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찾아간,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갔던 여수 흥국사 홍교.
아버지 떠나기 3개월 전이니까 돌이켜보면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이날 아버지가 젊을 때 일했던 곳들, 다녔던 곳들 여기저기 설명해 주시면서 여수공단과 돌산도 곳곳을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비싼 꽃게탕도 사주셨던 기억이 나고.
지난 2월, 오래간만에 여수를 가게 되니 여기서 찍었던 사진이 생각났고, 다시 찾아가 보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홍교는 문화재니 그대로겠지만, 사진 속의 나무와 벤치가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있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나무도 세월을 지키며 잘 자랐더라. 보통은 주로 아버지가 나와 동생을 찍어주지만, 여기서는 내가 아버지와 동생을 찍은 사진이 남아있었다.
추운 겨울 아침이라 그런지 이날 단 한 명의 관광객도 없었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 찬 공기와 고요한 바람, 유유히 흐르는 계곡 물줄기 소리만 가득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거나, 환영이 나타나거나, 옛 추억이 플래시백 회상 씬으로 넘어가던데,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눈앞에만 그 시절 그 장면이 어렴풋이 펼쳐질 뿐이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남아있는 가족들이, 우리가 함께 하며 남는 추억이 삶의 전부이자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과 음악 생활은 삶에서 그중 아주 작고 미미한 일부일 뿐이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고자 늘 노력한다.
아버지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셔서 남아있는 사진이 정말 많은데, 이렇게 곳곳을 돌아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도 마음이 아파 아직 가볼 수 없는 곳이 있지만, 그래도 사진을 찾아보고 가볼 수 있는 곳곳을 다녀보고 싶다. 아직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을. 많은 곳이 바뀌어 없어지기 전에.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