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이야기

by 문정민


나는 향수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모르지만, 향기에 민감하고 잘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


20대부터 우연한 기회로 오랜 시간 버버리 포 맨 향수를 꾸준히 써왔는데 작년에 버버리 포 맨을 다 쓴 후 이제는 새롭게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들을 향기로 기억하듯이 나도 그렇게 기억에 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이유로 버버리 포 맨을 오랫동안 써 온 이유도 있다.) 작년부터 면세점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에게 잘 맞을 새로운 향수를 찾아다녔다.


원래 위스키 사는 것 외에는 면세점에 별 관심도 없던 사람인데, 다양한 향수를 찾으려다 보니 면세점이 가장 좋은 장소더라. 그러다 보니 공항 면세점보다 시간과 공간이 여유로운 백화점에 있는 면세점도 찾아가 보게 되고.


거기서 요즘 유행하고 많이들 쓰는 유명한 향수 회사들부터 뭔가 힙하고 고풍스럽고 하는 향수 회사들까지 다양하게 맡아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몇몇 가지 향수를 골라두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회사의 제품을 지금까지 살면서 향수 외에는 써 본 적도 없고, 향수가 명품이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오래전 언젠가부터 평생 ‘명품’이라는 것을 사지도, 쓰지도 않고 살겠다고 다짐한 것 때문이었다. 솔직히 지금껏 전혀 관심이 없기도 했고.


면세점이나 명품은 잘 모르는 사람이다 보니, 작년에 돌아다니다가 에르메스에도 향수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그 회사의 향수 중 향이 엄청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 가격도 에르메스의 (엄청난 가격) 명성에 비하면 생각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다. 일반적인 면세점의 다른 향수 회사의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그런데 평생 명품을 쓰지 않기로 한 다짐과 에이, 향수 정도는 괜찮지. 이 가격 정도면 웬만한 향수 회사들이 다 명품이게? 고작 향수 갖고 명품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웃겠다. 하는 자기 합리화 생각이 상충되어, 그 에르메스 회사를 비롯해 골라놓은 여러 명품 회사들의 향수 중 하나를 살까 말까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 어느덧 1년을 훌쩍 넘겨 버렸다. 그놈의 선택 장애.


한참 향수 찾아다니던 그 당시에 면세점 말고도, 그래 꼭 나에게 맞는 향수가 면세점의 명품 매장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지. 좀 저렴하고 합리적인 제품들은 어디에 또 없을까를 검색해 보니 곳곳의 동네에 있는 올리브영에도 그런 향수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생전 가 본 적도 없는 집 근처 매장에 가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마침 Tommy 향수를 오래간만에 만나게 되었다.


예전에 몇 번 언급한 적이 있고 글로 쓴 적도 있어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아는 내용이지만, Tommy 향수에는 이런저런 사연이 있다. 그래서 작년에 올리브영에서 Tommy 향수들이 아직도 판매되는 것을 보고 엄청 놀랐는데, 왜냐면 Tommy 향수에 얽힌 사연이 거의 25년도 더 된 일이기에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출시가 되고, 또 이렇게 가깝고 흔하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가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반 (오리지널) Tommy 향수는 오래전에 써 본 적도 있고 잘 알고 있었는데, 작년에 올리브영을 가본 이후로 Tommy 향수에 이 새로운 향수 시리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이 Tommy Now. 바로 테스트를 좀 해보고 싶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어떤 올리브영에도 이 새로운 시리즈의 테스터가 없었다. 이 새로운 Tommy Now 향수의 향이 너무 궁금해서 어떻게든 한 번 맡아보고 구입하려고 팔자에 없이 여기저기 올리브영 매장을 돌아다녀 봤음에도, 단 한 곳도 이 향수의 향을 미리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올리브영은 이 향수를 많이 팔고 싶다면 꼭 테스터를 비치해놔야 한다.)


평소에 특유의 소위 ‘아저씨 향수 냄새’ 나는 건 정말 안 좋아하고, 여행하면서 느끼는 서양인 특유의 향수 냄새도 별로 안 좋아해서, 보통 사람들이 좋다 좋다 하는 향수들이나 유명한 향수들이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 (그리고 청개구리 습성 때문에 너도 나도 다 쓰는 유명한 향수는 오히려 안 쓰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테스트 없이 샀다가 괜히 또 향이 너무 안 맞아 별로 쓰지도 못하고 후회할까 싶어, 그냥 사볼까 말까를 고민하다 그렇게 1년 여를 보냈다. 그거 몇 만 원이나 한다고 면세점이냐 올리브영이냐를 1년 넘게 고민한 것이다. 진짜 그놈의 선택 장애.


이번에 또 가을 여행을 앞두고 면세점을 한 번 더 가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에, 우연찮게 최근에 올리브영이 세일을 한다는 걸 알고 오랜만에 다시 한번 검색해 봤다. 30ml짜리는 마침 세일이라 3만 원도 안 하길래 에이 아무렴 어때 그냥 샀다가 안 맞으면 돈 버린 셈 치지 뭐. 이걸로 테스트한다고 생각하지 뭐. 하는 마음이 살짝 생겨났다. 아마도 면세점을 몇 번을 더 돌아다닌다 해도 선택 장애와 그 가치관 같은 거 때문에 결정을 영영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래서 향이 어떨지도 모른 채 일단 그냥 사버렸는데, 아니, 이거 완전히 너무 내 취향이 아닌가!? 한 번에 반해버렸다. 역시 믿고 쓰는 Tommy! 추억과 인연의 Tommy! 이렇게 그냥 사서 써 보면 되는 걸 이걸 왜 1년 넘게 고민했을까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었다. 오늘 한 번 뿌려보니 단종되기 전까지 내내 정착해도 되겠단 생각을 했다. 앞으론 이게 내 향기인 것이다. (올리브영은 이 Tommy Now 테스터를 매장에 꼭 비치하라! 비치하라! 테스터만 있었어도 1년 동안 고민 안 하는 건데.)


향수를 애용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향수를 주로 쓰는지, 얼마짜리 향수를 쓰는지, 몇 개를 쓰는지 모르겠지만, 10만 원짜리만 되어도 내 주제와 분수를 넘어서는 느낌이 들고, 괜히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관과 타협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조금 그랬었는데, 솔직히 그래서 1년 넘게 향수 하나 못 고르고 이렇게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예전 오리지널을 썼던 Tommy의 추억만 믿고 과감히 구입을 하고 나니, 향도 마음에 쏙 들고, 저렴한 데다가 사람들이 많이 안 쓰는 제품이란 것도 좋고, 나 스스로의 다짐도 지켰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이깟 향수 하나에 이런 시답지 않은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웃기긴 한데, 별 것 아닌 것에도 별 고민을 다한 웃긴 에피소드가 하나 완결된 것 같아 이렇게 끄적거려 본다.


나는 어떤 ‘향기‘라는 것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뭐 당연히 노관심, Who cares? 겠지만, 그냥 20여 년을 함께 했던 향수를 대체할 새 향기를 찾았고, 이 하나의 향기에 정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좋다. 향기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훗날 이 시간과 재밌는 에피소드가 기억나겠지.


늘 은은한 향기 같은 음악과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뭔가 새 향기가 생기니 리프레쉬하는 느낌이 든다. 알 수 없는 이 향기의 영향력이란. 후훗.


2025.08.14.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