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성 Feb 21. 2021

스타벅스 코르크 슬리브

첫눈에 반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때는 분명 마음에도 없었는데 본 이후에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집에 데려다 놔야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번만큼은 호락호락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버틸 때까지 버티고 잘 되면 잊을 수도 있게 되길 바랐다.      


분명 필요하지 않았다.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잊어버리기엔 이뻤다. 너무나 이뻐서 현혹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사야 하는’ 물건보다 ‘사고 싶은’ 물건에 대한 소비가 늘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건들을 제외하고 지금 내가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들은 그리고 앞으로 사게 될 대부분의 물건들은 필요해서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싶다는 방향성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이런 아찔한 물건들을 만날 때마다 시험대에 오른다. 결과도 뻔히 알고 있다. 처음에 사서 집 어딘가에 자리를 내어주고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날 것이다. 지금까지 그것 없이 잘 지내왔건만 별안간 그것이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것만의 자리와 쓸모를 기꺼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내어주겠지. 한 일주일 열심히 쓰겠지. 그리고 분명 쓸 때마다 웃음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엔. 그 자리를 또 다른 새로운 물건이 대체하게 되고 어제까지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그 물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빛을 잃고 색이 바래서 더 이상 손길이 닿을 때마다의 기쁨을 선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익숙해질 것이고 시큰둥해질 것이다. 뻔히 알지만 일단 현혹이 되고 나면 이성을 잃어버린다, 갖고 싶다는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머릿속을 지배해버린다. 그리고는 갈등의 지속이다. ‘살까, 말까?’ 사고는 싶은데 꼭 필요하지는 않은 물건을 산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낼 명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뭐 만 원짜리 물건 하나를 가지고 쓸데없이 의미부여를 해가며 스스로를 그렇게 괴롭히는 거냐고. 그냥 그 정도는 생각 없이 사 버려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물론 그렇긴 하다. 그깟 만 원짜리 하나 산다고 나의 재정 상황이 크게 나빠지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물건이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더 중요한 것은 갖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괴로운 것이다. 미니멀리스트까진 못되더라도 적어도 사소한 욕망 정도는 스스로 제어할 줄 아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데 물욕 앞에서 번번이 무릎을 꿇고 굴욕적인 패배감을 맛보게 된다.

 

사는 인간이 되던가 사지 않는 인간이 되던가 결정이 나야 하는데 사면서 사지 않는 인간이 되고자 하니 이렇게 잦은 반성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좀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멀었다.

작가의 이전글 중요한 건 잘 보이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