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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Jun 28. 2021

녹음 일지

늘 그렇듯, 느려도 조금씩 이루어져 가겠지


며칠 전 합주를 위해 기타 악보를 새로 그리며 아주 오래간만에 '공'을 들었다. 그 곡을 듣고 있노라니 문득 작년 이맘때 갖은 스트레스와 부담감으로 고생하던 시절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딱 이맘때였다. 보컬 녹음이 다 끝나가고 앨범 발매일이 정해져 믹싱에 들어가던 이 유월말 칠월초. 그때는 참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잘하고 있는지도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나조차도 알 수 없고, 그 누구의 믿음도 없던 불확실한 미래로 가득 찬 시기. 겉으로는 의연한 척했지만 참 외로운 시기였다.


'공'은 처음에 곡을 쓸 때부터 앨범의 마지막곡으로 생각하고 쓴 곡이다. 나는 그 안에 시작과 끝,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을 함께 담고 싶었고, 그것은 블랙홀이자 화이트홀, 또 순간이자 영원이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안에 찰나에 불과한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유년시절부터 노년시절까지. 그리고 그것이 모두 '순환'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곡 안에서 계속적으로 순환하는 듯한 진행을 담았고 제목은 '공'으로 짓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엄청 애착이 있는 곡이고 나는 이 곡을 들으면 지금까지의 지나온 내 삶이 오버랩되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래서 조금은 슬퍼진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일 때 울었다. 옛날 생각이 무척 많이 나서.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니 녹음을 진행하며 적었던 일지가 생각났다. 그 사이 책장 한 곳에 꽂혀있던 노트를 찾아 사진을 몇 장 담았다. 디지털을 매우 좋아하면서도 쓰고 읽는 것에 대한 것은 아직도 아날로그가 편하고 그렇게 해야 뭔가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녹음을 진행하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일지를 적었다. 이때는 힘들었지만 언젠가는 추억이 되고 내 음악생활의 히스토리가 되리라 생각했다. 불과 일 년 만에 이렇게 머나먼 추억 같이 되었다. 그 사이 준비단계에서부터 불확실성으로 가득했던 이 앨범으로 인해 뜻밖의 좋은 일도, 고마운 일도 참 많았고. 평생 기억에 남을 그런 수많은 일들.


아무것도 아니었던 무존재에서 아주 눈곱만큼 이제는 음악을 한다고 조금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 주제와 분수는 여기 이 정도에 머물고 있다.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또 내가 여전히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반성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일깨우고 마음을 움직여 앞이 보이지도 않는 그 정글과도 같은 수풀을 맨몸으로 헤쳐가는 일은 정말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이끌어 작품을 만들고 오랜 시간 활동을 하고 있는 선배님, 후배님들에게 경외심이 든다. 아직 실력과 경력이 미천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음악생활을 해나가야 하나 오늘도 고민을 한다. 다시 한번 작년과도 같은 규모의 단독 공연을 준비하며 하나하나 계획하고 메모하고 있으니 그냥 왠지 모르게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낀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시간이 많이 지났을 때 지금보다는 생각과 마음이, 또 음악적으로도 더 큰 사람이 되어 이 시기를 다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어 나와 같을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의미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려면 다시금 마음 붙잡고 하루하루를 잘 이겨내야겠지. 오늘도 생각과 마음으로 가득 찬 관념의 정글 숲을 열심히 헤쳐가 본다. 늘 그렇듯, 느려도 조금씩 이루어져 가겠지.


2017.06.28. 쓴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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