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너무 성급한 남녘의 봄은 그렇다....남녘의 봄은 찾아올 때 이미 난숙하다....그것은 어디선가 갑자기 몰려왔다 물러가버리는 봄이다. 제주보다 더 먼 남쪽 먼 곳에서 실려온 박래품의 봄이다. 자연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진정으로 기다리지 않았다.
춘천의 겨울은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봄옷을 입는 날은 짧아도 봄은 마디다. 그것을 기다리고 음미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진해의 벚꽃이 이미 파장이라는 4월 어느 날, 기차를 타고 가평을 지나 강을 넘어 들어오면 구석구석 개나리가 줄줄이 피어 있다. 그 물빛이라니! 눈부시고 찬란하나 한 오라기의 방자함도 없는 고전주의의 봄이 거기 있다. 그것은 전염병이 아니며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서 불려 왔거나 누가 가져다준 봄이 아니며, 춘천이 그토록 모질게 만들어낸 봄이다. 그래서 그 겨울처럼 단단하며, 그 눈처럼 깨끗하다.
당신은 당신이 쓴 시들이 좋은 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번에는 나한테 묻고 있습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을 물었겠지요. ···· 당신은 당신의 눈길을 외부로만 향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그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충고하고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겐 단 한 가지 길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