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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Mar 25. 2020

인간실격

바야흐로 다시 가사를 써야 할 시즌이 도래한다. 학부생 때는 늘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썼지만 이젠 그런 낭만을 즐길 시간이 영영 없다. 한 시절이 지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시간을 굳이 내서 글을 써야 한다. 감성도 이전 같지 않거니와 낭만을 즐길 시간이 그만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따금씩 그게 슬플 때가 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일상을 좇아 현실에 안주하고 쳇바퀴를 돌다 감성이 메말라 간다는 것이. 글쓰기처럼 즐거운 놀이를 이제 시간을 굳이 내서 해야 한다니.


매번 가사를 끄적이던 노트를 오래간만에 다시 끄집어냈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쓴 가사가 눈에 들어왔다. 곡을 쓴 지는 오래되었지만 가사를 붙이지 못해 3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묵혀있던 곡. 원작의 위압감이 엄청나서 감히 덤벼들기 쉽지 않았던 곡. 2017년 단독 공연에 첫 공개를 하기로 결정하고 무조건 가사가 완성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이제는 퇴로가 없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쓰고 나니 완성이 되어 있었다. 오글거리는 몇몇의 문구가 마음에 살짝 걸렸지만 그냥 오글거리는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약간의 중2병스러운 맛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전 최초에 곡을 쓸 때 정해진 문구는 딱 한 문장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건 이미 정해져 있었지.” 이 문장을 고정하고 다른 모든 글을 써 내려갔다. 왜 저 문장을 고수해야 했는지는 원작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인간실격자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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