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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Apr 08. 2021

공연을 마치고

어느 무명 밴드의 이야기


공연을 마치고 광화문 인근의 순대국밥집을 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각자 내일 출근 이야기를 했다. '아 내일도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너는 몇 시 출근이냐?'


음악 활동, 밴드 활동으로만 먹고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아직은 우리는 락페도 한번 못 나가본 밴드, 대다수 사람이 음악 한 번을 듣지 못하고, 공연 한 번을 보지 않은 그런 무명의 밴드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멤버들에겐 꿈이 있고 열정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소소하면서도 끈끈한 즐거움이 있고.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 가득 털어놓으며 신세한탄을 하기보다는 각자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음악이 하고 싶어 그 남는 시간과 돈과 마음을 온전히 쏟는다. 나는 그런 우리 멤버들이 무척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공연을 마친 후 늦은 저녁을 먹으며 내일 출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말이다. 물론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많은 뮤지션들도 비슷한 생각과 마음이겠지만.


괜찮은 앨범 한번 만들고, 대중음악상 한번 받았다고 우리 밴드가 뭐나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직도 우린 햇병아리이고 아무것도 아닌 무존재에서 이제 조금 먼지 또는 티끌 정도 된 수준일 것이다. 아직도 부족하고 미숙한 점들 투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열심히 각자의 삶을 건강한 마음으로 살고 있고, 또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 활동에 대한 건강한 꿈을 꾸고 기꺼이 그 시간 내어 열정으로 함께 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이야기 나누며 이전보다 덜 다투고 덜 의기소침해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가 있었지만 계속 시도하다 보니 조금씩 또 하나씩 무언가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고 이전보다는 훨씬 더 큰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분명 더 잘할 것이다. 더 많은 곡을 쓰고 합주를 하고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낼 것이다. 고민하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늘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밴드가 될 것이다.


순대국밥집에서 내일 출근 이야기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며 함께 하는 우리 멤버들이 자랑스럽고 또 고맙다. 남부끄러워서 앞에서는 이야기 못하니 이렇게 글로.


2017.04.08. 쓴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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