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정민 Oct 21. 2021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는 해냈고, 다음 번에도 역시 할 수 있다.”


웨일즈 최고봉 Snowdon 산 정상. 2018.08.10.


성인이 되어 제대로 산을 타본 건 아마 군대 훈련소 행군 때였을 것이다. 그때 위를 자꾸 쳐다보지 말고 앞사람 발만 보고 걸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무거운 군장을 메고 고통 속에 산을 넘을 때 자꾸 위를 쳐다보면 이미 걷기도 전에 마음이 겁먹고 지쳐 발이 더 무거워진다는 것을.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을 한답시고 살고 있는 지금의 과거, 현재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꼭 음악이 아니라 어떤 삶도 마찬가지겠지만. 자꾸 위를 쳐다보고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고 겁먹기 보단 지금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묵묵히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또 한다. 내 스스로 마음을 지치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포기하는 사람 같은 것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산을 오르며 나도 모르게 계속 중얼거렸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 보이고, 거기에 내가 서 있을 것이라고. 별로 높지 않은 동네 뒷산이든 1000미터가 넘는 산이든 과정은 같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각오가 조금 더 필요할 뿐.


산을 오르기 전엔 늘 두렵다. 경험도 많이 없고 체력도 약하고 부실한 내가 잘 오를 수나 있을까. 오르는 중에는 후회도 든다. 내가 도대체 왜 여길 오르고 있을까. 그러나 정상에 다다르고 나서 산을 내려온 후에는 또 다음엔 어떤 산을 갈까 자꾸만 생각하고 그리게 된다. 나는 그것이 음악을 하며 살아가는 삶과 너무나도 닮았다고 느꼈다. 더구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애써 시작하는 것마저.


몇 시간을 고생하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지만 막상 정상에서 보내는 시간은 보통 단 몇 십분이다. 올라온 만큼이나 다시 또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의 순간은 잠깐이지만 그 성취감의 여운과 눈에 담은 풍경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 그리고 ‘나는 해냈고, 다음 번에도 역시 할 수 있다’ 라는 자양분으로 또 다음을 위해 힘을 낸다.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마라.”


어제 기사에서 본 작으면서도 커다란 이 문구가 문득 이런 생각들, 지난 경험들, 머리 속에 그려지는 풍경들과 오버랩되며 요즘 조금은 지쳐있던 내 마음에도 다시금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다가올 삶의 시간도 그런 변치 않는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늘 희망한다. 나 자신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우리들 모두.


2018.10.21. 에 쓴 글을 옮김.



매거진의 이전글 앨범의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