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나에게, 나의 음악에 큰 영향을 준 사람, 뮤지션, 아티스트. 음악 생활하며 문득문득 생각한다.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이야기 나눠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런데 이젠 기회가 없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오늘 밤 나는 자꾸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첫 앨범 첫 곡이었던 그 노래. 어릴 적부터 너무 좋아했던 노래.
나는 88년 대학가요제 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우연찮게 대학생이었던 사촌 형 네 놀러 가 있다가 대학가요제를 라이브로 보았다. 그때 그 노래의 전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곡은 다른 참가곡들과 다른 레벨의 음악이었다. 당연히 대상이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대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안녕' 영어 랩 가사를 한글 발음으로 적어 따라 부르곤 했다. 그게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가요톱텐에 출연해 한쪽 다리를 시시껄렁하게 떨어가며 부르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나는 Myself 앨범을 유난히 좋아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메시지가 너무 좋았다. 어린 나이에도 그 '물음' 들과 '돌아보기'가 나에게 큰 메시지로 다가왔다. 나에게 쓰는 편지, 50년 후의 내 모습, 길 위에서 같은 음악들. 어쩌면 지금 내가 자아성찰과 인간 내면, 꿈과 목표에 대한 주제의 음악을 좋아하고, 주로 다루는 게 어릴 적의 이런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1학년 때 넥스트 1집이 나왔다. 사람들은 도시인과 인형의 기사에 열광했지만, 나는 '영원히'를 제일 좋아했다. 가사 내용, 그 메시지가 너무 좋아서였다. "... 낡은 전축에서 흐르던 가슴 벅찬 노래 알 수 없는 설레임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았지. 처음 기타를 사던 날은 하루 종일 쇼 윈도우 앞에서 구경하던 빨간 기타 손에 들고 잠 못 잤지 ..." 이런 가사가 너무 좋았다.
그 후 넥스트 2집이 2장의 앨범으로 나눠 나왔다. (2집과 3집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중학생 때는 테잎으로 샀고, 고등학생이 되어 CD로 다시 샀다. 이중인격자, Dreamer, The Ocean을 비롯해 날아라 병아리,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Money, Hope 등 주옥같은 명곡들이 가득했다. 사회의 병폐를 풍자하고,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음악들. 나의 사춘기 시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앨범들.
동성동본의 연인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던 시절 그들을 위로하고 동성동본 결혼 금지법을 폐지하기 위해 만들었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노래방에서 참 많이 불렀었고. 날아라 병아리 곡으로 고1 때 불타는 기타 연습을 했고, 앨범의 곡 중에 'Hope'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부르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 흐릿하게 눈물 너머 이제야 잡힐 듯 다가오는 희망을 느끼지. 그 언젠가 먼 훗날엔 반드시 넌 웃으며 말할 거야 지나간 일이라고..." 이 후렴구가 참 좋았었지. 'Love Story' 연주곡을 들으며 언젠가는 이렇게 기타를 쳐야지 하며 연습했던 기억도 나고.
대학교 1학년 때 밴드 동아리 공연 때는 '절망에 관하여' 노래를 불렀었다. 그 당시 내 노래방 18번이었던. 그때 지금의 윤도현이 있게 해 준 '정글스토리'라는 영화가 개봉해서 어느 정도 화제였고. 사람들은 'Here I stand for you'를 좋아했지만. 나는 언제나 '절망에 관하여'였다. 언제나 그 노래를 불렀다.
군생활 시절에 나를 좋아해 줬던 후배에게 미안하다고 Dreamer를 들어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음악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고. "그녀의 고운 눈물도 내 마음을 잡지 못했지. 열병에 걸린 어린애처럼 꿈을 꾸며 나의 눈길은 먼 곳만을 향했기에.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동안 배워진 것은 고독과 증오뿐 멀어지는 완성의 꿈은 아직 나를 부르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고 유치한 시절이지만. 요즘도 가끔 그 음악을 들으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밴드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대에게'를 한번 꼭 카피해보고 싶었는데, 항상 그 얘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유치하게 왜 그런 음악을 하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 음악 공부 한참 하던 어린 시절, 졸업공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번 해봤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라젠카 앨범을 기점으로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얼마 가지 못해 넥스트는 해체되고 다양한 시도의 음악들로 이따금씩 찾아왔지만, 나도 이미 컸고 음악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또 다른 더 넓은 음악 세계에 눈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애써 변명을 했다.
몇 년 후 Regame 이란 앨범으로 다시 만났다. 옛 음악들을 다시 발매했다길래 너무 좋아서 관심 갖고 들었던 앨범이다. 거기에서 Last Love Song을 듣고는 왠지 가사도 약간 유치하고 뻔한 음악인데 왜 이리 정이 가는지 모르겠다 하며 즐겨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가사와 그 가사를 쓸 때의 그 기분이 상상이 되어 괜히 간접경험 마냥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을 함께 했던 음악과 추억을 남긴 채 그는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나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떠나버린 사람의 복을 빌어 무엇하는가. 영원한 이별은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슬픈 일이지만, 어쩌면 그 사람이 더 행복하고 우리가 불행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대신 나는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2014년 10월 27일. 나는 오늘을 기억하려고 한다.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이렇게 기록하고. 내가 살아가는 한 또 음악 생활을 지속하는 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한 때 내 곁에서 함께 했던 그의 음악, 그러나 머리통 좀 커버렸다고 잠시 잊어버렸던 그의 음악. 그러나 너무나 많은 추억이 담겨있어서 쉬이 보낼 수 없는 그의 음악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음악으로서 그를 담고 기억하고 싶다.
가슴 깊이 애도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어릴 적 음악에 담아 주었던 그 '물음'과 '성찰', '꿈'과 '목표' 그리고 '메시지'. 그 중요한 것들을 잊지 않고 음악 생활하겠습니다.
2014.10.28. 새벽에 쓴 글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