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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는 눈

for your eyes

by Loche


무릎 전방십자인대 수술한 지 열흘밖에 안 지난 딸과 데이트를 하다가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라고 물어보니 교보문고에 가자고 해서 같이 다녀왔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회복이 빠르고 목발을 더 이상 짚지 않는다. 의사의 지시로는 퇴원 후 2주간 목발 짚고, 수술한 발은 체중을 반만 실어서 디디고 무릎 각도 보조기는 60도 제한을 두라고 했는데 이미 90도까지 구부려도 안 아프다며 보조기도 착용하지 않는다. 사실상 한 번도 사용 안 할 것 같으니 병원에서 비싸게 보조기 주문했으면 많이 아까울 뻔했다. S대 진료협력병원에서는 28만 원 정도 한다고 했으니.


회복이 빠르니 참 다행이다. 자가건으로 수술해 준 의사가 매우 고맙다. 퇴원하면서 아래와 같이 진료비 상세 내역서를 달라고 했고 내용을 보니 십자인대성형술이 급여 항목로 50만 원 정도였다. (개인 부담은 11만 원).

그 금액을 보니, Z대학병원 의사가 첫 상담에서 말했던 십자인대수술 단가가 낮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예후도 안 좋아서 의사들이 잘 안 맡으려고 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비급여로 백만 원이 넘는 죽은 사람 인대를 굳이 집어넣으려고 하는구나 싶다.


선한 의사분을 만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Z대학병원에서 수술 당일 새벽에 갑자기 토하고 열이 나서 수술이 취소될 줄이야. 수술 못하니 일단 퇴원하라고 해서 병원 나오자마자 바로 열 내려가는 것도 신기했고. 그땐 완전 새옹지마 매직이었어.

S대 병원에서의 수술과 입원이 다 좋았지만 한 가지 맘에 안 드는 것은 위의 표 상단과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진통제로 펜타닐이 처방되는 것이었다. 비마약성 진통제 한 병과 펜타닐 한 병을 세트로 만들어서 링거를 놓고 펜타닐은 정 못 참겠으면 누를 때만 별도로 주입되는 방식인데 이걸 보고 나는 경악을 했고 무조건 떼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자 교대하기 위해 도착한 아이 엄마와 이 문제로 설전을 벌였고 결국 내가 양보해서 다시 원위치시킨 후에 아이의 선택에 맞기게 되었고 딸은 잘 참으며 끝내 한 방울도 누르지 않았다.




교보문고에 도착해서 딸과 떨어져서 서가를 둘러보고 최근 관심사에 관련이 있는 환율에 관한 어떤 분의 신간을 선택해서 책상에 앉아서 읽어보았다. 살펴보는데 어제 산 오태민 작가의 책과 너무나 비교가 되는 것이었다. 활자가 크고 자간과 줄간격이 매우 넓고 자기 생각과 철학의 깊이가 전혀 안 보이고 여기저기서 따온 표와 그래프가 대부분이었다. 전형적인 뚝딱뚝딱 책팔이의 한 번 쓱 보고 폐지로 내놔도 아깝지 않은 책, 정말 실망이었다. 유튜브에도 자주 보이는 분인데 책이 뭐 이래. 이 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 분이었나. 오태민 작가 책처럼 폰트 줄이고 줄간격 줄이면 100페이지 밖에 안 되겠더라. 오태민 작가의 책은 내가 그분에 대해 가졌던 심한 편견과는 달리 책의 머리말에서부터 감탄이 나올 정도로 내용도 철학도 가면 없는 심오함이 보였다. 정독을 하면서 행간을 읽어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내용이 깊이가 있다. 표와 그래프도 책 전체를 통틀어서 몇 개 안 되고 세계의 흐름에 대한 통찰이 주를 이룬다.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다.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책을 비교해 보면서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책이 참 많고 그중에서 어떤 책을 만나는지가 내 인생을 좌우한다. 모든 책을 다 읽어볼 수 없고 극히 일부를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선택이 참 중요하다. 내가 책을 선택하는 걸까 아니면 책이 나를 선택하는 걸까. 어떤 이들은 책을 아주 많이 읽은 분들인데 사고가 굉장히 편향되어 있는 분들을 본다.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책만 수없이 읽어서일까 아니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도 자기가 믿 싶은 쪽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걸까.


읽고 싶은 책들을 사서 서가에 쌓아놓고 아직 못 본 책이 백 권가량이고, 이북으로 보는 밀리의 서재에서도 책을 골라서 리스트업 해놓고 못 본 책도 600권가량 된다. 그 책들 중에 몇 권이나 볼 수 있을까. 보고 싶은 책들이 있으면 계속 리스트에 올려놓 있고 그 증가속도는 읽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책을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 눈길이 가고 손에 잡히는 책. 책과의 인연, '책 운'이라고 말해야 할까.


세상에 대한 이해와 지헤로움을 추구하는 나에게 어떤 책들이 다가올까. 내 그릇의 용적으로 담을 수 있는 책들만이 연결이 되겠지.


여러 사람들과 긴 테이블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딸이 내 등 뒤로 다가와서 이만 가자고 작게 말을 한다. 마음에 드는 책들이 보여서 밀리의 서재로 검색해 보니 다 있어서 굳이 안 사도 된다고 말한다. 책 값도 부담이라 돈 굳어서 좋다.


어제도 오늘도 책을 보다가 많이 피곤해지면 잠자리에 든다. 내일도 모레도.


For Your Eyes Only

https://youtu.be/LTfRZQqp7oM?si=6D8aaQOkz6Jao8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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