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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Sep 03. 2021

나의 ’좋은 빅 브라더‘ 승희에게

조지오웰의 <1984>를 읽은 지 얼마 안돼서 아직 그 세계에 좀 머무르고 있는 중이야. 왜 너를 ‘빅 브라더’라고 했는지 감이 와?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눈이 잘 안 떠질 때나 글쓰기를 해야 하는데 막막해서 오늘은 쓰지 말까 싶을 때가 있는데 그 때 열심히 하고 있을 너의 모습이 떠오른단 말이야. 그럴 때 너의 완벽한 5시 기상이 나를 좀 긴장시키는 구석이 있거든. 성실하게 책을 읽고 글을 발행하는 걸 보면 나도 보조를 맞추어서 함께 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하기로 해놓고선 심지어 해보자는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이 대충대충 해버리면 김이 빠지잖아. 그러면 또 좋은 계획을 세워 놓고도 흐지부지 되고 마니까 그렇게 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힘들어도 애를 쓰게 돼. 그런 의미에서 너가 하루를 시작하는 그 모습이 나의 게으름을 감시하는 좋은 빅브라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웃기지 그렇게 자유, 자유 노래를 하면서 막상 스스로를 이렇게 빅브라더의 감시 속에 놓아 버린다는 게. 그리고 오히려 그런 감시 속에서 더 황홀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도.


역시 ‘천국’에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그지? <지옥>편은 좀 재미있었고 <연옥>편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는데 와우 <천국>편은 정말 졸립더라. 신곡의 완독을 과감히 포기하고 책장 위에 책을 얹어두고 집에 가져가지도 않았다니 너무 귀엽잖아. 너무 잘했어. 매사에 다 잘하는 너인데 뭔가를 중간에 그만두기도 한다는 게 너무 좋아. 너무 너무 좋아.    

       

너가 천국과 지옥을 헤맬 때 나는 빅 브라더의 감시 속에서 숨죽이고, 창문도 없는 고문실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난 주에 읽었던 <1984>에서 고문의 장면들이 너무 끔찍했거든. 특히 101호의 고문이 굉장했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드는 소설이었는데 인간이 육체라는 것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 좀 오래 머물게 되더라. 아직은 극단적인 육체적 고통을 경험해본 적이 없잖아. 사소하게 배가 좀 아프다거나 이가 좀 욱신거리기만 해도 예민해지고 컨디션이 나빠지는데 그런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 앞에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을까 물어보면 정말 자신이 없더라고. 윈스턴의 배신을 욕할 수가 없었어. <동물농장> 이후로 두 번째 조지오웰의 소설이었는데 조지오웰이 좋아졌다. 그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지만 소설 두 편을 읽고 나니 진짜 열심히 쓰셨다는 느낌이 들더라. 천재여서가 아니라 자신을 괴롭혀가며 완벽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사람일 것 같아. 웬지 농담도 잘 안 하고 매사에 진지하고 냉소적일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냥 이번 책을 읽고는 그런 생각이 들더란 말이야. 그래서 그런 모습으로 상상하니 조지오웰이 좋아졌어. 아마 머지 않은 시기에 <카탈로니아 찬가>로 그와의 만남을 이어가지 않을까 싶다.  


발췌해서 보내 준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의 ‘감정의 탄생’은 너의 말대로 빌리 콜린스의 시 <첫꿈>의 산문편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더라. 나는 이렇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좋더라고. 그러면서도 보편적이어서 너무나 고개 끄덕여지는 것들 말이야. 그 기분 알 것 같은 것들. <사랑의 역사>는 모르는 책인데 이제 도서관에 가서 책장을 둘러볼 때 눈에 들어오겠지. ‘아! 이 책이다‘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겠지. 안면을 텄으니 곧 만나게 되겠지 뭐.    


우리 지난번에 만났을 때 말이야 8월에 함께 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런데 그게 특별한 형식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새벽 기상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건 좀 별로더라, 슬로우리딩은 참 괜찮은 독서법이다.‘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뿐이잖아. 그런데 그 결산이 참 좋더라. 단순히 8월의 결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9월의 결산을 기대하면서 9월의 계획들에 좀 더 애정을 갖게 되더라고. 9월의 결산 때는 나도 새벽 기상 100% 달성을 해보고 싶다던가, 글쓰기에 대해서도 뭔가 결산할 때 스스로 뿌듯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마음 먹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알다시피 나는 평생에 계획이라는 것이 없이 살았는데 계획적인 삶의 재미를 좀 알았다고 해야 할까. 이 기분 괜찮은 것 같아. 주기적으로 만나야겠어. 다음에 만날 때 너에게 잘 난 척 좀 하고 어깨에 힘도 좀 주고 싶단 말이야. 그럴려면 글도 열심히 쓰고 책도 열심히 읽겠지. 그러니 자랑할 기회를 꼭 주길 바래.         


오늘 새벽은 일어나니 쌀쌀해서 긴팔, 긴바지를 챙겨입었어. 가을이 다가오고 있나보다. 너무 수다스러웠다. 그만 써야겠어. 오늘은 이만 총총이야.

아참, 선물 받은 책들은 사진으로 확인하시길.     


2021.9.3.

나도 너의 ’좋은 빅 브라더‘가 되고 싶은 은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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