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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Aug 21. 2021

소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동그랗고 커다란 머리에 앙증맞게 붙어있는 두 귀, 일자 눈썹 밑에 점찍어 놓은 단추구멍 눈, 그리고 얼굴 가득 여백이 자리하고 있는 라이언을 좋아하고 있다. 특히 라이언의 일자 눈썹을, 그 눈썹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숨겨진 표정들을 좋아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무표정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난처해하기도 하고 가끔은 우쭐해 하기도, 때론 고민이 깊어 보일 때도 있다. (물론 그건 라이언의 기분 상태가 아닌 나의 기분 상태에 따라 달라보인다는 게 라이언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지도.) 정말 묘하게 라이언의 일자 눈썹과 단추구멍 눈은 이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 볼 때마다 무언가에 골몰해 있는 듯 해서 사랑스럽고 진지해보이는 표정으로 할 건 다 하는 반전 있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이언에게는 춘식이라는 반려묘가 있는데 이 녀석이 또 치명적이다. 라이언의 반려묘답게 큰 얼굴에 단추구멍 눈을 가지고 있지만 춘식이는 이 단추구멍으로 백만가지 표정을 연출해내는 독보적인 고양이다. 유튜브 쇼츠 영상으로 처음 만난 춘식이는 걸그룹의 춤을 앙증맞은 팔다리로 멋지게 소화해내는 끼와 실력으로 똘똘 뭉친 아이돌 춤꾼이었다. 몇 개 되지 않는 영상을 심심할 때마다 꺼내 보면서 주전부리처럼 즐기고 있다. 앙증맞은 두 녀석들 춤선에 감탄 하면서, 실룩이는 엉덩이에 같이 엉덩이 들썩이면서 그들의 재롱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그저 귀여움을 충분히 즐기면서 약간의 에너지를 그들에게 얻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는데 굳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있다. 처음 라이언과 춘식이의 짧은 춤 영상을 봤을 때는 ’우와 너무 귀엽다‘였다. 근엄한 표정의 라이언과 걸그룹 댄스의 조합이 신선했다. 좋아하고 있었던 라이언에게 눈이 갔고 그 옆에서 잔망스럽게 춤을 추는 춘식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댓글 창을 열어보니 그곳에서 춘식이의 표정이 얼마나 다이나믹한지, 춘식이가 센터 자리에 얼마나 의욕을 보이는지 등 온통 춘식이 얘기 뿐인 거였다. 이미 춘식이는 만인의 셀럽이 되어있었다. 네티즌들의 영상 안내서를 읽어보고 나서야 이 영상의 킬링 포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정말 그랬다. 춘식이는 그 작은 눈과 입으로 연출한 만 가지의 표정 변화로 음악과 춤을 해석해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게 하나도 보이지 않았을까. 그 영상을 몇 번이나 봤지만 한 번도 그렇게 다양하고 자신감 넘치는 춘식이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 본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못 본 거나 다름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거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이들처럼 아주 작은 변화도 눈치채고 별것 아닌 것 같은 것에도 크게 웃는 마음이 내게도 남아있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한때는 분명 날카로웠으나 세월과 함께 조금씩 풍화되었을 나의 예민했던 감수성에 대한 그리움이 일었다. 조금만 더 세상을 재밌게 살고 싶은데, 무뎌짐이 조금 더 늦게 진행되기를 바라는데 시간이 내게만 특혜를 줄 리는 없겠지. 받아들일 수밖에. 예민함을 간직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가끔 재미를 좀 얻어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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