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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Sep 13. 2021

고레에다를 사랑하고 있는 승희에게

승희야 안녕.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들로 가득한 편지 잘 받았어. 있잖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신이 나서 쏟아놓을 때, 막 맞장구를 치면서 같이 공감하는 게 정말 좋거든. 그런데 이번 편지에서 괄호 안에 소중하게 담긴 너의 영화들 중에 내가 본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어서 맞장구를 칠 수 없었어. 너가 이와이 슌지를 졸업하고 고레에다로 진급해가는 동안 나는 그냥 이와이 슌지에 머무르고 말았거든. ”오겡끼데스카~“에서 끝나버렸어.   

   

<환상의 빛>, 도서관에 간 김에 한 번 찾아봤더니 없네. 궁금해서 주말에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날로 정해야지’ 마음먹었는데 도서관에도 없고 서점에도 없어서 결국 이번 주말엔 못 봤어. 꼭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고 싶어서 좀 기다렸다가 책이 배송되면 순차적으로 음미해보도록 할게. 나는 영화를 먼저 보는 건 싫더라고. 그리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책을 읽으면서 내 식으로 상상했던 장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게 좀 아쉬워서 책이 원작인 영화는 되도록 안 보려고 하거든.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명의 독자로서 감독은 이 소설을 어떻게 해석했을까를 엿보는 즐거움은 또 있으니까. 책과 영화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았다니 궁금하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죽음의 이유가 필요한가?’라는 질문 기억하고 있을게.  

        

과거의 일기장을 읽어보고 너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들과 달라서 깜짝 놀랐다는 말을 했잖아. 그런데 나도 최근에 그런 경험이 있었더랬어. 어렸을 때 학교에서 영호남 교류를 목적으로 광주의 어느 초등학교와 자매결연 같은 걸 맺어서 편지 친구 만들기를 추진했던 때가 있었거든. 갑자기 그때 받은 편지가 생각이 나서 편지 상자를 뒤적여 보다가 정말 깜짝 놀랐지 뭐야. 초등학생 때 주고받은 편지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중학생 때였고, 영호남 교류가 목적이니 광주에 사는 여학생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 아이는 바로 옆 동네 다른 중학교의 학생이었더라고. 내 기억이 전부 틀렸었구나 확인하고 좀 어안이 벙벙하더라. 그 순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딱 떠올랐어. 그런 부분에서 좀 인상적인 소설이었거든.  


토니라는 인물이 베로니카라는 여자를 사귀다 헤어졌는데 친구인 에이드리언으로부터 자신이 베로니카를 사귀어도 되겠느냐는 편지를 받게 돼. 토니는 자신이 이 편지에 대해 대체로 신사적인 태도로 답장을 보냈다고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 그 편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아. 자신이 쓴 그 편지에는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욕설과 저주의 말들이 가득 적혀있었거든. 과연 그의 편지가 에이드리언의 자살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토니는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에 대해 짧은 글을 써 봤던 소설이었어. 기억이라는 거 자신할 수 없는 거야 그지?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을까 싶은 것도 잊어가고, 또 잊어지니까 살아갈 수 있는 것들도 있고. 아! 그러고 보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영화로 만들어졌어. 물론 나는 보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의 새벽 기상과 새벽 독서들은 잠과 편안함의 유혹들로부터 여전히 안전한지에 대해 얘기해볼까. 장사에 ’개업발‘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모든 새로운 계획에도 ’시작발‘이라는 게 있잖아. 시작할 때 으쌰 으쌰 해서 일을 안전 궤도에 안착을 시키고 나면 얼마간의 정체기가 찾아오는 게 순리인 것 같아. 자꾸 시험에 들게 되고 열정도 좀 시들해지고 그렇더라고 나도. 그래서 다른 이들은 성공적 미라클 모닝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찾아보았지.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하더라. 조금씩 늦게 일어나지거나 일어났다가 다시 잠드는 날이 많아진다고. 그런데 나는 하고 있지 않지만 해보면 좋겠다 싶은 방법을 하나 알았어. 잠들기 전에 내일 일어나서 할 일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잠들기! 나 같은 경우에는 일어나서 쓸 글에 대해 미리 계획을 해두면 좀 도움이 되겠다 싶더라고. 왠지 너는 이미 하고 있었을 것도 같지만.      


그리고 우리가 요즘 친구들이랑 함께 읽고 있는 단편들 말이야. 나는 역시 단편이 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를 읽은 후에 ’허영에 조종당하고 조롱당한 짐승’이라는 문장의 의미가 모호했었거든. 상점의 아가씨와 멋진 신사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누나 앞에서 자신은 너무 어린아이가 아닌가 하는 현실이 느껴진 걸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좀 석연찮더라고. 그런데 돈이 없으면서 마치 살 것처럼 어슬렁대는 자신에 대한 비유였다는 너의 해석을 보니 왠지 수긍이 되더라. 도움 되었어. 소설을 읽을 때 정답이란 없지만 그래도 좀 더 이치에 맞는 해석이 궁금하고 작가의 의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그렇다. 언제쯤 그런 게 훤히 보일까나. 그런데 알고 있어. 너무 잘 보이면 더 이상 책을 읽는 재미가 없어질 거라는 걸. 롤러스케이트를 배울 때 엉덩방아 찧어가면서 배울 때가 재미있지 턴까지 해가면서 잘 타게 되면 더이상 재미가 없어지더라는 경험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만큼이나 수다를 떨었네. 그런데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어떻하지. 최근에 읽은 도리스 레싱의 단편 <19호실로 가다>가 참 좋았다는 얘기도 해야 하고, 가을이 되니까 이쁜 옷 사 입고 좋은 데 놀러 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는 이야기도 좀 하고 싶은데 말이야. 아무래도 남은 이야기들은 만나서 해야겠다. 오늘은 이만 총총이야.          


2021.9.13

당분간 도리스 레싱을 사랑할 것 같은 은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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