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를 시원하게 켜 본 적이 언제였더라. 아침에 잠을 깨 이부자리에서 나오기 전에 기지개를 켜는 습관이 있었다. 팔을 머리 위로 완전히 뻗어 올리고 다리는 최대한 아래로 뻗어 전신을 위아래로 쭉 늘이면서 ‘으-’하는 소리를 곁들여 기지개를 켰다. 기지개는 수면 상태에서 각성 상태로 전환하는 스위치 같은 것이기도 하고 ‘자, 또 하루를 시작해 볼까나’ 하는 의식의 소리가 육체의 움직임으로 형상화되는 기상 세리머니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원한 기지개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했다. 잠에서 깨긴 했지만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이불 안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에 마침표를 찍듯이 일단 기지개를 켜고 나면 미련 없이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침대 속에 누운 채 휴대폰을 만지며 미적거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엄마, 오른쪽 팔이 좀 아파. 계속 아픈 건 아니고 아팠다 괜찮았다 그러네.”
“그거 목 디스크 때문에 팔이 아픈 걸 수도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 요즘 휴대폰 많이 쓰는 사람들이 그렇대”
“응? 팔이 아픈데 목이 원인이라고?”하고 턱을 바짝 당겨서 목 스트레칭을 해본다.
“진짜네. 신기해. 목을 바로 했는데 팔이 안 아파. 정말 거북목 때문인 건가...”
지난 여름이었다. 오른쪽 팔이 살짝살짝 아프기 시작하더니 통증이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아픈 건 아니었고 통증도 병원을 찾아야 할 정도는 아니어서 괜찮아지겠지라고 낙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불식 간에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저절로 낫기를 기대할 순 없겠다 싶어 정형외과를 찾았다. 진단명은 오십견이었다. 세상에 오십견이라고? 그동안 세월 가는 것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어느새 내 나이가 오십견이 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중년이라는 나이는 새해에 떡국 한 그릇 먹고 한 계단 오르고 또 한 그릇 먹고 또 한 계단 오르기를 반복하면서 차근차근 다가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10층에서 1층으로 뚝 하고 떨어지는 기분으로 불현듯 찾아왔다. 나는 오십견이라는 계단 아래로 뚝 떨어지면서 갑자기 중년의 생애 주기로 접어들었음을 실감했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실로 간단했다. “ 팔을 옆으로 올려 보세요.”, “팔을 등 뒤로 돌려보세요.” 단 두 문장의 시행으로 전형적인 오십견 증상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말로만 들었던 오십견이었다. 건강 전반에 대한 정보에 밝지 않았고 주변에 오십견으로 고생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오십견이 오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상식이 없었다. 주워들은 작은 정보만 있었더라도 좀 더 일찍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증상이 경미했을 때 빨리 병원을 찾아 초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됐다. 병원에서는 도수치료를 권했다. 도수 치료를 받는 첫날 치료사 선생님께서 좀 오래 걸릴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대중적인 증상의 병증임에도 아는 게 너무 없었고 괜찮아질 거라는 귀찮음에 기인한 낙관으로 병원 방문을 차일피일 미룬 결과였다. 다행히 오십견은 짧게는 일 년 반, 길면 삼 년 혹은 그 이상 지속 되는 것이 통상적이나 어쨌거나 낫기는 한단다. 다만 얼마나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느냐에 따라 오십견이 오기 전처럼 완전히 회복될 수도 있고 혹은 90% 회복에서 굳어버릴 수도 있다는 정보를 유튜브를 통해 확인했다. 병원을 진작에 찾았어야 한다고 후회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좀 오래 걸리더라도 부지런히 치료에 전념해서 최대한 회복하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도수 치료로 눈에 띄게 효과를 보진 못 한 채 치료를 잠시 중단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3개월 동안 치료와 운동을 못 하는 사이 상태는 나빠졌고 급기야 팔을 옆으로 거의 올리지 못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세수를 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팔이 잘 움직이지 않았으니 상태가 꽤나 심각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장 병원에 갈 상황이 못 되어 혼자서 치료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물리치료사님들이 올려놓은 오십견 치료 영상을 찾아보고 여러 운동들 중 당장 할 수 있고 가장 스트레스가 덜한 자세를 골라 매일 조금씩 따라 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팔을 앞으로 쭉 뻗는 동작이었는데 당연하게도 처음엔 통증이 심해서 팔이 거의 뻗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썼고 하루하루 미세하게 난이도를 높여서 시행했다. 그랬더니 참 신기하게도 어제와 오늘의 상태가 조금씩 달라졌다. 달라졌음이 눈으로 확인되고 몸으로도 느껴졌다.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니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게 되었다. 매일 했고, 나아짐을 위한 다소의 통증은 어른스럽게 참아낼 수 있게 되었다. 아픈 만큼, 참은 만큼, 시간을 투자한 만큼 오른쪽 어깨와 팔이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투자한 ‘매일 10분’이라는 시간이 준 선물이었다.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단 하나의 조건을 꼽는다면 망설임 없이 ‘꾸준함‘이라고 말하겠다. 꾸준함 중에서도 ’ 매일 하는 것‘의 위대함은 백 번, 천 번을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무언가를 매일 하는 것에 성공한 사람은 어떤 일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만큼 어떤 일을 매일 해낸다는 건 쉽지 않다. 아무리 쉬운 미션을 계획하더라도 매일 꾸준히 해낸다는 건 이상하리만치 힘들다. 그러니 그 무수한 자기 계발서와 성공 강의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 아닐까. 나 역시 참 여러 번 도전해 왔다. 매일 글쓰기, 매일 책 읽기는 영원한 나의 숙제여서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습관으로 굳히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무언가를 매일 한다는 것에 대한, 그걸 해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이 쌓여갔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한 번 써먹어야겠다. 오십견으로 인한 통증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이만큼 괜찮아지기까지 기울인 노력은 내게 성공의 맛을 보게 해 주었다. 꾸준함에 대한 감각이 몸에 묻기 시작했다. 참 오래도 걸렸다. 팔과 어깨를 스트레칭하는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 매일 한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몸에 기억되기 시작했으니 이 감각을 다른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지독히도 친해지기 힘든 꾸준함이라는 녀석이 이제야 나의 데미안이 되어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놓치지 않게 꼭 붙잡아야겠다.