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도착했어. 서프라이즈 선물인데 조금 일찍 알아버려서 아쉽더라. 살그머니 보내놓은 편지를 너의 예상보다 조금 일찍 읽어버렸거든. 편지는 언제 받아도 기분 좋은 것이지만 이번 만큼은 말 없이 보내놓은 선물이 도착한 후에 편지를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살짝 아쉬워했어. 얼른 펜과 노트를 꺼내고 싶은 그 설렌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정말 좋더라. 지금까지 내게 가장 많은 편지를 써준 친구야 너는. 요즘도 책상 서랍을 무심코 열 때나 앨범을 펼쳐볼 때 너의 편지들, 엽서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그럼 또 한 번 읽어보고 예쁘게 접어서 다시 넣어두곤 해. 그 편지들이 과거 완료형이 아닌 지금도 여전히 주고받는 현재 진행형이 될 수 있었던 건 모두 너의 따뜻함과 세심함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잠봉뵈르'라는 낯선 음식을 먹으며 나를 떠올렸다니 재밌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더라. 그 이름이 참 독특해서 몇 번이나 큰 소리 내어 읽어보고 나서야 좀 익숙해지더라. 생각해보면 빵집 샌드위치 코너에서 여러 번 봤던 것도 같은데 정작 그것에 그런 구체적인 이름이 붙어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한 번 만들어 먹어봐야지. 꼭꼭 천천히 씹으면서 맛을 음미해 볼게. 잠봉뵈르처럼 소박한 나의 일상을 좋아해 준다니 너무 기쁘다. 너는 넓은 품을 가지고 있어서 별것 아닌 것들도 이쁘게 볼 줄 아는 특별한 사람이야. 스무 살 때 만났을 때부터 그런 모습이 너무나 이뻤어. 그래서 꼭 친구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어렸는데도 사람 볼 줄 알았던 거지. 하하하.
요전에 ’행운 총량의 법칙‘이라는 글을 쓸 때 사실 한 문단이 더 있었는데 뺐거든. 그 부분이 우리 같이 공부했던 그 이야기였어. 그렇게 함께 공부할 친구가 있다는 것이 정말 로또 맞는 행운 부럽지 않다고 말이야. 그런데 너도 이번 편지에 그 이야기를 썼잖아. 우리가 참 그때 너무나 행복했었구나, 그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책 읽고 이야기 나누던 그때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맞아 너무너무 좋았어.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2~3시간 정도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밥 먹고 헤어지고 그랬잖아. 정작 만나는 건 2~3시간이지만 그 2~3시간의 만남을 위해서 일주일 내내 책 읽고, 필사하고 질문을 만들고 사유하고 했었지. 어쩜 참 운도 좋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말이야.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미친 듯 읽고 싶다는 일념으로...'라는 카뮈의 문장에 가슴이 얼마나 설레었는지 몰라. 우리도 책을 하나 꼭 만들어보자. 나 역시 너의 책을 마주한다면 티끌 하나 없는 마음으로 기쁠 것 같아. 함께 책 읽던 그 시절 시즌2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렇게 성실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야. 좀 더 잘 써 보려고 고민하고 있을 걸 봐도. 참 잘 하고 있어. 멋져! 우리.
너의 일상들을 유려하게 다듬어진 글로 만나는 즐거움은 모래알 중에서도 제일 크고 제일 빛나는 행복이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2021.6.19. 은성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