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성 Mar 24. 2021

공간의 힘

어릴 적 우리 집은 큰 방과 작은 방 그리고 그 사이의 마루로 이루어진 다세대 주택의 1층 안쪽 집이었다. 원래는 방이 4개인 큰 집으로 지어진 집인데 중간에 칸막이를 가로질러 두 가구에 세를 놓은 전셋집. 집 앞엔 작은 마당이 있었고 화장실은 집 밖에 있는 푸세식 공동 화장실을 사용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방 하나에서 밥을 먹고, 공부도 하고, tv도 보고, 잠을 잤다. 그래서 그 방은 침실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공부방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냥 '큰방'이었다. 사생활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었고 비밀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다. 겨울엔 따뜻했고 여름은 그런대로 시원했기 때문에 큰 불편 없이 그저 살만한 집이었다.


그 시절 조금 큰 집에 사는 친구들이나 아파트에 살았던 친구들은 '내 방'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 방'이라고 말을 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나는 언제나 '큰방' 혹은 '작은방'이라고 말했으니까. '내 방'이라는 것이 있는 친구들은 '내 침대'와 '내 책상'을 옵션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는 어떤 공간이나 물건을 수식하는 말 중 '내(나의)'라는 낱말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낄 만큼 개인적인 공간이나 '나만의 무엇'에 대한 열망이 강했었다.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그 후로 몇 번의 이사 끝에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내 방'이라는 것을 처음 갖게 되었다. 옷장 하나 책상 하나가 전부인 좁고 단출한 공간이었지만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그것 하나로 이미 모든 것이 채워진 방이었다.    

 

내 방이 생긴 이후 집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아니, 내 집이 아니라 엄마 집이었으므로 내가 집에 대해 생각할 권리라는 것이 없는 입장이었다. 그저 내게 주어진 한 칸 방에서의 안락과 평안에 만족했고 더 좋은 공간에 대한 바람도 간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립을 했어도 벌써 했어야 할 나이를 훌쩍 넘기고 있었고 언제 나가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음은 분명했다. 갑작스럽게 독립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고 마침 적당한 집이 있어 마치 짧은 여행을 떠나오는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홀연히 집을 떠나게 되었다. 이 독립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잠자는 방을 옮기는 정도의 사소함이라 여기려 했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다만 자각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다.  

    

이 집과 함께 산지가 1년이 되었다. 사람은 환경적 동물이다.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도 변한다. 집은 그저 밥해 먹고, 잠자는 곳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그게 다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었을 테지만 사실 몰랐던 게 아니라 다짐이었다. 크고 비싼 집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시간 노동해야 한다면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자는. 단순히 그 생각이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것 외에 집이 나의 삶과 나의 생각에 은근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상을 어디에 놓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책상과 책장이 가장 중요한 살림살이였던지라 그 무엇보다 좋은 자리를 내어주고 싶었다. 이전까지 책상은 늘 방 한쪽 모서리에 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배치를 했었는데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 집에선 책상에 앉으면 하늘이 보이는 방향으로 마치 이 방의 주인공이 책상이라는 듯한 위치에 두기로 했다. 공간의 활용도 보다는 순전히 쓰는 사람의 기분만을 고려한 위치 설정이었고 그렇게 1년을 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 것,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것,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서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1년을 했다. 스스로 만족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지금껏 알지 못했던 형태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집에 있는 시간들이 편안하고 즐거웠고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이렇게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공간이 집안에 한두 군데 더 있어도 좋겠다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간소한 삶이 최상이라 여겼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갖추고 살자, 그 밖의 것들을 관리하느라 시간 쓰는 것은 낭비라고 말이다. 그런데 조금 변했다. 자신이 미니멀한 삶 안에서 최상의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마구잡이로 물건을 사들이지는 않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공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만큼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지금보다는 조금 큰 집이어도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내 집 마련에 대한 막연한 상상이 시작되었다.      


지난 1년, 충만한 행복을 주었던 이 작은 집에 살면서 이렇게 생각이 변했다. 훗날 이 변화에 대해 나아간 것이었다 할지 물러난 것이었다 할지는 또 두고 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책이 뭐가 좋으냐고 묻는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