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을 좋아한다. 하지만 쓰지 않는 물건은 사지 않는다. 사 두고 쓰지 않는 물건도 없다. 마음에 든다고 같은 것을 색깔 별로 두 개씩 사지도 않는다. 과하다 싶을 만큼 고민하고 반드시 단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요긴하게 잘 쓴다. 쓸 때마다 흐뭇한 웃음을 웃으며 만족한다. 하지만 어쩌다 잘못 살 때도 있다. 그러면 볼 때마다 저걸 어디다 써먹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요긴하게 쓸 데가 생기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요약해 말하자면 쇼핑의 핵심은 전적으로 필요로 결정한다는 거다. 사두면 언제 써도 쓴다는 말 싫어한다. 필요가 먼저이고 쓰임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어차피 살 거 한 번 살 때 많이 사 두자도 싫어한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사서 잘 쓰는 걸 선호한다.
깊이 사귈 친구가 아니면 다가가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곁을 잘 주지 않는다. 정말 매력 있는 사람에게만 시선을 주고 말을 붙인다. 나와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사람만 좋아하는 옹졸한 습성이 있다. ”인맥 관리“라는 말을 참 싫어한다. 마음 가는 사람과 얘기할 시간도 부족한데 혹시나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관리하느라 정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진심도, 의미도 없는 말을 나누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가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만 있다. 그래도 한 번도 친구에 대한 결핍을 느껴본 적 없다. 그 열 명은 언제든 스스럼없는 마음으로 만날 수 있고 서로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귀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으뜸으로 아끼는 것은 돈 보다도 사람 보다도 시간이다. 나의 시간들. 걸어온, 걸어가고 있는, 앞으로 걸어갈 시간. '지금의 나'가 있기까지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다. 크고 작은 모든 선택들 앞에서는 항상 고독하다. 의논이나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다. 나의 일은 나밖에 몰라서 누구에게 상의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 그렇게 선택한 것들의 결과도 오로지 내 책임이다. 크게 이룬 건 없지만 맥락은 있는 시간들이었다. 누적 된 시간들은 분명 내 삶의 풍요로움에 기여하고 있다.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취미가 있었다. 요즈음은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많아서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지만 나는 도서관 파다. 엄마는 나이 들어서 갈 데가 없어서 도서관에 가는 거라며 나를 딱한 눈빛으로 쳐다보시지만 사실 책 읽는 재미에 맛 들인 사람들은 다 안다. 책 읽는 게 세상 제일 재밌는 놀이라는 것을. 백번 말해봐야 친구 없는 아이의 변명밖에 되지 않는 걸 아니까 길게 말하지 않고 그냥 친구 없는 아이가 되는 쪽을 택한다.
책 읽는 시간까지 해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과하다 싶을 만큼 고민해서 고르는 소품 하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즐길 수 있는 친구 한 명, 20대를 30대를 지나오면서 겪은 크고 작은 시간들은 모두 글쓰기로 수렴한다.
나의 초라하고 하찮은 순간들도 글로 쓰여지면 반짝반짝 빛을 낸다. 한순간도 버릴 게 없다. 글을 쓴다는 건 그런 의미다. 내 인생 모든 순간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