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가 나의 숙제에 공감을 해주었다는 피드백을 받은 날, 기분이 얼마나 좋았던지 마치 공기 빵빵하게 들어간 노란 풍선처럼 신나서 하루 종일 통통 튀어 다녔다. 막상 숙제를 할 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형식적인 도움으로 그칠지 확신할 수 없었는데 작게라도 쓰임이 있었다니 보람 느껴지더라. 다행이다 싶고 헛수고가 되지 않아서 기뻤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잘했다는 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어릴 때와 똑같이 뿌듯하고 마음이 들뜬다. 아이들이 어른들도 이렇게 작은 칭찬에 크게 기뻐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았으면 좋겠어. 칭찬은 어른으로부터 받는 것이라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어른이든 아이든 잘하면 서로 칭찬을 해준다라는 칭찬의 양방향성에 익숙해지길 바라. 나는 칭찬을 자주 듣고 싶으니까!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노란 풍선이 통통 튀는 것 같은 기분, 아주 좋더란 말이야. 그리고. 칭찬은 받는 즐거움만큼이나 주는 즐거움도 크잖아. 받는 즐거움을 실컷 만끽했으니 이번엔 주는 즐거움에 욕심을 좀 내 볼까 해.
지난번에 액자에 수줍게 넣어 보낸 편지 말이야. 정말 신선했어. 나는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에 열광하는 타입이라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했다’는 자체만으로 일단 무조건 박수를 쳤어. 그리고 마치 액자 속 명작처럼 들어앉아 있는 너의 마음을 감상했지. 비 오는 어느 날의 살짝 특별했던 기분을 프루스트 스타일로 정성스럽게 옮겨 둔 글들을 한 자 한 자 꼭꼭 씹어 음미했다. 수석을 수집하는 분들이 떠올랐어. 예사롭지 않은 자태를 뽐내는 돌을 윤이 나게 반짝반짝 닦아서 집안의 제일 좋은 자리에 귀하게 놓아두고 즐기는 취미를 가진 분들 말이야. 수석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돌은 그냥 돌일 뿐이야. 특별할 게 없어. 하지만 그분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돌을 특별한 안목으로 보고, 깨끗이 씻고 닦아 예술품으로 만들어내잖아. 너의 글도 그랬어. 매주 수업을 들으러 가는 곳에서의 평범한 하루의 소회로 다른 문장들 속에 무심히 들여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 거잖아. 그날 그 순간의 벅찬 감정들을 문장에 고이 담아 부지런히 닦고 윤을 낸 거야. 그리고 이쁘게 다듬어 액자에 넣었어.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 예술 작품처럼. 비, 소나무 숲길, 안개, 액자가 되어버린 뒷문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더라. ‘참 행복한 순간이었구나..’ 싶더라고. 말장난, 글장난으로 치부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말장난, 글장난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에겐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어. 더구나 프루스트 스타일에 빠져있는 사람에겐 설명이 필요 없이 감탄스런 지적 유희였고. 더 자주, 더 과감하게 시도해줘.
편지를 쓰다 갑자기 웃음이 났어. 나 지금 너무 신나 보이네. 사실 지난 일주일 동안 컨디션이 안 좋았거든. 몸살감기 기운이 좀 있었어. 요즘 때가 때인지라 아픈 것에 예민해지더라고. 뭔가 조금만 거슬려도 PCR 검사를 하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더라. 다행히 발열이나 오한 같은 증상은 없었고 따뜻하게 하고 잘 자니까 괜찮아져서 무사히 넘어갔다. 컨디션을 핑계로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더니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꾸준히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하고 있어. 그 어떤 변명도 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저 ‘하는 것’ 그건 참 어려운 거야. 숱한 자기 계발서에서 성공의 비결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한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 나의 게으름은 다 추운 날씨 탓이라 말해버리고 싶다. 겨울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겨울엔 뭘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게 안 생기고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꼼짝하기 싫어진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 겨울잠 자는 거라 생각하자, 따뜻한 날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는 거다. 온갖 합리화를 해보는데 스스로가 잘 설득이 되진 않는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면 나는 삼계절의 세계에 살게 될 것 같아서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 그러면 춥다는 핑계 대지 말자고 다그쳐도 보고 겨울은 겨울만의 매력이 있는 거다 최면도 걸어보려고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위는 나의 기를 죽인다. 그나마 따뜻한 남쪽 지방에 살고 있다는 게 작은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그리고 추위 때문에 글쓰기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는 나에게, 광명을 되찾고 당당히 어깨 펼 수 있는 암행어사 마패 같은 문장을 너의 지난 편지 추신에서 발견했어. 맞아. 하루 분량의 독서를 끝내고 그날의 문장을 골라 단상을 덧붙여 쓰는 활동을 정성껏 하고 있어.
같은 책을 여럿이 함께 읽고 짧은 생각을 공유하는 활동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 무엇보다 혼자서 꾸준히 해나가기 힘든 독서를 함께 하면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크지. 또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재미있고, 다양한 시각을 경험하는 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도 확장되는 장점들도 있어.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게 있잖아. 무작정 읽기만 하는 걸로는 독서의 참 의미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 어떤 책을 읽었다는 사실에만 얽매이면 내가 독서를 통해 얻고 싶은 진짜 알맹이는 얻을 수 없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단 말이지. 책을 몇 권 읽었느냐 보다 중요한 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들이 일어났는가?’, ‘그 생각들이 사고의 확장을 일으키고 나를 변화로 이끌었는가?’라고 생각해. 독서에서 이런 활동들이 왕성하게 일어나야 책을 읽는 진짜 재미가 있어.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재미’를 경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책을 또 찾게 되고, 책이랑 노는 즐거움을 알게 되지. 이런 독서의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독후 활동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하루 치의 독서 끝에 마음에 드는 한 문장을 골라서 쓰고 짧은 생각 덧붙이기 하는 것 말이야.
책을 읽고 난 후에 그날의 문장을 고르는데 쓰는 시간이 적지 않아. 하루 치의 독서 분량 중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은 날은 무얼 고를까 하는 행복한 고민으로, 또 기록해두고 싶은 문장이 하나도 없는 날은 괴로움의 몸부림으로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곤 해. 골라낸 문장에 덧붙일 생각을 다듬는 것도 하루도 쉬운 날이 없고. 학술적인 성격의 독서 모임도 아니고 친구끼리 친목 다지는 모임인데 이렇게까지 열심을 다해야 하는 건가 싶지만 내가 가진 진지함을 여기에 쓰지 않으면 별로 쓸 데가 없더라고. 쓰여야 할 데 쓰이고 있으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 독려하며 하고 있어. 그저 골라낸 문장에 대한 간단한 생각을 쓰는 정도지만 그걸 쓰려면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그러려면 책 내용을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하잖아. 그렇게 다시 읽어보고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의미를 발견할 때 희열을 느껴. 또 그저 읽기만 하면 좋은 문장도 마음속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른 문장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 버리잖아. 그럼 책을 읽어도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독서에 회의가 생길 수도 있는데 기록이라는 걸 해두니까 독서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생각날 때 한 번씩 들춰 보면서 보람이나 성취감을 충전할 수 있다는 점도 좋더라. 추신에 붙여둔 너의 한마디가 무려 두 개의 문단을 만들어냈네. 나도 나름대로 꿈틀거리고 있으니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말라는 혼잣말을 이렇게 길게 해 버렸어.
너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고 나니까 몸이 가벼워졌다. 역시 나는 수다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인가 봐.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컨디션 완전 회복하고 다시 통통 튀기는 노란 풍선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프루스트가 말한 ‘어떤 계절 안에서 다른 계절의 하루가 길을 잃은’ 것 같은 날, 길을 잃은 봄날이 찾아 온 어느 날에 만나 따뜻한 커피 한잔 하자.
어떤 계절 안에서 다른 계절의 하루가 길을 잃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런 날이면 우리는 금세 그 계절을 누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 계절의 고유의 기쁨을 열망하며, 우리가 지금까지 몽상하던 꿈들을 멈춘다. 마치 행복의 날을 적어 놓은 달력에, 그날이 돌아오기도 전에 더 빨리 또는 더 늦게, 다른 장에서 떼어 낸 달력 한 장을 끼워 넣은 것과 같다. ( p33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