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성 Jun 19. 2021

크고 빛나는 모래알 승희에게

책이 도착했어. 서프라이즈 선물인데 조금 일찍 알아버려서 아쉽더라. 살그머니 보내놓은 편지를 너의 예상보다 조금 일찍 읽어버렸거든. 편지는 언제 받아도 기분 좋은 것이지만 이번 만큼은 말 없이 보내놓은 선물이 도착한 후에 편지를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살짝 아쉬워했어. 얼른 펜과 노트를 꺼내고 싶은 그 설렌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정말 좋더라. 지금까지 내게 가장 많은 편지를 써준 친구야 너는. 요즘도 책상 서랍을 무심코 열 때나 앨범을 펼쳐볼 때 너의 편지들, 엽서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그럼 또 한 번 읽어보고 예쁘게 접어서 다시 넣어두곤 해. 그 편지들이 과거 완료형이 아닌 지금도 여전히 주고받는 현재 진행형이 될 수 있었던 건 모두 너의 따뜻함과 세심함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잠봉뵈르'라는 낯선 음식을 먹으며 나를 떠올렸다니 재밌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더라. 그 이름이 참 독특해서 몇 번이나 큰 소리 내어 읽어보고 나서야 좀 익숙해지더라. 생각해보면 빵집 샌드위치 코너에서 여러 번 봤던 것도 같은데 정작 그것에 그런 구체적인 이름이 붙어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한 번 만들어 먹어봐야지. 꼭꼭 천천히 씹으면서 맛을 음미해 볼게. 잠봉뵈르처럼 소박한 나의 일상을 좋아해 준다니 너무 기쁘다. 너는 넓은 품을 가지고 있어서 별것 아닌 것들도 이쁘게 볼 줄 아는 특별한 사람이야. 스무 살 때 만났을 때부터 그런 모습이 너무나 이뻤어. 그래서 꼭 친구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어렸는데도 사람 볼 줄 알았던 거지. 하하하.


요전에 ’행운 총량의 법칙‘이라는 글을 쓸 때 사실 한 문단이 더 있었는데 뺐거든. 그 부분이  우리 같이 공부했던 그 이야기였어. 그렇게 함께 공부할 친구가 있다는 것이 정말 로또 맞는 행운 부럽지 않다고 말이야. 그런데 너도 이번 편지에 그 이야기를 썼잖아. 우리가 참 그때 너무나 행복했었구나, 그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책 읽고 이야기 나누던 그때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맞아 너무너무 좋았어.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2~3시간 정도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밥 먹고 헤어지고 그랬잖아. 정작 만나는 건 2~3시간이지만 그 2~3시간의 만남을 위해서 일주일 내내 책 읽고, 필사하고 질문을 만들고 사유하고 했었지. 어쩜 참 운도 좋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말이야.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미친 듯 읽고 싶다는 일념으로...'라는 카뮈의 문장에 가슴이 얼마나 설레었는지 몰라. 우리도 책을 하나 꼭 만들어보자. 나 역시 너의 책을 마주한다면 티끌 하나 없는 마음으로 기쁠 것 같아. 함께 책 읽던 그 시절 시즌2가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렇게 성실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야. 좀 더 잘 써 보려고 고민하고 있을 걸 봐도. 참 잘 하고 있어. 멋져! 우리.     

    

너의 일상들을 유려하게 다듬어진 글로 만나는 즐거움은 모래알 중에서도 제일 크고 제일 빛나는 행복이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2021.6.19. 은성 씀

 

작가의 이전글 공간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