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민의 영화이야기
어린 시절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읽었을 때 아니 이런 웬 똘아이 같은 소설이 다 있어? 하며 매우 감탄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취향저격. 사실 한참 어릴 때 책을 읽기 전에는 어느 시골의 한가로운 풍경에 대한 소설일 것만 같았던 반전 효과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청춘에 관련된 책 한 권만 추천하자면이란 질문에 주저 없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이야기했었다. 나에게도 인생 책 중 하나이고, 이십 대 청춘을 보내는 친구들에게 늘 추천하는 책이다. “기회가 된다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보아라. 절대 농촌이야기가 아니다.”
당시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센세이셔널했던 소설이지만 지금의 젊은이에게, 또 한국의 젊은이에게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명작 또는 고전 등과 같이 묶여 소개되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런 카테고리에 같이 묶여 올드한 소설처럼 여겨질 만한 책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젊은 소설. 그만큼 글을 풀어가는 솜씨가 정말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소설이다. 당시에는 얼마나 더 대단했을까.
지난주에 이 소설을 쓰게 되는 배경이 되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고 왔다. J.D. 셀린져가 장편소설은 달랑 이 한 권만 출판하고 그 이후에는 그 어떤 장편소설도 내지 않은 특이한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데 그 전, 후의 뒷이야기 들을 조금 더 세밀히 알 수 있어 뭔가 호기심이 충족되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자체로서의 깊이보다는 문학적인 측면에서 정말 재밌게 보았고, 십수 년이 지나 어느덧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글 좀 써보겠다고 끄적거리고 공부했던 그 시절 생각도 나고 그랬다. 문학에 관련된 내용이지만 문득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제자들이나 후배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서 예술을 공부하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뭔가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종종 이야기하지만 나는 글로 뭔가를 표현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을 그 어떤 예술 분야 중에서도 참으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편이다. 달랑 종이와 펜 만으로 만들어내는 그 세계, 그 정신, 그 힘.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금 또 그 글에 대한 짝사랑이 꿈틀대는 것만 같다. 디지털 시대가 되어 아날로그 책장을 넘기는 것도, 아날로그 종이에 아날로그 손글씨를 쓰는 것도 현저히 줄어든 세상에 다시금 글을 사각사각 쓰고 싶어 진다.
영화는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마치 어떤 DVD, 블루레이 등을 구입하면 그 안에 들어있곤 하는 메이킹 필름,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을 본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영화가 달랑 몇만 명밖에 못 보고 내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가능하면 영화를 보기 전에 ’ 호밀밭의 파수꾼’ 책을 먼저 읽어보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지 않으면 메이킹 필름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먼저 보고 나중에 본 영화를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으니. 어쨌든 정말 추천. 책도. 영화도.
2018.11.03. 쓴 글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