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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Feb 13. 2021

중요한 건 잘 보이지 않는다

요즘 머리카락을 들추어 보기가 겁이 난다. 들춰볼 때마다 흰 머리카락이 하나, 둘이 아니라 군락을 이루고 눈부시게 성장하는 모습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하루에 열 가닥 스무 가닥씩 뽑다가는 백발보다 탈모가 먼저 찾아올 지경이다. 비주얼로 먹고사는 사람도 아닌데 나이 들어 자연스럽게 생기는 흰머리에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걸까? 언제부터 나는 내 머리카락에 자존감을 매달아 두었었단 말인가.


 부정할 수 없는 이미지의 시대, 비주얼의 시대이다. 나는 타인의 아름다운 외모에 누구보다 먼저 현혹되는 사람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잘생긴 알바가 일하는 카페로 발걸음이 향한다. 좋게 말하면 심미안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고, 나쁘게 말하면 저속하고 속물적인 사람인 거다.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있다. 외모는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니까.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게도 되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도 되고, 돈 앞에 비굴해지지 않는 권력을 가질 수도 있으니 가능하다면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메이크업을 하고, 피부과를 다니고, 다이어트는 생활이고, 필요하다면 턱을 갸름하게, 코를 오똑하게 하는 것까지 용기를 낸다. 그리고 아름다움의 기준은 한없이 까다로워져서 남자들마저도 보이지 않는 털까지 제모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외모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 이상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예쁜 사람이 참 많아졌다. 외모 상향 평준화가 되었다고나 할까. 웬만큼 아름답지 않고서는 외모로 1등 먹기가 예전 같지 않아 졌다는 말이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아버릴 수가 없다. 그럴 용기가 없다. 얼굴이, 몸매가 어떻든 상관없을 만큼 나에 대해 자신을 가지는 게 잘 안 된다.


 <뷰티 인사이드>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세계라는 여자가 있는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입고 들고 걸치는 모든 것들이 완판 되는 톱스타이다. 그런데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몸이 변하는데 아이가 되기도 하고 남자가 되기도 한다. 할머니로 변한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울며 찾아가 자신이 한세계라고 말하지만 친구는 믿지 않는다. 한세계가 주저앉아 엉엉 우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친구가 그 할머니가 한세계임을 알아보게 된다. 그 장면이 참 좋았다. 그녀를 알아봐 준다는 것이 가슴을 울렸다.     

 

겉모습이 변해도,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어도, 추하고 보잘것없이 변해도 나를 알아봐 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이가 있을까?     


‘그녀는 무엇으로 세기를 알아보았을까? ’또‘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이 생겼다.

남과 다른 나만의 것, 반드시 타인과 다를 수밖에 없는 나의 고유함. 그 유일함을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 다르다는 것에 주눅 들지 않고 본연의 나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비로소 각자의 아름다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먼저 나의 개성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를 한 겹 한 겹 벗겨내고 맨 마지막에 아무것도 꾸며지지 않은 채 나약하게 웅크리고 있을 나의 알맹이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닦아주고 광도 내고 애정도 주면서 키워야 한다. 그러면 점점 더 뚜렷해지고 당당해지고 진짜 아름다움을 뽐내는 내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메이크업도, 화려한 옷도, 다이어트도, 눈물 나는 제모도 필요 없어진다. 정형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변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되면 타인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눈도 생긴다. 사람들이 제각각 가지고 있는 매력들이 눈에 보이고 그들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중요한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흰 머리카락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주름도 늘고 뱃살도 늘어 갈 것이다. 세월을 거스를 힘이 없는데 주름 하나 뱃살 한 겹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나의 정체성을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 갈 수 있는 것'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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