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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Jan 07. 2021

말(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릴 때부터 드라마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당시에 인기 있는 모든 드라마들을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보았는데 너무 몰입해서 보니까 드라마의 거의 모든 장면과 대사를 순서대로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본 다음날 학교에 가서 그 방송을 못 본 친구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얘기해주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도 이야기 듣는 것을 즐거워했다. 요즘이야 채널이 많아지고 다시 보기도 다 되니까 못 봤던 회차를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본방송을 안 보면 재방송을 보기가 어려웠던 때라 그런 이야기 재주가 꽤나 효용이 있는 덕목이었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 딱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계속 이야기하게 되고 말솜씨가 저절로 는다. 잘 들어주는 친구들 덕분에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하며 살았다. 이야기하면서 같이 한 번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모아두었다가 친구들에게 보따리 풀어놓는 것을 즐겼고 친구들은 그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재밌어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재밌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야기하는 맛이 배가 되어서 작은 사건만 생겨도 친구들 즐겁게 해 줄 생각에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곤 했다.  


그런데 새로 옮긴 직장에서 나보다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강적을 만났다. 이야기의 스케일도 매우 컸다. 길을 가다 칼을 든 강도를 만난 이야기, 좋은 사람인 줄 알고 교류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다단계에 빠져서 자신에게 접근했던 이야기 등등 다이내믹하고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했고 표현도 재미나서 금방 친해지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터가 달라진 후에도 주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여행도 하면서 점점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여느 때의 만남처럼 커피를 한잔하면서 서로의 근황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한창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데 집중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데 생각은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가있는 것이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였던 것도 아닌데. 말하고 나면 그냥 잊힐 그런 사소한 이야기였는데 그걸 말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이야기를 흘려듣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못났게 느껴졌다.


말이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면 생각해본다. ‘꼭 해야 하는 말인가?‘라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두 번 생각해보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말들이 훨씬 많다. 말을 하고자 하는 욕심이 조금씩 옅어졌다. 상대에게 다 뱉어버리고 후련해지려고 안달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조금 더 고요해지고 느긋해지더라. 그리고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딴생각하지 않고 경청하게 되었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하나, 둘 삼키다 보면 결국 남는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는다. 어쩌면 침묵만 덩그러니 남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과유불급. 넘치는 것보단 부족한 쪽이 훨씬 유익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꼭 하나 지켜내고 싶은 말이 있다. 유머. 웃게 하는 말은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을지라도 남아있을 자격이 있고 상대에게 전해질 가치가 있다. 대화에서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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