. 햇살을 가득 받은 차 안은 따스하였고 지나가는 다른 스키어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 문을 열어놓고 의자에 걸터앉아서 또 차 밖에 서서 맛나게 먹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고 행복하였다.

점심을 대충 때운 후 큰 애와 막내는 차에서 쉬겠다고 하고 나와 다른 두 아이들은 다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한 번 같이 내려온 후 나는 안 가본 다른 슬로프를 가보고 싶어 했으나 다른 아이들은 맘에 드는 코스를 몇 번 더 타고 싶다고 해서 따로 타게 되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가면서 아이들과 무전으로 마지막 슬로프를 타고 차로 가겠다고 하니 한 아이는 일찌감치 차로 갔고 남아있던 큰 딸도 자기도 이제 차로 간다고 말하였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바로 옆으로 멋지게 턴을 하며 내려가는 큰 딸이 보인다. 첫날보다 자세와 동작이 많이 좋아진 것이 보인다. 형제들 중에 스키 실력도 일취월장해서 전국 대회 메달도 따고 한 때 스키 선수가 되고 싶어 했던 아이였는데 경제적 뒷받침을 못해줄 것 같아서 꿈을 접게 만든 아이. 그때 마음이 참 아팠다. 하지만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다른 길을 계속 찾아간 큰 딸. 방향은 계속 바뀌었지만 꿈은 계속 가지고 나아가는 아이. 책을 무척 많이 보는 아이이고 생각이 깊고 모범적이고 동생을 잘 챙기는 언니였다. 참 맘에 쏙 들고 이쁜 딸이다.


스키를 타면서 차로 내려가는데 큰 딸에게 무전이 왔다. 편안한 말투로 차에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말이 없었다. 다 내려가서 스키와 부츠를 벗고 차에서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안 내려온다. 좀 멀리 있는지 무전을 해도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다쳤나. 왜 연락이 없지. 40여분쯤 경과한 것 같고 다시 무전을 해보니 패트롤이 자기를 싣고 내려가고 있다고 한다. 패트롤이라니.


곤돌라 승강장과 레스토랑 사이에 서서 슬로프 위를 보며 기다리니 멀리서 빨간색 상하의의 패트롤 두 명이 부상자 이송용 끌대를 앞에서 뒤에서 잡고 지그재그로 천천히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마음이 덜컹하였다. 종일 잘 타다가 막판에 부상이라니. 그렇게 잘 타는 애가 주황색 덮개로 머리까지 몸 전체를 덮고 곳곳을 고정용 줄로 가로 묶여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는 내 안타까운 심정이란. 천을 벗기고 딸의 얼굴을 보니 부상의 고통으로 인해 눈물이 나온 모습이 보인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중간이 움푹 파인 슬로프를 지나가기 위해 고속으로 달리는데 비정설면 산속에서 갑자기 슬로프로 튀어나온 스키어들을 피하다가 넘어졌다고 한다. 사고는 실력과는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날은 월요일, 한국 귀국은 금요일. 패트롤들이 큐알 코드로 근처 병원 안내를 해줬고, 스키장 안내 데스크에 가서 다시 병원 문의를 하였다. 처음 International Hospital을 안내해 주기에 거기 말고 일본 병원을 안내해 달라고 하였다. 여행자 보험도 들지 않았기에 비싼 국제병원 진료비가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되었고, 정형외과 진단에 있어 일본 지역 병원이 국제병원보다 수준이 낮을 거라고도 생각이 되지 않았다. 이미 진료 시간이 마감이 되었지만 스키장 측에서 지역 병원 측과 전화로 딸에 대한 인적 정보와 기초 정보를 주고받은 다음에 병원으로 항하였다.


딸의 스키와 폴을 차에 먼저 갖다 놓기 위해서 스키를 드는데 매우 가볍다. 실력은 선수급인데 월드컵 스키가 아닌 큰 아들이 오래전에 타던 일반인용 스키를 가져왔다. 나와 두 아들 스키는 매우 무겁고 강한 월드컵 스키. 딸은 좀 더 크면 사주려고 했는데 이 한없이 가볍고 낭창거리는 스키를 들면서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월드컵 스키였으면 좀 더 빠르고 강력한 브레이킹이 돼서 사고가 안 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스키를 차에 놓고 돌아와서 딸을 등에 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서 스키장 로비를 통과해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내려가서 차로 다가갔다. 딸을 이렇게 업어본 게 얼마만인지 매우 묵직하다. 근 십 년 만에 업어보는 듯하다. 딸을 향한 보살핌과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며 딸도 느끼는 것 같았다. 불의의 시련 속에서도 아빠와 딸의 애정은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다.

15분 거리의 지역 병원 응급실로 가서 촉진을 하고 엑스선 사진을 찍었다. 뼈는 이상 없고 인대 파열은 아닌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후 무릎을 고정시키는 반깁스를 하고 차에 태워 숙소로 향하였다. 진료 시간이 지났기에 응급 의료에 해당한다면서 응급 비용이 발생한다고 하였고 그렇게 받은 청구서는 3만 9천엔, 한화로 35만여 원. 의료보험되는 한국병원이었으면 몇 만 원도 안 할 텐데 많이 비싸다. 상태를 봐서 추가적인 MRI 검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일본 의사의 소견을 들었으나 며칠 있으면 한국에 들어가니 한국 가서 검사해 보기로 하였다.

다음 날은 같은 건물이지만 보다 넓은 숙소로 이동하는 날이다. 1박에 180불 정도였던 첫 숙소에 비해서 1박당 140불이지만 숙소는 세 배쯤 넓고 쾌적한 곳. 마지막 3박을 그곳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되어서 아이들 표정도 활짝 펴졌다. 굳이 스키를 안타도 숙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 부상당한 큰 딸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살짝 위안이 된다.


다음날 5박을 한 첫 번째 방을 체크아웃을 하자마자 스키 장비와 짐가방을 이사할 방으로 옮겨놓고 차로 40분 거리의 삿포로 시내로 가서 두 번 가봤던 초밥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비싼 오마카세 스시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초밥식당이고 아이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다섯 명이서 엄청 배불리 먹고도 2만 5천엔 정도 나오니 한화로 23만 원 정도. 한국 가면 최소 50만 원은 넘게 나올 거고 이런 수준의 초밥은 한국에서도 못 먹는다면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누구보다 일본에 와보고 싶었던 아이는 작은 딸이었고 일본 여행 오길 잘했다고 말한다. 모든 게 다 맘에 든다고 한다.


내 관심은 다친 큰 딸에게 계속 집중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쁜 딸인데 더 이뻐하고 배려하고 신경 쓰게 된다.

상태가 어떤지 수시로 물어보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보살펴 주는 나에게 계속 미소 짓는다.


다음 날 점심도 삿포로 시내의 가성비가 좋은 다른 회전 초밥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은 후 어디를 갈까 하다가 미술관에 가면 휠체어가 있을 테니 관람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삿포로 뮤지엄 중에서 가장 큰 삿포로 아트 뮤지엄으로 향했다. 큰 딸은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면 자녀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관람을 하는 편이다. 작품 하나를 한참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깊이 잠기는 모습을 보곤 하였다.


역시나 휠체어가 비치되어 있었고, 휠체어에 태워서 미술관 투어를 시작하였다. 이런 경험을 처음 해보는 딸도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는지 표정이 웃는 모습이다. 5시에 문을 닫는데 4시 10분쯤 입장하여서 서둘러 관람을 한다.

휠체어를 운전하는 나는 내가 관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딸에게 말을 한다. "지금부터 **이의 시선을 따라서 운전할게". 작품은 슬쩍슬쩍 보면서 딸의 시선이 어디를 보는지를 계속 지켜보면서 운전을 한다. 시선이 머무르면 휠체어도 멈추고, 시선의 방향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서 휠체어의 방향도 바뀌고 움직이는 속도도 달리한다. 매우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딸의 생각과 시선을 따라가기. 이런 값진 경험을 토대로 해서 앞으로 자녀들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도 더욱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듯하다.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관계와 상황들은 배움과 성장의 기회임을 이번에도 알게 된다.


짐을 나를 한 사람이 전혀 포터 역할을 못하기에 그 무거운 여행짐들을 나눠서 이고 지고 끌고 귀국길에 오른 나와 아이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기어이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다. 해외여행 무사고 기록이 이번에 깨졌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런 힘든 일을 겪으면서 더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가장 우려했던 지진은 없었고 일본의 다양한 모습들을 관찰하면서 아이들에게 생생한 현지 학습이 이루어진 점, 나와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회상이 될 추억이 또 하나 만들어져서 기분이 좋다.


다음에 또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게 될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를 위해서 절약하고 돈을 모아서 투자하고 내 그릇을 키운다. 그 기본은 책 읽기와 글쓰기이다.


벌써 1월이 지났다. 살던 대로 살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 미래의 내 모습은 지금의 나와 많이 다르다. 계속 시각화하고 꿈을 꾼다. 하루하루 소중하게 나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사용한다. 나의 대운은 뒤로 갈수록 좋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