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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Oct 12. 2021

나와 달라서 더 좋은 승희에게

아-! 정말 멋진 풍경 사진이었어. 적당한 뭉게구름을 품고 있는 하늘, 제각각의 크기와 색깔로 그런대로 줄 맞춰 늘어선 가로수, 그 옆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흐드러지게 핀 흰색과 분홍색의 코스모스들! 그 꽃들 속에 양산 하나 펴 들고 거닐면 모네의 그림 한 편 그냥 완성될 것 같은 느낌이더라. 사진엔 그것까진 담기지 않았지만 코스모스 길을 걸을 때의 온도와 습도와 바람도 참 좋았겠지. 여름이 아닌 가을의 그것들이었을 테니까.           

너가 코스모스 길을 걷고 있었을 그 무렵에 나도 오랜만에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갔다가 예상치 못한 가을 풍경을 만나서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시간이 있었어. 날이 좀 흐렸었는데 호숫가를 지키고 있는 수양버들 나뭇가지가 바람에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고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바라봤었다. 공원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모네의 정원을 거닐고 있구나 생각했지. 요즈음의 일상 중 인상적인 한순간이어서 여운이 좀 오래가더라. 다시 또 가봐야겠다고 내내 생각만 하고 아직까지 가보진 못하고 있어. 걸어서 15분만 가면 되는데도 참 안 가진다. 오늘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가는 길에 단골집에 들러 카페라떼 한 잔 사야지.


나 지난번 너의 편지를 읽으면서 박장대소를 했었다. 딸기를 마지막에 먹는다는 문장을 보는 순간 말이야. 20년 넘게 만나고 있는 우리가 요즘 새삼스레 서로의 다름에 대해 놀랄 일이 많네. 알고는 있었지만 어쩜 이렇게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다 다를까 정말 신기해. 이번엔 딸기가 나를 또 놀래켰다. 나는 붕어빵으로 말하고 싶은데 붕어빵을 먹을 때 머리를 먼저 먹느냐 꼬리를 먼저 먹느냐는 질문 많이들 하잖아. 나는 망설임 없이 붕어빵 머리 파거든. 그러니 딸기 케잌에서는 당연히 딸기를 제일 먼저 집어먹겠지? 만약 누군가와 함께 생딸기 토핑의 케잌을 먹을 때 상대가 첫 입에 딸기를 먹지 않는다면 딸기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 그걸 두고 보면서 마지막 한입에 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을 거야. 나는 가장 배가 고픈 순간에 제일 맛있는 부분을 입안에 딱 넣었을 때의 극단적인 만족을 느끼는 게 좋아. 다른 음식들을 먹다 보면 어느 정도 허기가 채워져서 맛있는 걸 먹어도 그럭저럭 정도밖에 되지 않더라고.           


그런데 이런 식습관을 마시멜로 이론과 연결시켜본 적은 없었는데 좀 놀라웠어. 붕어빵 머리를 먼저 베어먹는 식습관이 내 삶에 대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니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정말 맞거든. 나는 만족을 지연시키는 것에 약한 사람이야. 다르게 이야기하면 참는 것을 잘 못해. 배고픔을 참거나, 졸음을 참거나, 무거운 것을 들고 있는 것을 견디거나 하는 것들에 일관된 무능함이 있어. 즉각적으로 지금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하고, 대체로 모든 면에서 지금 당장의 만족을 우선한 선택을 늘 해왔던 것 같아. 그러니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것이 나와는 맞지 않았던 거야. 가끔 ‘나는 왜 어른스럽지 못한걸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답이 나왔어. 그러고 보면 너는 나에 비해 조금 더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 그 비결이 생크림 케잌 위의 딸기를 맨 마지막에 먹는 것에 있었다니! 조금 일찍 알았다면 나 지금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졌을까?            


‘지금 이 순간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라!‘ 정말 멋진 문장이야. 우리가 상투적으로 ’카르페디엠‘이라는 단어로 많이들 표현하잖아. 그런데 ’적‘과 ’친구‘라니! 훨씬 구체적이고 식상하지도 않아서 알고 있는 의미라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      

월요일이 시작되면 시작과 동시에 주말을 기다리게 되잖아. 빨리빨리 일주일이 지나서 주말에 실컷 놀고 싶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의 인생에서 월화수목금은 무엇일까? 그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늘 비교당하는데 그들을 그렇게 하찮게 취급해도 괜찮은 걸까? 하고 말이야. 그들을 계속 그렇게 취급했다가는 내 인생의 5/7가 무의미해져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돼 버리는 걸 바라지 않으니 월화수목금이 아니라 ’월요일, 화요일...‘로 불러줘야겠다고, 그것들은 그것들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니 귀하게 여겨주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지. 그렇게 나의 시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월요일, 화요일.. ‘만 그런 게 아니었어. ’설거지 빨리 끝내고 드라마 봐야지, 얼른 샤워하고 책 읽어야지, 된장찌개 빨리 끓여서 밥 대충 먹고 쇼핑하러 가야지...‘ 뭔가를 하고 있으면서 생각은 항상 그다음에 가 있단 말이야. 그럴 때도 ’뭣이 중헌디‘라고 혼자 중얼거리고는 해. 이런 사소한 반성들이 모이면 ’지금‘과 다정한 친구사이로 지낼 수 있게 되겠지?  


나는 요즘 우리의 편지에서 우리의 다름을 발견하는 과정이 즐거워. 너를 이해하는 것이 또 다른 타인의 이해에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나와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잖아. 사람은 모두 달라. 그 다름들을 잘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즐겁게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는 거고.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유연하고 성숙한 면이 있어. 그래서 그 수많은 다름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고 잘 지낼 올 수 있었던 거지. 우리는 적당한 거리감을 잘 유지하고 있잖아. 모든 걸 다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지만 먼저 이야기해줄 때까지 선을 넘는 관심을 표현하지는 않지. 또 자기 쪽으로 끌어오려고도 하지 않고 서로를 그냥 내버려 둬. 집합 A와 집합 B로 각자 존재하면서 교집합 부분만 서로 깊게 공유하고 그걸로 만족하는 거지. 내가 여러 가지로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지만 요런 건 또 어른스러워.     


우리 하나에서 열까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드물게 의견 일치를 볼 때도 있잖아.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 완전한 합의를 이루었었지. 그것마저 순조롭지는 않았는데 너가 <영혼의 미술관>이 너무 좋더라고 했을 때 나는 ’별로더라, 처음에 조금 읽다가 덮어버렸다‘고 했던 거 기억나? 알랭 드 보통을 정말 좋아하면서도 그 책을 처음 봤을 때는 시큰둥했거든. 그런데 어느 독서 모임에서 그 책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찬찬히 다시 읽어 봤는데 그때 너무 좋아져 버렸다고 고백했었지. 예술 작품들이 우리에게 칭송이나 감탄 혹은 재테크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기억이나 슬픔, 혹은 성장과 자기 이해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그 접근법이 정말 좋았어. 아무리 훌륭한 그림이라고 해도 우리 삶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그 명쾌함. 그러니 그림에서 어떤 심오한 의미 같은 것을 발견하려 하고 경외하는 태도보다는 내 삶에 적극 활용하라는 그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 시각을 바꾼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데 그런 변화에 영향을 주었던 의미 있는 책이었어. 게다가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귀한 책이기도 해서 더 좋고. 내 장바구니에도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 담겨있는데 이 책이 또 우리 두 사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아주었으면 좋겠다. 맞장구치며 너무 좋다를 연발할 수 있게 말이야.           

30도를 웃돌았던 이상한 10월의 날씨가 드디어 끝이 났어. 가을 초입에는 여름 장맛비 같은 비가 계속되고, 비가 끝나고는 또 불볕더위가 다시 찾아와서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모르겠더니 이제야 가을다운 가을의 날씨가 시작되려나 봐. 가을의 날씨가 점점 귀해지네. 가을 하늘 같은 하루 보내길 바래.           


2021.10.12

너의 편지를 읽고,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무한한 즐거움에 취해있는 은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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