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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민 Mar 25. 2020

‘여행’이란 것에 대한 단상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고 계획을 세우고 떠나도 항상 여행은 불확실성 투성이다. 때로는 행복과 기쁨에 가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기도 하다.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파 기진맥진할 때도 내가 지금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 때도 있고, 오늘 보고 경험한 것들 또 밟아본 곳들을 내 평생 언제 또다시 찾아가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슬픔과 감상에 젖기도 한다. 모든 것이 처음이면서 어쩌면 마지막인 것이다. 나는 여행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계획해서 불확실성에 맞부딪치는 '여행'은 그저 남들이 짜 놓은 계획에 눈으로만 편하게 구경하는 '관광'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여행할 돈 있으면 음악에 투자해야지 여행에 쓸 돈이 어딨냐며 아까워하던 나였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이 시대에 배부른 소리들 하고 있다고 말하던 나였다. 그러나 우연찮게 한번 제대로 경험해보고 나니 그 이후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인생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다. 그 뒤론 틈만 나면 여행을 생각하게 되었고, 내 삶의 목표 또한 '여행하기 위하여 사는 삶'이 되어버렸다.

해외나 국내를 여행하면서 나보다 훨씬 젊고 어린, 그런데 홀로 온 여행자들을 보며 내 청춘의 시간들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들은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도전하고 있었다. 스스로 고난의 길로 자신을 내몰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연습을 하고, 또 깊은 생각의 시간을 갖는 젊은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여행이란 것이 주는 교훈을 20대를 전부 보내버린 29살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30대가 되어 가장 후회한 것이 왜 20대에 나는 여행하지 않았는가. 였다. 언젠가 한 번은 140여 일을 유럽에서 무전여행을 했다는 젊은 여성 친구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크게 쓴 돈은 비행기 값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 젊은 여성 친구는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나이였지만 나는 그녀가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또 프랑스 몽블랑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한국 여대생도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을 가지고 2달 계획으로 혼자 여행 왔다고 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스스로 여행이란 고생길로 뛰어든 모든 젊은 친구들을 진실로 깊이 존경했다. 그들 모두의 여행에는 도전이란 것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삶의 축약판이 곧 여행이란 생각을 한다. 계획하고 준비해도 언제나 우리 인생은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다. 기쁜 일도 있지만, 슬픈 일도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것을 이겨내며 성취감도 느끼고, 항상 즐겁기만 할 것 같은 여행이 막상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동반자와 다투기도 하고, 어떨 때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여행을 하며 오랜 시간 길을 걷고, 또 별의별 일들을 다 겪을 때 나는 정말 이 여행이란 것은 너무나도 우리들의 삶과 닮았구나 라는 생각을 셀 수 없이 많이 했다.

사실 그렇다. 지구라는 별에 우리는 여행을 왔다. 태어남으로 여행이 시작되었고, 죽음으로 여행은 끝이 난다. 어떻게 보면 길고 어떻게 보면 짧은 채 100년이 되지 않는 시간들. 우리들은 이 여행 중에 만났고, 그리고 함께 걷고 함께 여행하고 있다. 가족들, 친구들. 모두 동반자들이다. 그러나 영원히 여행하고 싶어도 우리는 결국 언젠가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 언젠가는 여행도 끝이 나고, 동반자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나는 그것을 느지막이 깨닫고는 이제야 목표를 세웠다. 지구별에 내가 이렇게 태어난 이상 내 여건이 가능한 한 많은 곳을 가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겠노라고. 그리고 언젠가 이 여행 마칠 때가 오면, '즐겁게 잘 놀다 갑니다'라고 작별인사를 하겠노라고.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기록을 남긴다. 나중에 돌아가야 할 때가 오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기행문처럼 보고 읽히며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게. 정말이지 우리 삶 속의 작은 여행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따금씩 나는 왜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한다. 그럼 나는 여행하기 위해서 산다고 대답한다. 때론 나 혼자. 때론 가족들과. 때론 또 친구들과. 큰 여행 속에 작은 여행이라고나 할까. 나에게 여행은 곧 도전과 같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또 무사히 마치고, 해냈을 때 주는 성취감이나 만족감 같은 활력소로 일상을 살고 그렇게 힘을 낸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큰 여행 속에서 언젠가 떠날 작은 여행들을 꿈꾸면서.

삶은 곧 여행! 큰 여행, 작은 여행 모두 항상 처음이자 대개 마지막이 되는 그런 여행. 그렇기에 우리가 사는 1분 1초가 모두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런 소중한 시간들. 멋지게 한번 여행하다가 때가 되어 후회 없이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그냥 보내버린 청춘의 시간들이 너무 아쉬워 늦게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늦지 않았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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